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정아-남
살다 보면 사람의 인연이라는 게 생각처럼 그리 끈질기고 촘촘하지 못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영원할 것 같았던 너와 나의 관계는 한동안 불타올랐을지 몰라도, 결국은 느슨해져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네가 떠난 자리에서 홀로 남은 나는 영원한 어둠 속에 버려진 것 같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것 역시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지고 나는 또다시 삶을 살아간다. 가족과의 관계, 연인과의 관계, 친구와의 관계. 사랑이 들어간 이 모든 관계 속에서 우리는 최선을 다하기 마련이고, 설령 틀어져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었다 해도, 우리는 최선을 다했기에 정말 누구도 잘못한 건 없다.
지금보다 조금 더 어렸을 때는, 나는 우리가 남이 될까 봐 불안했다. 나는 네가 없으면 안 되는데, 이렇게 틀어져 네가 나를 떠나가버리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하루 종일 재잘거릴 상대가 없어지고, 화나는 일이 있으면 나보다 더 화를 내며 불같이 날뛰어줄 사람이 없어진다는 것. 그래서 종종 나는 나 자신을 포기하기도 했다. 나보다는 너를 더 생각하고, 내 행복보다는 너의 행복을 더 우선으로 생각하고, 그래서 네가 나를 떠나지 않기를 바랐다. 사실 너를 원하기에 앞서 그저 내가 혼자가 되지 않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아주 친했던 친구들을 잃는 일도 꽤 자주 벌어졌다. 아끼고 소중히 여겼던 친구와 사소한 다툼을 하고, 그렇게 오해가 커지고, 그래서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었다. 당시에는 배신감을 느끼고 나 스스로를 피해자로 여겼다만,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나니 우리는 서로가 피해자였고 가해자였음을 깨달았다. 오랜 기간 동안 엮인 관계를 유지했던 사람 간의 사이에서, 잘잘못은 반드시 서로에게 귀책이 있기 마련이고 그 어느 누구도 무결점 할 수 없다. 서로를 위했던 시간도 많았을 테고, 그래서 서로 행복했던 시간도 많았을 테고.
눈물도 소용없어요 우리는 여기까지야 이별이 이렇게 쉽네요 돌아서는 그 순간 남 사라지는 우리라는 말
-선우정아, <남>
다만 그 모든 게 거기까지였을 뿐이다. 딱 그 정도로 행복했을 인연이었다고, 그렇게 생각한다. 버틸 수 없는 슬픔은 애초에 짊어지지 않는 편이 좋다. 어깨에 올려 끙끙대지 말고, 바닥에 툭- 내려놓고는 가던 길을 마저 가자. 우리는 그 순간 즈음에 서로를 떠날 인연이었다고 그렇게 생각하는 거다. 남이 되었다 한들 우리가 이전에 '우리'였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고 그 속에서 분명히 행복했기에.
이별은 쉽다. 어쩌면 서로를 관계 짓는 것보다도. 어렵사리 서로를 알았지만 떠나는 건 한순간이다. 나를 떠난 사람들이 그랬고, 내가 사람들을 떠날 때도 그랬다. 서로를 탓하지 말자. 행복했고, 그뿐이었다. 우리는 사라졌지만 너와 나는 실재하고, 우리는 지워졌지만 너와 나는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