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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스 May 12. 2021

비가 와도 우산을 펴지 않을 수 있잖아

라데코-Rainy day (feat. 스키니 브라운, 윤진영)

꿉꿉하니 찐득한 날씨가 돌아왔다. 집 문을 나서는 순간 느껴지는 따스함이 곧 답답하리만큼 뜨거운 공기로 바뀔 날이 머지않았다. 어느덧 5월이 되었고, 봄이 간 자리에 여름이 차오르고 있다. 지겹게 울어댈 매미와 함께 보내야 할 올여름이 두렵기는 하지만, 아이스크림 하나 손에 쥐고 산책할 선선한 저녁을 떠올리면 썩 나쁘지만은 않다. 지겨운 바이러스 때문에 과연 마음 편히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거닐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지난주에는 비가 왔다. 꽤 오랜만에 온 비라 그런지 반갑기도 했다. 입으려고 꺼내 둔 흰 바지를 못 입은 건 아쉬웠지만, 우산으로 눈앞을 가리며 세상을 보다 좁게 볼 수 있는 건 마음에 들었다. 우산을 쓰면, 불필요하게 마주쳐야 했던 모든 시선들로부터 자유로워진다. 한적한 거리에 마주오는 단 한 사람과의 어색한 눈짓을 주고받을 필요도 없다. 부딪히지 않을 만큼의 적당한 눈높이만을 남긴 채 우산으로 가린, 내 좁은 시야가 딱 나에게는 적당하다. 사납게 질주하는 자동차로부터 튀기는 구정물도 없었다. 추적추적 비는 왔지만 기분이 좋았던 이유는 그 때문이다. 


깨달은 것 하나. 호주 사람들은 우산을 잘 쓰지 않았다. 물론 천둥 번개가 치는 요란한 날씨는 예외였지만. 웬만큼 흩날리지 않아서야, 절대 우산을 펴는 법이 없었다. 호주에 도착하고 처음으로 비가 온 날, 나는 친구에게 물었다. 우산을 왜 쓰지 않느냐고. 친구는 의아해하며 답했다. '비를 왜 맞으면 안 되는데?' 


생각해보니 그랬다. 옷이 좀 젖으면 어떻고, 머리가 좀 젖으면 어때서, 우리는 비를 피하려 우산을 펴고 지붕 밑으로 달려갈까. 젖으면 말리면 되고, 젖은 물기를 말릴 만큼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있는 법인데 말이다. 웬만한 비에는 맨발을 고수하며(도시가 아니고서야 맨발의 호주 사람을 발견하는 건 쉬운 일이다.) 우산을 펴지 않고 거리를 오가는 그들을 보며 오랫동안 생각했다. 그들을 흉내 내며 웬만한 비에는 우산을 펴지 않는 게 제법 익숙해질 무렵, 나는 한국에 돌아왔고 약간의 물방울만 느껴져도 설레발을 치며 우산을 활짝 폈다. 


한국의 비는 산성비라서 더욱 그래야 한다는 건 알고 있다. 그런데 내가 궁금한 건, 과연 이 비가 무해하다 해도 우리는 우산을 쓰지 않을 수 있냐는 거다. 종종 나는 자연스럽게 살고 싶다는 꿈을 꾼다. 모든 상황에 의연하게, 자연스럽게, 여유롭게 대할 수 있는 그런 삶을 말이다. 이제 날이 더워졌으니 두 달 정도가 흐르면 장맛비가 쏟아질 테다. 우리는 우산을 쓸 테고, 서로의 시야가 좁아질 거고, 거리에서 들리는 말소리가 줄어들 거고, 불쾌지수가 높아져 예민해질지도 모른다. 비가 오는 것을 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만, 비가 오는 가운데 들어가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전자는 무드 있는 분위기를 보장해주지만 후자는 뒤처리가 걱정되어 무드 따위는 느껴지지도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젠간, 비가 오면 우산을 제쳐두고 빗속으로 뛰어들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비가 와도 우산으로 서로를 가리지 않은 채, 젖은 머리로 얼굴에 흐르는 빗방울을 스윽 닦는 사람들이 가득한 세상을 살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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