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몽스 Jun 01. 2021

죽음, 치우지 말고 정리하세요.

그들이 빈자리를 기억하는 방식에 대하여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무브 투 헤븐> 정주행을 마쳤다. 마지막 회를 보고 나서도 계속 머리에 잔상을 남기는 드라마가 좋은 드라마라고 한다면, <무브 투 헤븐>은 틀림없이 좋은 드라마이다. 어떤 직업이든 귀천이 없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살면서 우리가 만나거나 볼 수 있는 직업은 극히 제한적이다.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직업이 수두룩하다. 죽음, 범죄 등 사회적으로 금기시되는 분야와 맞닿아있으면 더욱 그렇다. 차라리 범죄와 관련된 깡패는 흔한 오락적 가치를 가지기라도 하지, 죽음과 관련된 직업들은 대개 께름칙하다는 이유로 마치 없는 존재들처럼 여겨진다.


그루(탕준상)는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고 있다. 흔히들 말하는 자폐아다. 누구보다 똑똑하지만 그걸 포장해내는데 서투르다. 아는 건 많으나 어울려 사는 법은 모르고, 이성적인 사고를 하지만 감정을 표현하는 데는 더없이 어리숙하다. 그루를 훌륭히 키워낸 아빠 한정우(지진희)는 고인들의 유품 정리를 하는 '무브 투 헤븐'을 운영하고 있으며, 그루는 늘 아빠와 함께 작업에 나선다. 그루에게 작업은 아빠 없이도 척척 유품 정리를 해낼 만큼 익숙한 일이다. 아빠가 갑작스레 사고로 세상을 떠난 후에도 그루가 혼자서 유품 정리를 해낼 수 있다는 건 불행이면서도 다행인 일이다.



유품을 정리하는 일은 그루에게 퀘스트와도 같았다. 순서와 룰이 존재하기에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고인의 방을 치우기 전에는 모자를 벗고 고개 숙여 인사를 한다. 고인이 중요하게 여기던 물품들은 따로 노란 박스에 모아둔다. 고인이 떠난 자리를 정리하며 고인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건지 들어본다. 노란 박스는 소중한 것이므로 꼭 남은 가족이나 지인에게 전달한다. '무브 투 헤븐'은 그렇게 하루하루 다른 이들의 마지막 이사를 돕는다. 그들은 방을 치우지 않고 정리한다. 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치우다'와 '정리하다'가 얼마나 다른 말인지 새삼 깨닫는다.


떠나는 길이 아름다운 사람은 많지 않다. 자신의 죽음을 직감하고 미리 대비하는 경우는 더욱 흔치 않다. 유품 정리 회사를 불러야만 하는 죽음은 유난히 고달프고 서럽다. 누구 하나 마음에 묻어주지 않는 그런 쓸쓸한 죽음들이 그루를 찾아온다. 타국으로 입양되었다 한국으로 돌아왔으나 결국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고 쓸쓸히 모텔방에서 생을 마친 청년, 열심히 일했으나 제때 상처를 치료하지 못해 좁디좁은 고시원 방에서 떠난 청년, 억울하게 남자 친구의 탈을  스토커에게 짓눌려 살해된 여성, 아들 양복    입히지 못한  못내 아쉬워 장판 아래 5만원을 죄다 모아놓다 떠난 할머니, 자신이 떠날 길에 차마 아내를 두고   없어 함께 손잡고  길을 걸어버린 할아버지. 하나같이 안쓰럽고 처연한 죽음들이다.



혼자 남은 그루에게 나타난 삼촌 조상구(이제훈)는 일종의 시한폭탄이다. 본성이 나쁜 것은 아니나 도박판에 휘말린 싸움꾼이다. 아빠와 나무(홍승희)의 보호 아래 살던 그루는 삼촌과 함께 살면서부터 스스로 해내는 법을 배운다. 제멋대로인 삼촌을 때로는 챙기기도 한다. 후견인이라며 나타났지만 실상 성장하는 건 상구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보이는 악의 없는 날카로움은 그루의 마음을 꿰뚫는다. 찔리기도 몇 번, 그루는 그 날카로움 속의 따듯함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한다.

 


드라마의 전반은 그루가 정리한 인생들의 이야기이다. 어떤 사연이 있었고, 어떤 비밀이 있었으며, 그래서 슬퍼해야 하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차근차근 짚어준다. 가슴 절절한 사연부터 얼굴만 봐도 치가 떨리는 사연까지. 슬픔과 분노가 뒤섞인 채로 상구와 그루의 작업을 지켜본다. 그런가 하면 드라마의 후반은 상구와 그루에 대한 이야기이다. 상구가 과거의 굴레로부터 벗어나지 못해 고초를 겪고, 형 정우를 향한 분노와 원망을 감추지 못한다. 그런 와중에 그루는 아빠의 유골을 떠나보내지 못해 끌어안는다.


이 둘이 끝끝내 서로를 위한다는 걸 깨닫는 순간. 그루는 아빠를 보내고 삼촌 상구 옆에 서며, 상구는 형을 향한 그리움을 느낀다. 그 그리움은 그루를 향한 책임감으로 변모해, 결국 상구 자신의 인생을 지켜내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둘은 서로에게 선물이었던 셈이다.



주인공이 자폐아인 설정은 드라마에서 흔한 소재는 아니다. 넷플릭스의 미국 드라마 <별나도 괜찮아(Atypical)의 샘 이후로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설정이었다. 드라마가 세상의 편견을 걷어내는 건 의무는 아니더라도 일종의 책임이다. 우리는 드라마를 통해 보다 많은 사람의 인생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하며, 그렇기에 드라마는 우리에게 보다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보여줄 책임이 있다. <무브 투 헤븐>은 그런 맥락에서도 여전히 좋은 드라마이다.


사람들은 환영받지 못하는 죽음을 치워버리려고 한다. 물리적으로 눈앞에서 치워버리는 것뿐 아니라, 마음속에서도 치워버려 더 이상 떠올리고 싶지 않아 한다. 치우는 건 한순간이지만 그러다 생긴 상처는 한평생 지워지지 않는다. 누군들 죽음을 바라겠는가. 떠난 이를 향한 기억을 고스란히 정리해야 한다. 그게 바로 남겨진 이들이 해야 할 일일 테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것은 야구 이야기가 아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