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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스 May 19. 2021

이것은 야구 이야기가 아니다.

<스토브리그>는 끝났고, 경기는 이제 시작이다.


웬만하면 세상 모든 일에 관심을 가지려고 노력하지만, 여태 친해지지 못한 분야가 딱 두 가지 있다. 스포츠와 게임이다. 둘 중 더 심한 건 스포츠이고, 스포츠 중에서도 가장 심한 건 야구다. 나는 야구를 전혀 모른다. 야구 경기는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아주 기본적인 용어들 조차도 모르고 지냈다. 작년 <스토브리그>가 흥행하고 주위에서 많이들 얘기했지만, 그럼에도 보지 않은 이유가 바로 그래서다. 안 본 게 아니라 못 봤다. 야구를 모르는데 어떻게 야구 이야기를 본 단 말인가. 그런데 이제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이건 야구 이야기가 아니다.


이건 리더에 대한 이야기이자,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훌륭한 리더 백승수와 그의 곁을 지키는 수많은 좋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흡사 히어로처럼 무적으로 갈등을 헤쳐나가는 백승수가 실은 좋은 사람이고, 그의 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 역시 실은 좋은 사람임을 알려주는 이야기. 저마다의 사연으로 때로는 악역이 되고, 비겁해지고, 구차해지지만 세상에 한 면만 가진 사람은 없는 법이다. 만년꼴찌 드림즈가 위기에서 벗어날 때마다 가슴이 벅차오르고, 구단을 등지고 떠나는 백승수의 모습을 보며 눈물을 훔치는 건 나뿐만이 아닐 거다.



야구(잘 모르지만)와 인생은 서로를 닮았다. 훌륭하게 이끌어갈 때는 신이 나고 행복하지만, 실패하고 서투르면 가차 없이 배제된다. 아무리 오래 진득하니 함께 했다 해도 순간의 잘못이나 선택으로 등지게 되기도 한다. 잘은 모르지만 적어도 스토브리그에서 본 바로는 그랬다. 사실 야구만에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경기를 치르는 모든 게 그렇다. 거창한 프로 야구 경기가 아니라도, 하루하루 살아나가는 인생에는 너무나도 많은 경기가 놓여 있다. 백승수처럼 침착하면서도 소신 있게 이겨내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이세영처럼 때로는 깡으로 맞서기도 하고, 장진우처럼 무너진 모습을 보이다가도 따듯한 가족의 품에 기대기도 하며, 임동규처럼 엇나가다가 다시 돌아와 바로 서기도 한다.



스포츠는 냉정한 법이고, <스토브리그>의 최종 목표는 드림즈의 최종 우승이라고 생각했으나 드라마를 보는 내내 우승은 내 관심사가 아니었다. 이들이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느냐 아니냐는 부차적인 문제였고, 나는 그저 백승수가 어디까지 이겨내는지, 이세영은 어떤 성장을 이뤄내는지, 유민호는 심적 부담을 이겨내는지, 한재희는 낙하산 타이틀을 벗어나는지, 권경민은 언제까지 솔직하지 못하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야구'는 타이틀일 뿐, 그 안에서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은 어느 직장인과 다르지 않았고, 그래서 용어나 맥락을 때로는 이해하지 못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는 백승수가 안쓰러웠다. 냉철하고 이성적이면서, 해야 할 일을 과감하게 척척 해내는 리더의 모습이 멋져 보이기도 했지만, 그런 완벽함 뒤에 느껴지는 쓸쓸함이 유난히 커 보였다. 동생의 부상을 향한 죄책감, 깨진 자신의 가정에 대한 미안함, 우승하지만 후에 사라져 버리는 그의 동료들은 백승수를 외로운 사람으로 보이게 했다. 표현에 인색한 그는 먼저 따듯한 말 한마디 건네는 법이 없었지만, 세영이 가끔 그에게 위로와 지지를 대놓고 드러낼 때마다 마음이 놓였다. 그에게는 곁에 있어줄 사람이 필요했고, 드림즈 사람들은 그의 곁에 남아준 사람들이었다. 동료애와 존경이 어우러진 세영과 승수의 관계도 마음에 들었다. 세영이 후에 승수 같은 훌륭한 단장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권경민은 내게 아픈 손가락이었다. 미웠지만 미워할 수가 없었다. 흘러가다 보니 어느새 나쁜 사람이 되어있던 그는 백승수에게 적이었지만, 동료이기도 했다. 승수에게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 또한 경민뿐이라 생각한다. 찍어내려 애썼지만 결국 백승수와의 적대 관계 속에서 권경민은 스스로를 돌아봤고, 성장했으며, 날 선 마음을 제치고 그를 인정한다. 자신을 옭아맸던 부담감을 제 손으로 털어버린 채 자신의 삶을 살아나가게 된 경민을 보며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드라마는 끝났지만 아직도 궁금증이 싹튼다. 백승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새로 맡게 된 단장 자리는 마음에 들까. 거기서도 여전히 시끄럽고 요란하게 일하고 있을까. 권경민과 백승수는 가끔 만나 술잔을 기울이는 사이가 되지 않았을까. 드림즈의 선수들은 좋은 성적을 내고 있을까. 세영과 재희는 여전히 투닥거리고 있을까. 진정한 경기는 끝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이해가 간다. 새롭게 도약한 그들의 인생은 얼마나 흥미진진하게 펼쳐지고 있을지, 알 수는 없지만 진심 어린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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