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그런 것 같은데요
혹시 불안하세요? 하하하
손톱 끝을 계속 다듬고 있던 나에게 상대방이 던진 한 마디.
뭘 이런 걸로 불안해요. 전혀 아닙니다.라고 대답하길 바랐던 상대에게 애매모호한 대답을 날린다.
"네, 그런 것 같은데요."
불안한 것도 아니고 불안하지 않은 것도 아닌 "같은데요"는 뭔가. 남의 감정도 아닌 내 감정 하나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유체이탈 화법을 썼다. 오히려 상대가 발 빠르게 먼저 내 불안함을 캐치한 걸까. 아마 건너편 상대는 눈에 보이는 공식을 통해 확신했을 테다. <이유 없이 다듬고 있는 손톱+허공을 떠다니는 눈동자=너는 불안해!>
맞다. 어쩌면 난 불안한 걸 수도 있다. 아니 불안하다.
"그래 나 불안하다!"라고 정면 돌파해본 적은 그동안 딱히 없었다. 이런저런 책에 나와 있는 '불안 체크리스트'들을 접하면서 '나 불안했구나' 뒤늦게 알아차리는 수준. 그동안 모르고 살았던 감정을 겸연쩍게 먼 친척 보듯 잠깐 만났던 건 25살을 훌쩍 넘어서였다. 그것도 우연히 접한 김형경 작가 에세이를 통해서였다. 불안함도 나름의 역사가 있는 거구나. 유아기 때 충족을 못해서 불안이 생겼을까.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가볍게 공감해버리기엔 다소 혼란스러웠다. 짧게 주워 담은 걸 조합해봐도 내 몸을 감싸 안고 있는 불안도는 꽤나 높은 편인데도 제 때 파악조차 못하고 있었다.
손톱을 쉴 새 없이 다듬으며, 긴장이 조금만 된다 싶으면 명치부터 조여 오는 소화불량을 겪으며, 작은 실수에도 지나치게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나는 불안을 몰랐다. '불안'이라는 진단을 내리지 못했다. 몸은 꾸준한 신호를 보냈지만 아둔하게도.
나는 진짜 몰랐을까?
돌이켜보면 지나치게 예민하다고는 생각했다. 예민한 건 감정의 영역이라기 보단 감각의 영역. 손 끝에 따가움이 스미듯 세세한 생활 전반을 스미듯 받아들이는 거라 생각했다. 인지 영역보다 더 빠르게, 감각으로. 그래서 예민함 뒤에 불안한 감정이 있으리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예민해도 단단하게 자기를 꽉 잡는 사람도 있을 테니까.
예민함과 불안함. 둘은 분명 다른 영역이었다.(전문 심리학과는 아무 연관 없는 내 개똥철학은 그랬다.) 아이러니하게도 '예민하게' 내 안의 불안을 캐치하지는 못했지만.
다만 모른 척 뭉개듯 흘러가기엔 생활에 불편함이 컸다. 뭔가 안에서 무너져가고 있구나, 대충 감은 잡고 있었다. 우선 몸의 반응. 언젠가부터 조금 신경 쓰이는 일이 있으면 위가 뒤틀리듯 아팠다. 그럴 때마다 주먹 쥔 손으로 배를 눌러댔는데 못 참고 병원을 가면 그저 스트레스 때문이라고만 했다. 더 이상 위가 쪼그라드는 경험을 하고 싶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고요한 산속에 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 내 안을 좀먹고 있는 무언가를 빨리 찾아내야 했다. 어디 갖다 붙여도 되는 스트레스 말고 진짜 원인. 입술을 잘근잘근 씹어대는 통에 바싹 말라가는 윗입술을 위해서. 원치 않게 식욕을 댕강 잘라버린 고질적인 소화불량을 없애기 위해서. 부대끼는 내 안의 무언가를 찾아서 탁 터트려야만 했다.
돌이켜보면 잠을 개운하게 자지 못했다. 어렴풋이 '불안'을 인지하게 된 것도 순간 잠에서 깬 어느 새벽이었다. 억지로 일어난 나는 무언가 조여 오는 느낌에 미친 듯이 머릿속으로 무언갈 찾았다. 어제 마무리 짓지 못한 걱정거리를 찾았다. 대충 걱정의 윤곽이 잡히면 신기하게도 안심이 되면서 밀린 잠이 왔다. 별거 아니었군, 내 몸을 감싸는 불안함을 잠재우려면 불투명한 장막을 걷어내 뭐라도 뚜렷한 실체를 찾아내야만 했다.
착-착-착.
이상하게도 어느 하나 거리낄 것 없이 익숙하게 지나갔다. 잠을 깨고, 걱정을 찾고, 다시 잠을 청했다. 이미 습관처럼 자리 잡은 기형적인 수면 패턴이었다. 나 아마도 '불안'한 것 같아. 더 이상 스스로 토닥여도 잠재울 수 없는 불안이 이미 잔뜩 자리 잡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남들보다 두발 앞서서 걱정을 사서 했다. 최악의 시나리오로 안전펜스를 치는 느낌이랄까.
돌이켜보면 지나치게 안전에 대한 강박을 가지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돌이켜보면...
나는 내가 불안하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 나 불안하다 하하하
'불안함'과 예상치 못한 동거를 시작하게 된 건 꽤 오래 전인 것 같다. 딱히 뾰족한 해결책은 아직 찾지 못했다. 지나치게 돋아 오르면 살짝 연고를 발라주는 수준으로 덮고 있다. 불안과 같이 부대끼며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뭐, 몰랐던 예전과 뭐가 다르냐고 한다면 애써 정상인 척하지 않는다는 것. 불안하다는 걸 알고 있다는 것. 정면에서 마주 볼 용기는 조금 생겼다는 것 정도.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하나씩 헤집어놓는 중이다. 머나먼 기억에서 하나씩 꺼낼 때마다 누르고 눌렀던 내 감정이 요동치는 게 보였다. 세월이 지나도 잃지 못한 감정들을 꾸준히 지켜보고 싶었다. 애써 발견한 불안함도 모른 척 달아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당분간은 '불안'과 같이 살 예정이다. 언제 방을 빼줄진 모르겠지만 적당히 타협도 해보고 이해도 해보면서. 기회가 된다면 불안을 찬찬히 기록해 보고 싶다. 이게 나라면 무작정 버리고 부정할 수는 없는 노릇일 테니.
그런데... 불안은 과연 없앨 수나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