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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호 Feb 05. 2023

크로스핏을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1

#1. 시작

#1-1. 등록

2020년 3월, 코로나로 인해 회사 헬스장이 문을 닫았다. 혼자 하던 헬스에 슬슬 지겨움을 느끼던 와중이라 이 참에 새로운 운동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주짓수, 권투, 클라이밍 등 후보군에 올랐던 여러 종목들 중 결국 나는 크로스핏을 선택했다. 몇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회사와 가깝고 무척 빡세 보였던 점이 끌렸다. 회사에서 걸어서 5~10분 정도 거리에 미국 정식 지부에 등록되어 있는 박스*가 있었다. 정식지부는 어떤 점이 다른지, 시설은 어떨지, 수업방식은 어떻게 하는 건지 호기심이 일어 하루 체험을 신청했다. 그리고 헬스에서는 흘려보지 못한 양의 땀을 흘렸다(평소 땀이 없는 체질이라 여기며 살았고, 그 생각이 틀렸다는 걸 깨닫는 데는 10분이면 충분했다). 그렇게 나는 20년 6월 크로스핏에 입문했다.

크로스핏에서는 체육관을 ‘박스’라고 부릅니다. (ex. 연휴에 박스 운영하나? 너희 박스는 열어?)
외국의 크로스핏 박스 모습 (크로스핏 공식 홈페이지)



처음 박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실내를 가득 채운 사람들과 귀를 때리는 음악 소리, 간간이 들려오는 괴성(?), 수많은 바벨들과 역도 동작 등 생경한 모습에 다소 주눅이 들기도 했다. 수업이 끝나면 코치님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는 작은 행동들도 처음엔 어색하고 부담스럽기도 했다. 아무리 설명을 들어도 바벨만 잡으면 머릿속이 하얗게 되어 몸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것도 답답했다. 온갖 용어들도 매번 헷갈리고 매일 다른 동작들로 짜인 와드*를 하려니 정신이 없었다. 나름 헬스를 몇 년 하고 왔으니 곧잘 하겠거니 하던 자신감은 금세 제자리를 찾았다. 다시 헬스장으로 돌아가야 하나 고민했다. 비용도 헬스에 비하면 몇 배나 비쌌다. 처음 등록한 한 달이 다 끝나갈 무렵 나는 결정을 했다. 낯선 환경에 나를 적응시켜 보기로. 이왕 시작한 김에 최소 1년은 해봐야겠다고 마음을 고쳐 먹고 천천히 해보자고 나 자신을 응원했다(크로스핏도 다른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자신을 격려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와드는 그날의 기록을 적는 운동 프로그램으로 Workout Of the Day의 약자입니다.
(ex. 내일 와드 뭐야? 아 내일 와드 보니까 박스 가기 싫네..)
코치와 멤버의 모습 (크로스핏 공식 홈페이지)

#1-2. 적응기

크로스핏은 대개 정해진 수업시간이 있다. 나는 주로 퇴근 이후 저녁 7시 수업을 들었는데, 박스에 도착하면 6시 수업 멤버분들이 열심히 그날의 와드를 하고 있고, 코치님들이 열심히 그 옆에서 피드백을 주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나는 근처에서 스트레칭을 하며 그 모습을 유심히 보며 내가 놓치고 있는 부분을 발견하기도 하고 나처럼 서툰 비기너 멤버분들을 보며 마음속으로 응원을 보내기도 했다(내가 어려워하는 동작은 대개 다른 분들도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때 알게 모르게 동지애, 전우애 같은 것이 생기곤 한다).

처음 크로스핏을 등록하고 6개월 정도는 일주일에 4번 정도 갔다. 내가 다니는 박스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주 6회 운영을 하니까 대략 한 달 동안 박스를 다 가면 24번을 갈 수 있는데 나는 16번 밖에 가지 않은 것이다.  그럼 "비싼 돈 주고 왜 주 4회밖에 가지 않냐"는 질문을 하실 텐데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쉽다. "근육통 때문에 지금 걷기도 힘들어요"

꾸역꾸역 6개월 정도를 다니고 나니 어느 날은 박스에 도착하고 유난히 마음이 편하고(?) 내가 좋아하는 동작이 와드에 있다는 사실에 약간의 안도감도 들었다. 나는 그 순간을 내가 크로스핏에, 박스에 적응한 순간이라고 기억한다. 기분 좋은 설렘에 들떠서 박스 문을 열고 들어가 눈에 익은 사람들과 가벼운 인사와 농담을 건네고 수업을 준비하며 콧노래를 흥얼거리진 않았지만, 그저 이전보다 이곳이 조금 편하게 느껴졌을 뿐이지만 그날이 나에게는 진하게 남아있다(그저 적응했을 뿐인데 지나치게 감상적이지 않냐라고 물으신다면 크로스핏 등록을 권합니다)

크로스핏 수업 (크로스핏 공식 홈페이지)

#1-3. 동기부여

누구나 새롭게 배우는 순간이 있다. 시간도 없고, 비싸고, 지금 당장 하지 않아도 사는데 지장 없는 것들을 배우는 순간이 심심치 않게 찾아온다. 그럴 때면 우리는 자신을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고민에 빠진다. 스스로를 동기부여 하기 위해 좋은 방법 중 하나는 내가 성취한 것을 돌아보는 것이다. 성취는 대회에 입상하거나 대단히 큰 보상이 주어져야만 성취가 아니다. 나에게는 새로운 운동을 등록하고 그것에 맞춰 나를 적응시키고 좋아하는 취미로 인정하게 된 날도 하나의 성취다.


여러분은 무엇을 성취해 가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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