All the Beauty in the World
저자가 아픔을 딛고 일어서는 과정을 지켜보며 독자인 내가 치유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왜 그렇게 느꼈는지, 무엇으로부터 치유되었는지 정확히 모르겠다. 저자의 이야기를 읽으며 자연스레 내가 겪어왔던 아픔들을 되돌아보며 괜스레 메마른 눈물자국을 찾아보기도 하고, 앞으로 겪게 될 아픔들에 대해 생각하며 괜한 조바심과 염려를 하기도 했다. 그런 감정들을 한 손에 꼭 말아 쥔 채 책을 읽었다. 미술관을 처음 가는 관광객이 팸플릿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것처럼.
확실한 건 내가 저자에 느낀 감정이 연민보다는 존경에 가깝다는 것이다. 저자의 결단(기존의 직업을 버리고 무작정 미술관 경비원으로 근무한다는)에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단순히 직업을 바꾸는 개념보다는 삶을 다르게 살기로 한 것이니 그런 결정을 내린 사람은 애초에 그릇이 큰 사람인 것이 아닐까.
또한 그는 경비원으로 근무하기 시작하면서 보고 느낀 바를 기록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미술관을 지키는 Nobody였겠지만 그는 끊임없이 생각하고(혹은 생각하지 않으며), 감상한 바를 기록하는 사람이었다. 저자가 10년간의 이야기(삶)를 잘 녹여낸 하나의 작품을 우리는 각자의 미술관에서 읽은 셈이다. 그러니 그는 미술관에서 근무했던 한 명의 예술가로도 볼 수 있다(나는 그의 글을 예술이라고 보고 싶다).
책을 읽는 중간중간 작가의 삶에 대한 태도에 공감하게 되는 순간들이 많았다. 특히 '예술을 배우려고 하기보다는 예술을 통해 배우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 나만의 생각과 해석을 가지고 내 삶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부분은 몇 번이나 곱씹어 보게 되었다. 가끔 가는 전시에 항상 무엇인가를 배우려고 달려드는 경향이 있는 나에게 필요한 문장이었다.
이 밖에도 책을 덮으면 할 이야기가 많은 고마운 책이다. 메트에 가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작품이 가장 실제로 보고 싶은지, 혹은 자신이 실제로 본 작품들 중 인상 깊었던 건 어느 것이었는지. 작가의 시선을 통해 바라본 예술에 대한 관점, 삶에 대한 태도의 변화 등 풍성한 이야깃거리를 가지고 모임에 나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조만간 미술관에도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