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몽스 May 09. 2021

튜닝의 끝은 순정인 것을

장혜리-내게 남은 사랑을드릴께요

간주만 들어도 가슴이 떨리는 노래가 있다. 이 노래가 그렇다. 그 흔한 영어 가사 한 줄 없다만 그런 건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 곱게 접은 편지 속에 온 마음 다해 쓴 글을 읽는 것 같은 노래, 그 순수함을 동경할 수밖에 없는 노래. 겉치레가 많아 봐야 모두 보기 좋은 허울에 불과하다. 쑥스러워 이것저것 덧붙이다 보면 정작 하고자 했던 말이 무엇이었는지도 까먹기 일쑤다. 오늘도 나는 옛 노래를 들으며 깨닫는다. 튜닝의 끝은 순정임을.


동묘의 한 LP가게를 찾았다. 아주 더운 여름날이었는데, 지나오며 마주한 동묘의 드센 상인들을 보며 나는 기가 죽어 있었다. 몇 바퀴를 돌아서야 겨우 찾은 LP가게 앞에서 쭈뼛거리며 망설였다. 내부가 너무 좁았고, 그곳에서 마음껏 뒤적이기에는 주인아저씨의 눈치가 보일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한참을 망설였지만 그러기엔 밖이 너무 더웠다.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LP판을 뒤적였다. 대체로 상태가 좋은 LP들이었으나 내가 찾던 것은 없었다. 약간의 실망이 드리웠지만 꿩 대신 닭이라고, 금세 다른 판을 찾았다. 그게 바로 조정현의 <그 아픔까지 사랑한 거야>였다. 


판을 들고 계산대에 가자 주인아저씨는 눈을 휘둥그레 뜨셨다. '젊은 친구가 이런 음악을 들어요?' 종종 듣는 얘기였지만 어쩐지 그날따라 쑥스러웠다. 좋아하는 드라마-응답하라1988-의 OST라고 말하며, 제 또래도 이 노래는 많이 안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 후에도 몇 마디를 더 덧붙였던 것 같다. 아저씨는 여전히 '그래도 신기하네. 이건 완전 나 젊을 때 노래거든. 이 노래를 어떻게 알까?'라며 신기해하셨다. 그냥 이 노래 제가 아주 좋아하는 노래예요, 저는 원래 이런 노래를 좋아하거든요! 하면 되었을 걸 뭘 그리 쑥스러워했는지 아직도 종종 후회한다. 


장혜리의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께요>와도 같은 경험이 있다. 아빠의 차를 타고 밥을 먹으러 향하던 중, 차에 블루투스를 연결해 이 노래를 틀자 아빠는 의아해했다. '이 노래는 또 어떻게 아냐?'며 황당해하는 아빠에게 대충 그냥 어디서 들었는데 좋았어,라고 둘러댔다. 리듬을 타며 함께 '힙'하게 놀 수 있는 요즘 노래도 좋지만, 티 없이 맑은 목소리로 꾸밈없는 가사를 부르는 예전 노래도 좋다는 걸 어른들에게 설명하는 건 아무튼 어려운 일이다. 훗날 지금의 노래도 다음 세대에게 이런 취급을 받을 수 있을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이유의 음악을 듣다가 장혜리의 음악을 듣고, 조용필의 노래를 듣다가 원슈타인의 음악을 듣는 나의 심리를 누가 이해해줄까. 그렇지만 세상에 좋은 노래는 너무 많고, 그래서 나는 내 음악 취향을 한 갈래로 정하는 것을 포기했다. 그러나 한껏 치장한 노래보다는 담백한 노래를 선호하는 것이 사실이고, 그게 곧 음악에서 말하는 '순정'이라는 것쯤은 확실히 안다. 노래와 시를 연결 짓는 이들을 음유시인이라고 했다. 가수를 음유시인이라 부를 수 있는 건 언제까지였을까, 아직도 가능한 일일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누구도 잘못한 건 없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