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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스 May 18. 2021

반쪽의 눈이 내게 말을 걸었다.

다섯(Dasutt) - 야,야


언젠가 심심한 날에 나는 블로그를 켜서 내가 좋아하는 걸 주욱 적었다. 좋아하는 걸 하며 살고 싶었는데 막상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잘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잘하는 걸 좋아하는 거라 착각하며 살고 있던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섰지만 적어 내려가다 보니 신이 났다. 오래된 골목 걷기, 줄 있는 이어폰으로 음악 듣기, 하루 종일 누워서 책 읽다 잠들기, 친구와 넷플릭스를 보며 수다 떨기, 선풍기를 틀고 그 앞에 서서 부채질까지 하기. 아주 사소한 것들이었지만 떠올리기만 해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배낭 하나 덜렁 메고 홀로 떠나는 세계여행처럼 거창하지는 않았지만, 내게는 그 나름의 낭만을 가진 것들이었다.


다른 사람의 고민을 들어줄 때는 '야, 뭘 그리 어렵게 생각하냐. 하고 싶은 거 하며 살아!' 같은 말이 자연스레 나온다. 그런데 그것이 내 이야기가 되면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행복이 밥 먹여주지 않는다던데, 그래서 행복 찾아 떠났다가 먹고 살기 힘들어지면, 되려 그 행복은 죄책과 원망의 대상으로 추락하는 게 아닐까? 피곤하게 살지 말라고 남에게 조언하면서도 정작 내 인생은 피곤하고 복잡하다는 게 참 아이러니했다.



야, 야 피곤하게 좀 살지 마 봐

야, 야 좀 더 인생을 즐겨봐 봐

야, 야 주위를 한번 둘러봐 봐

야, 야 어울리는지 거울을 봐봐

-다섯(Dasutt), 야,야



인디스러운 취향을 가지고 있다 생각하지만 은근히 까다로운   음악적 입맛이다. 새소년은 너무 마이너하고, 쏜애플은 너무 어렵다. 듣다가 드는 생각들에 잠겨 정작 음악은 즐기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면서부터 그들의 음악을 듣지 않았다. 한때 (사실은 지금까지도) 잔나비를 최고의 밴드라 일컬었지만, 시간이 흐르면 뭐든 흐릿해지듯 그들을 향한 애정도 살짝은 흐릿해졌다. 그런데 다섯을 만났다. 군백기를 거치고 있는 그들이지만, 남기고  음악들이 심상치 않다는 생각이다.


위로라기엔 거창한 것 같다. 굳이 위로라고 한다면 앞에 '툭- 던지는' 위로라 덧붙이고 싶다. 옆에 서서 우산을 씌워준다기보다는 함께 걸어주는 노랫말을 가지고 있다. 선율은 지나치게 잔잔하지 않아서 굳이 저녁길에 들을 것을 권하고 싶지는 않다. 우리는 언제나 지칠 수 있고, 그런 맥락에서 언제나 듣기에 알맞은 노래다. 밴드의 음악은 연주하는 이들과 노래하는 이, 그리고 호응하는 이들이 모두 모였을 때 완성된다. 좁은 공연장에 모여 손 뻗으며 함께 부르고 싶은 노래다.


노래를 듣다 앨범 커버 속 반쪽의 눈과 마주쳤다. 꼭 내게 묻는 것만 같았다. 야야- 피곤하게 살지 말라고 외치는 것만 같았다. 눈은 피했지만 여전히 외침은 머릿속을 떠다니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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