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한 살의 기록 하나
오랜만에 내려간 고향에서 친구 원과 선을 만났다. 원과 나는 여름부터 불안장애를 심하게 앓은 선을 위해 사람이 없는 한적한 곳을 찾았다. 선은 언젠가부터 가족 외 사람을 만나기 어려운 상태가 됐다. 사람을 만날 수 없어 사람을 만나야만 하는 직업에 즉흥적으로 사직서를 냈다고 했다. 집에서 청소기 돌리듯이 그냥 어느 날 갑자기 돌연 듯. 물론 갑작스러운 도망과 같았던 사직서는 곧바로 거두어들였다. 지금 그만두면 앞으로 어떤 일도 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담당 정신과 의사의 만류 때문이었다. 카페만 가도 등줄기에 경직이 일어난다는 선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선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드는 일. 원은 1시간 거리를 운전해서 달려왔다. 우리 셋은 동네에 있는 작은 호텔에서 1박을 하기로 했다.
너네 만나는데 굳이 화장 필요해?
전혀.
셋은 기미가 잔잔히 보이는 맨 얼굴에 브라도 벗어던진 채 넉넉한 잠옷을 입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무슨 얘기부터 꺼내볼까. 사실 우리는 조금 뻘쭘했다.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었다. 지난여름, 선과 섭섭함이 쌓여 연락을 두 달간 하지 않았다. 열에 아홉은 먼저 연락하는 자가 난데없이 사랑 확인을 하고 싶어서였다. 야, 나도 연락받을 줄 안다고. 너 내가 연락 안 하면 연락조차 없는 건 너무 한 거 아니냐. 서른한 살의 어리광은 사뭇 진지해서 선이 끄억끄억 눈물을 쏟아낼 때가 되어서야 멈췄다. 아마 여름밤이 짙었던 그때쯤 나는 선의 상태를 처음 확인했다. 엘리베이터를 혼자 타지 못한다는 선, 꼬박꼬박 약을 먹어야 해서 강제 금주선언을 해야 했던 선, 사람과 말을 하기 전 심호흡을 해야 한다는 선. 두 달 동안 못 볼 꼴을 다 뒤집어쓴 채 선은 얼굴이 뾰족해져 있었다. 기지배 미안 쿠로. 우린 가타부타 말없이 맥주부터 들이켜기로 했다. 물론 선은 콜라를 땄다.
나는 돌겠다.
두 살 연하와 연애를 하고 있는 원이 말을 꺼냈다. 이제 갓 취직한 연하 남친 석과의 결혼문제 탓이다. 결혼하고 싶은 원에게 석은 대리가 될 때까지 기다려 달라했다. 무려 3년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3년 뒤면 내 나이 서른넷. 그때는 너무 늦지 않을까. 내 나름의 마지노선이 있는데.
그게 언젠데.
서른둘.
그럼 내년이잖아. 석에 대한 확신은 있다면 상관없지 않을까.
그걸 모르겠다고, 사실은 그게 제일 큰 걸림돌이라 했다. 평생을 살아가야 할 석에 대한 확신. 사랑을 퍼주는 일에 익숙한 원이 공급이 넘치는 사랑만 하길 원하지 않는다 했다. 사랑은 무한한 것이라 하지만 평생 공급-공급-공급만 할 수 있나. 그러다 고갈되면?
나도 여자잖아. 석에게 엄마랑 누나가 아니고.
어떤 조건도 충분하지 못한 사랑 앞에서는 맥을 추리지 못했다. 사랑받고 싶다잖아. 선은 빈 콜라캔을 엄지로 구겼다. 역시 맥주보다 영 맛이 안 나네. 결혼도 콜라처럼 그까짓 거 대충 대신할 수는 없는 거야. 대신하진 못하지 그럼. 선의 말에 원은 내내 굽혔던 허리를 펴 침대에 누웠다. 지금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건 고작 허리뿐이라는 듯이.
뭐 이렇게 되는 일이 없냐. 학생 때는 대학 가면 다 될 줄 알았지. 졸업했더니 취직이 남아 있네? 취직 5년 동안 쌔빠지게 했더니 이젠 결혼이 남았네? 결혼 좀 늦게 하려고 했더니 자궁의 문제가 남은 건가.
아웃사이더 같은 원의 말투에 헛웃음이 터졌다. 너는 결혼 어떻게 했냐고. 원이 내게 물었다. 몰라, 그냥 되는대로 했어. 결혼할 남자는 어떻게 판단했느냐는 질문엔 늘 설레는 사람은 아니라도, 그가 없으면 내일의 생활이 그려지지 않는 사람이랑 결혼해야 하지 않겠냐고. 아직 검증이 덜 된 아름다운 동화 같은 이야기를 해댔다. 뿌옇게 흐려진 대답에 원은 다음 질문을 삼켰다. 이런 무책임한 말들이 쏟아져 나온다는 건 지금 내게서 현실이 멀어지고 있다는 신호였다.
몰라 몰라. 묻지 마. 결혼한다고 끝이 아니야. 요즘 나는 허무해 생활이. 해서 뭐해 병에 걸렸다고. 도예 해서 뭐해. 맛있는 음식 먹어서 뭐해. 돈을 모으면 뭐해. 뭐해, 뭐하지 우리? 우리 뭣하러 열심히 사는 거야?
그러게, 결혼해서 뭐해.
불안함 참으며 일해서 무엇 해. 무엇하냐고.
세 명은 깔깔대며 각자의 침대에 누웠다. 우리 모두 취업한 지 7년째였다. 민증상 어른이 된지는 11년 차였다. 아직 해내야 할 돈벌이가 아득했고, 짊어져야 하는 것들은 늘어났다. 남은 별스럽지 않게 해내는 게 내게는 왜 질문으로 남는지 알지 못했다.
그때 우리 기억나냐. 학교 앞 축제 가려고 야자 짼 거.
선은 만득이 먹다 풀숲에서 담임과 마주친 얘기를 하며 웃었다.
아마도 우리에게 다시 오긴 어려운 짜릿한 해방감일까.
서른한 살의 여자 셋은 뭘 째고 벗어나야 할지도 모른 채 아득한 벽을 타고 있었다.
타고. 타고. 타면 넘어가려나.
토요일 새벽 세 시를 넘어가는 시간, 잠에 담금질당하듯 정신이 깜빡거렸다. 노곤한 새벽,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무중력 상태. 몸도 마음도 아무런 부딪힘 없는 무해한 지점에 이르렀다. 며칠간 잠을 설쳤던 내게 오랜만에 찾아온 평화였다. 더 잘하려 하지도 더 노오력 하지도 않고 그저 무해한 정도까지만 해내기로 하자.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고장 나 손쓸 수 없을지 모르니 적당히 생활의 동력을 잃지 않을 정도만. 누구도 다치지 않고 무해한 장소에서 안전하게 살아가는 찰나의 꿈을 꿨다.
우리 해서 뭐해 말고 해서 무해하자.
쟤 뭐라는 거야. 잠이나 자.
선이 늦은 약을 챙겨 먹었고, 원과 나는 각자의 이불속으로 스멀스멀 기어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