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식아, 너는 만양 사람이어서 행복하니?
JTBC의 드라마 <괴물> 정주행을 끝냈다. 여운이 가시질 않아 하루 종일 OST를 돌려 듣고, 그래도 아쉬워 대본집 세트를 구매했다. 한 문장 한 문장 되새기며 이동식을, 한주원을, 그들의 터전인 만양 마을을 곱씹는다. 왜 나는 이 드라마를 놓지 못하는가. 어디선가 만양 정육점의 고기 굽는 냄새와 최백호의 울부짖음이 전해져 오는 것만 같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리뷰로, 보신 분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 많습니다.)
모름지기 시골 마을이라 하면 정겨움이 가장 큰 특징이다. 재잘재잘 사람들의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서로 간에 격의 없이 아끼고 챙겨주며, 모두가 나의 부모요, 자식이다. 어느 시골 마을인 '만양'도 그렇다. 동식이(신하균)와 그의 친구들, 직장 동료이면서 인생의 동지인 만양 파출소 사람들, 그 외에 스쳐 등장하는 모든 만양 사람들. 모두가 그야말로 가족같이 가깝고 정겨운 사람들이다. 동식은 비록 자신의 고향 만양에서 하나뿐인 쌍둥이 동생 유연을 잃었고, 그로 인해 가족의 행복마저 빼앗겼지만, 이상하게도 동식이 다시 돌아온 곳 또한 만양이다. 그를 파괴한 곳도 만양, 다시 손 내밀어주어 일으켜준 것도 만양. 동식은 만양 사람이고, 그래서 만양은 <괴물>의 정체성 그 자체이다.
시골 마을답게 만양 사람들은 서로를 위한다. 그런데 그 선의가 묘하게 서로를 괴롭힌다. 서로를 너무 믿기에 숨겨주고, 서로를 너무 믿기에 의심하고, 서로를 너무 믿기에 괴로워한다. 거짓된 모정이, 세상을 향한 뒤틀린 심보가, 권력을 좇는 맹인의 시야가 동식을 구렁텅이로 밀어 넣는다. 동생 유연을 죽인 사람이 동식이라 낙인찍는가 하면, 20년이 흐른 지금 민정을 죽인 범인 또한 동식이라 수군대기도 한다. 그리고 그 수군거림의 중심에는 엘리트 출신의 경찰 한주원(여진구)이 있다. 우리는 한주원의 시선으로 드라마 초반을 따라간다. 께름칙하게 웃는 동식의 웃음 뒤에 더러운 꿍꿍이가 있지는 않을까, 싶어 주원과 함께 인상을 찡그린다. 모든 증거와 정황이 동식을 범인이라고 가리켜고 있고, 우리는 그래서 동식을 의심한다.
동식은 괴물을 잡기 위해 직접 괴물이 된다. 어쩌면 민정이 살아있을지도 모르는 시간에, 동식은 신고를 하는 대신 잘린 그녀의 손가락을 들고 앞마당에 선다. 잘린 열 손가락을 하나씩 평상에 올려놓는다. 사실 진짜 괴물은 동식의 의형제나 다름없었던 마을의 말더듬이 강진묵이었다. 비뚤어진 적개심으로 여자들을 죽인 범인 말이다. 그런데, 주목할 건 그 끔찍한 괴물인 진묵이라 할지라도 동식에게는 예외였다는 점이다. 진묵은 유연의 시체를 동식의 곁으로 돌려주었고, 동식의 어머니를 간호했으며, 죽는 그 순간까지도 동식에게 진실을 말했다. 모든 진실을 알고 있던 진묵의 입장에서, 20년간 동생을 찾아 허덕이는 동식은 우스움의 대상이었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진묵은 자기 방어의 수단으로 침묵을 택했을 뿐, 그는 자신이 죽이지 않은 만양 사람들을 진심으로 아꼈고 위했다. 그 역시 만양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을까.
그러한 만양 마을의 판도를 뒤집는 건 한주원 경위이다. 주원이 만양에 온 건, 결과적으로 보면 동식을 구원하는 걸 넘어서 자기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평탄대로일 것만 같은 그의 인생에 짙게 드리운 안개를 스스로 걷어차고 자기 자신을 그 속에서 구해낼 기회였는지도 모른다. 주원은 유연을 죽인 살인자가 동식이라고 믿고 끊임없이 몰아붙였지만, 범인은 결국 주원의 아버지 한기환이었고 이를 밝히는 것 역시 주원의 손으로 강행한다. 아무리 가족에 정이 없다지만 핏줄을 끊어내는 것은 주원에게도 고역이었고, 주원은 그 갈등을 이겨내고 결국 불행의 굴레에서 빠져나온다. 깐깐하기 그지없는 주원이 처음에는 깍쟁이 같아 묘하게 거슬렸지만, 그의 철저함은 결국 최악의 상황에서도 그를 응원하고 믿게 만들어주는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이방인으로 나타난 주원은 결국 만양 사람이 된다. 우리는 주원이 만양에 나타나는 시점에서 이 드라마를 시작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주원을 따라 동식을 의심하고, 만양 사람들을 의심하고, 만양의 음침함에 주목하고, 결국에는 만양을 의심했다. 시골에 살아본 적 없는 주원과 내가, 시골 마을의 정겨움과 음침함이 한 끗 차이에서 갈린다는 것을 아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단출함이 곧 폐쇄성으로, 정겨움이 곧 오지랖으로, 깊은 신뢰가 곧 거짓말로 이어진다는 건 <괴물>을 보다 보면 누구나 깨닫게 되는 이치이다.
곱씹으며 깨달은 사실 하나. 이방인 주원을 제외한 만양 사람들 모두가 사실은 괴물이다. 보다 보니 정이 들어 정제가 잘못은 했으나 안쓰럽다고 느껴져 행복하기를 바랐던 나까지 포함해서다. 동기가 어쨌든 누군가는 거짓말을 했고, 누군가는 사익을 취했으며, 누군가는 증거를 감추었고, 누군가는 살인을 저질렀다. 사랑하는 아들을 지키기 위해서, 사랑하는 소장님을 지키기 위해서, 사랑하는 동식이 형을 지키기 위해서. 저마다 이유는 달랐지만 어찌 되었든 그 망할 놈의 정이 만양 사람들 스스로를 괴물이 되게 만든 셈이다. 그 마을 속에서 이들을 지켜보던 주원도 결국에는 그들 안에 속하게 되었으니. 절대적 소수에 속하는 이방인의 마음마저 앗아간 이 마을의 매력은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사실은 아주 간단한 것이다. 서로를 가족처럼 생각하는 것. 따듯한 가족의 손길 한번 느껴보지 못한 주원은 더욱이 낯설게 느꼈겠지만, 결국 사람들 간의 그 연대는 자기 자신을 파괴하면서까지 상대를 위하도록 만든다. 정이 무섭고, 사랑은 더 무섭다. 이성 간의 사랑이 아닌, 사람과 사람 간의 사랑이 얼마나 강하고 위험한지를 일깨우는 것만 같다.
아주 다행인 사실은 결국에는 이 마을에 행복이 내려왔다는 점이다. 그 행복이라 하면 미제의 사건들의 해결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평생을 응어리처럼 맺혀있던 유연이를 죽인 바로 그놈을 잡았고, 그래서 그 죄를 지었던 이들을 처벌한 것. 그 일련의 과정 속에서 의심과 불신으로 점칠 되었던 만양 사람들이 다시금 서로를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동식이가 정제를, 동식이가 지화를, 동식이가 재이를, 동식이가 지훈을, 그리고 동식이가 주원을. 물론 그 역의 관계 또한 성립한다. 덥수룩한 동식의 머리가 정갈하게 정돈되고, 그의 입에서 '한주원 경위'가 아닌 '주원아'가 내뱉어진 순간. 그 순간 이 마을에서 <괴물>은 비로소 완전히 사라진다. 드라마는 끝났고, 막이 내려갔으며, 의심과 불행이 걷어졌다.
모든 건 끝났지만 여전히 내 머릿속에는 정리되지 않은 물음표들이 떠다닌다. 단순한 스릴러에서 그치지 않고 사람의 심리를 아주 세밀하게 그려낸 연출과 스토리라인 덕분일까. 동식에게 만양은 무엇이었을까, 주원에게 동식은 무엇이었을까, 만양에게 주원은 무엇이었을까, 만양에게 진묵은 무엇이었을까, 지화에게 창진은 무엇이었을까, 상배에게 동식은 무엇이었을까, 외의 수많은 물음표들이 존재한다. 어딘가에 그들이 아직도 고기를 구워 먹으며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고 있을 것만 같아서 아직은 이 드라마를 보낼 수가 없다.
인물들의 표정만으로도 화면 속의 중압감과 위기감이 느껴졌다. 부담스럽게 느껴질 만큼 화면을 꽉 메운 인물들의 표정들이 여전히 기억에 남는다. 그와 함께 깔렸던 최백호의 OST도 함께다. 안개가 드리웠던 것 같으면서도 때로는 아주 화창해 정겨웠던 만양의 모습들도, 괴물들이 가득했던 그 세상이 주는 여운이 가시질 않는다. 그야말로 하나의 예술작품이었던 드라마 <괴물>은 여전히 나에게 현재 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