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것도 아닌 일의 힘

목적 없이 사는 법, [카페 뤼미에르]

by 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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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고 계시는 당신은 평소 어떤 마음으로 세수를 하시나요.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거리를 걸을 때, 아니면 혼자 식사할 때는요. 저는 일정이 있으니 준비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얼굴을 씻고, 누구누구를 만나야 하니 혹은 어디를 가야 하니 얼른 가야지하는 마음으로 빨리 걷고, 나중에 배고프지 않게 뭐라도 먹어둬야지 하는 마음으로 밥을 먹곤 했습니다. 일상의 행위를 할 때 그 모든 행위의 저변에는 그 행동을 해야 하는 이유와 목적이 반드시 있었죠.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외에 다른 방식의 삶의 태도가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누군가에게 배운 적도 없고요.


그러던 제 생각이 완전히 깨진 계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아주 사소한 계기고, 그 이후 제 인생이 실체적으로 드라마틱하게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만 저 스스로는 알고 있죠. 그 전과 그 이후의 저는 질적으로 완전히 달라진 인간이라는 것을요.



그 계기는 소박한 일본영화였습니다—카페 뤼미에르. 이 영화를 처음 본 건 20대 후반, 허우 샤오시엔 특별전 때였습니다. 사실 당시 함께 상영했던 줄리엣 비노쉬 주연의 [빨간 풍선]을 보러 간 것이었는데, 전 되려 이 영화를 보고 왠지 모를 충격을 받았습니다. 일단 여기서 오해하시면 안 되는 것이, [카페 뤼미에르]는 심심한 영화입니다. 줄거리랄 것도 딱히 없고, 여주인공의 일상적인 며칠을 담담하게 그린, 꽤 전형적으로 보이는 일본영화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영화에 깊이 매혹되었습니다. 극장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다음 회차 표를 끊고 또 봤을 정도로요.


분명 무언가에 강렬히 끌린 게 분명한데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 정확히 언어화할 수가 없어서 그 뒤로도 영화를 소장해서 보고 또 봤습니다. 제가 이 영화에 얼마나 진심이었냐 하면 대만에 놀러 갔을 때 이 영화의 DVD를 사겠다고 허우 샤오시엔 감독이 만든 예술영화 극장, '타이베이 필름하우스'의 소품샵에 갈 정도였습니다(1층 카페 이름이 '카페 뤼미에르'였습니다. 지금은 어떻게 바뀌었는지 모르겠네요). 안타깝게도 영화 DVD는 재고가 없어서 사지 못했지만요.


아마 이 영화를 백 번은 족히 봤을 겁니다. 지금은 덜하지만 처음 한 5년 정도는 이 영화를 배경영상/음악처럼 틀어놓고 있을 때가 아주 많았기 때문입니다. 소리만 듣고 있다가 제가 좋아하는 장면이 나오면 하던 일을 중단하고 하염없이 화면을 들여다보곤 했죠.


그렇게 보고 또 보고 나서야 제가 이 영화의 무엇에 그렇게 빠졌었는지 조금씩 구체화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건 바로 '목적 없는 행위'란 것이 어떤 건지 이 영화를 통해 처음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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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인 요코가 이 영화에서 하는 일은 별것 없습니다. 그저 거리를 걷고, 버스에 올라 창밖을 바라보고, 그러다 생각이 떠오르면 수첩을 꺼내 메모를 하고, 기차에서 까무룩 잠들고, 집에 덩그러니 앉아 우유와 초코 과자를 먹고, 낮잠을 자고, 썸타는 남자 사람 친구랑 집에 나란히 앉아 컴퓨터 화면 속 그림을 구경하고, 단골 카페의 단정한 짙은 색 원목 테이블에 노트북을 펴놓고 일하고, 고향 마을의 간이역에 들러 이제는 할머니 고양이가 된 토라짱의 안부를 묻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평범한 장면들은 제가 그전까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목적을 염두에 두지 않은 행위 그 자체', 무엇의 수단이 아닌 그 순간에 충실한 행위 그 자체로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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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씀드렸다시피 그전까지 저는 간단한 세수를 할 때도 어떠한 목적이나 목표 없이 '세수'만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세수란 자고로 누구를 만나기 위한 준비 과정, 혹은 정신을 차리기 위해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언제나 내심 '얼른 해치워버리자'의 마음으로 얼굴을 씻고 이를 닦았죠. 세수 그 자체에 오롯이 주의를 기울인 적은 없었습니다. 거리를 걷는 것 역시 목적지를 향해 간다는 외적인 목표가 언제나 그 동기였기 때문에(심지어 산책할 때조차) 지루한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보내려고 음악을 듣거나 몽상에 빠진 채 걷는 게 대부분이었습니다. 그 순간 오감으로 느껴지는 거리의 풍경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면서 걷기'만'을 경험한 적이 없었습니다.


물론 이 깨달음은 감독의 의도와는 무관한, 오로지 저만의 주관적인 해석이고 아하! 순간입니다. 혹시나 이 영화를 보신 분들은 그냥 평범한 일본의 일상 풍경인데? 오바한다, 라고 말씀하실 것 같기도 해요. 하지만 이 영화를 계기로 체험한, 수단으로서가 아닌 '행위 그 자체를 위한 행위'라는 관념은 이후 제 내면에 큰 영향을 끼쳐서 일상을 살아내는 방식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이제 저는 세수할 때는 그냥 세수만, 걸을 때는 그냥 걷기만, 손빨래할 때는 손빨래만, 과자를 먹을 때는 그냥 과자만, 고양이랑 놀 때는 그냥 놀기만 합니다(적어도 그럴려고 노력합니다). 어떤 목적도 목표도 없이 그 행위만을 '그냥' 해봅니다.


그런데 이렇게 ‘그냥’ 하다 보면 재밌는 일이 일어납니다. 일상의 연속적 순간이 잠시 깨지면서 고요한 공동이 생겨나고, 그 공동 속으로 에너지가 차오르죠. 남들이 봤을 땐 슴슴하고 무맛일 것 같은 그 행위가, 어떠한 정보값도 의밋값도 없어 보이는 일상의 행위가 사실은 고갈된 에너지를 채우는 데 직방이라는 사실은 제가 오직 경험으로 체득한 최초의 삶의 비기였습니다.


사는 데 휩쓸려 이 사실을 잊고 홀로 휘청댈 때면 전 어김없이 [카페 뤼미에르] 영화를 틉니다. 그리고 흘러가는 일상 속 고요한 공동을 만들기 위해 소소한 일상을 단정히, 그러나 충실히 사는 데 주의를 기울입니다.


꽤 담백하지만 효과 좋은 에너지 충전법입니다. 당신도 한 번 해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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