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오해영] 정주행을 기념하여 담아놓는 생각들
그 때는 그런게 있었다. 모두가 보는 드라마는 끝까지 보지 않으려는 똥고집. 고3 시절 많은 친구들이 기숙사 침대에 모여앉아 함께 보고, 종종 '내 인생드라마야!'라며 소개를 해도 쉽게 넘어가지 않았던 이유다. 이름이 같은 동창생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로맨틱 코미디. 언뜻 듣기에는 살짝 가볍게 볼 수 있는 드라마라 생각되어 시청을 미루기도 했다. 그렇게 돌고돌아 종영된 지 5년이 흐른 지금, 나는 뒤늦게 <또 오해영>에 빠졌다.
보게 된 이유는 아주 심플하다. ost인 검정치마의 <기다린 만큼,더>에 꽂혔다. 우연히 흘러나온 노래에 마음을 뺏겨 듣고 또 들었다. 작년 장범준의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를 듣고는 홀린 듯 <멜로가 체질>을 정주행 한 이후, ost에 빠져 드라마를 시작한 건 두번째다. 적당히 쓸쓸하고 적당히 따듯해서 이 추운 겨울에 들으며 마음을 녹이기에 적당한 노래였다. 이 드라마의 온도도 이렇게 적당히 쓸쓸하고 적당히 따듯하지는 않을까 하는 궁금증에 넷플릭스를 켰다. 결과적으로는, 예상이 맞았다.
'흙해영'으로 시작해 '박도경'으로 끝나는 드라마다. 금해영(전혜빈)과의 비교 속에서 서럽게 컸다고 하지만 꾸준히 당차고 해맑은 흙해영을 보며 대리 만족을 하고, 함께 서러워하며 몰입하다 보면 어느샌가 박도경이 눈에 밟힌다. '박도경 분조장(분노조절장애)이니?'라며 먼저 본 친구에게 물어볼 만큼, 처음에는 박도경이 썩 마음에 안들었다. 강박적으로 완벽함을 추구하고, 그런 과정에서 무의식적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 자신만의 곪디 곪은 상처를 이유로, 진심어린 말 한 마디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바보같은 사람. 흙해영의 해맑음으로도 커버되지 않는 그의 뿌리깊은 어두움이 불쾌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자신의 운명이 눈앞에 아른거려 힘들어하던 그가 마침내 흙해영에게 '보고싶다'며 진심을 토해내던 순간, 나는 일시정지를 눌렀다. 박도경도 바뀌는구나, 인생 정말 별거없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불보듯 훤하게 보이는 자신의 인생을 거스르려 애쓰는 박도경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박도경이 저 말을 내뱉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지 감히 상상이 되지 않았다. 이 땅에는 시원하게 감정에 솔직한 흙해영보다 속내를 감추고 혼자 끙끙앓는 박도경이 더 많은게 세상이기에. 나 또한 마찬가지다.
박도경처럼 까칠하지는 않지만, 나또한 그처럼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박도경처럼 과격하게 화를 내지 않는 대신 침묵하고 혼자 감내하는 편에 속한다. 여타 관계로부터 받은 상처로부터 의연해 보이려고 한다. 그치만 우리 모두가 알듯이, 앓는 속은 결국에는 썩는다. 그 지경에 이르기 전에, 박도경이 용기 내어 진심을 뱉어 운명을 거스르려 했다는 건, 모든 박도경들에게 건네는 작가의 응원이지 않았을까. 우리도 얼마든지 진심에 진심일 수 있는 사람이라 말해준 건 아닐까.
외모적으로 금해영에게 밀려 나름대로 서러운 삶을 산 흙해영(근데 드라마를 보면 서현진이 너무 예뻐 입을 다물수가 없는게 사실이다.)이 나는 참 마음에 들었다. 주위의 누군가는 '남자에게 밑도끝도 없이 매달리는게 자존심이 없어보여 싫다'고 말했지만, 나의 눈에는 흙해영이 참 당당하고 멋져 보였다. 반짝반짝 빛나보였다. 꾸밈 없이 당당하고, 가식 없이 솔직하고, 기대고 싶은 사람에게 기대고 싶다 말하는게 정말이지 빛나보였다. 그러다 차이면 어때. 쪽팔리기는 하겠으나 적어도 '말해볼걸' 하며 수년 후에도 후회와 아쉬움 속에서 사무치지는 않을 수 있지 않는가.
결국에는 난 해영이가 되고 싶었다. 그것도 흙해영. 주위를 환하게 만들어주는 발랄하고 멋진 사람. 사실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면, 흙해영을 만나는 박도경이 되고 싶었다. 흙해영이 박도경을 변화시켜주었듯, 내 곁에도 나를 변화시켜 줄 누군가가 다가와주길 바랬다. 그렇지만 해영이와 같은 누군가를 만나기를 기대하는 건 확률이 너무 낮은 내 희망사항이다. 내 인복에 기대어 마냥 기다리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 주위에 해영이를 둘 수 없다면, 내가 해영이가 되어주면 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서러우면 펑펑 울고, 하고 싶으면 마음껏 말하고, 다음날 마음껏 쪽팔려하며, 좋으면 활짝 웃을 수 있는 그런 해영이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