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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스 Jun 05. 2021

아! 푸르른 오월이여

그 아픔 속 놓였던 한 무리의 청춘들을 엿보며


촌스러운 드라마가 좋다. 촌스럽다는 말의 어감이 마냥 좋지만은 않지만,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촌스러움은 투박하고 솔직한 말투와 몸짓을 가지고 있다. 촌스러운 사람들은 돌려 말하거나 숨기는 법이 없다. 보고 느낀 바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데 집중한다. '복고' 열풍이 사회를 휩쓸었었지만, 외양의 복고만이 왔을 뿐 이 촌스럽고 아름다운 정서를 동반하지는 않았다는 데 아쉬움이 남을 정도이다.


어딘가 어색한 옷차림으로 한껏 멋을  복고드라마  청춘남녀는 촌스럽지만, 그래서  아름답게 빛이 난다. 세련된 옷차림보다도 투박한 셔츠나 통치마를 입은 사람들이 나오는 드라마를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그래서이다.


오월은 여러모로 찬란한 달이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오월은 늘 그랬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높은 하늘을 찌르고, 부모님과의 애정 어린 시간들을 보낼 수 있어서 기쁜 날들이 이어졌다. 그러나 한차례 그러한 기쁨들이 지나가고 나면 늘 5월 18일이 다가왔다. '광주 민주화 운동'이라는 글자로 매년 수업 시간마다 만나는 날이기도 했지만, 아무리 자주 봐도 적응되지 않고 낯설기만 한 날이기도 했다. 불과 41년 전의 이야기이다. 1980년 광주에서 벌어진 끔찍하고 아픈 그날의 기억은 웃음소리 나던 5월을 한편으로는 아프게 만든다. 행복하고 아파서 빛나는 5월은 그래서 찬란하다.



5.18 민주화 운동은 이미 수차례 영화의 소재가 되었다. 그러나 드라마는 처음이다. <오월의 청춘>이라는 제목을 듣고, 이도현과 고민시가 연인 관계로 나온다는 이야기에 곧바로 보기 시작했다. 둘의 호흡이 <스위트홈>에서 꽤 잘 맞았었기에, 새로운 관계로 등장하는 이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오월과 어떤 연관이 있으려나 싶었지만 광주의 이야기를 다루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드라마는 호흡이 아주 긴 연극과도 같다. 끝날 듯하면서도 쉽게 끝나지 않는다. 5.18 민주화 운동은 우리 모두가 알듯이 가슴 절절한 아픔을 동반할 수밖에 없는 사연을 가졌다. 그런데 이 내용에 청춘 남녀의 사랑 이야기가, 그것도 12부작으로 펼쳐진다니. 보기 전부터 가슴이 아프고 먹먹해지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명희는 씩씩하게 고향을 떠나 광주에서 간호사 생활을 하는 청춘이다. 후에 밝혀지는 이야기지만 억울하게 사람들로부터 견제받고 의심받으며 남몰래 마음속에 아픔을 키우며 자랐다. 그건 명희의 잘못도, 아버지의 잘못도 아니었지만 명희는 이 사실을 알리가 없었고 아버지를 향한 원망을 키워나간다. 그럼에도 사랑하는 동생을 끔찍이 아끼며, 씩씩하게 제 몫을 해나가며 살아나간다. 명희와 희태는 사소한 오해로 인해 서로를 만난다. 친구 수련의 선 자리를 명희가 대신 나가며 만나는데, 희태는 서울 의대 졸업을 앞두고 통기타를 들쳐 멘 아주 살짝의 반항끼를 가진 청춘이다. 모든 드라마가 그렇듯 두 집안은 과거의 악연으로 얽혀있지만, 그런 건 다 부차적인 문제고 명희와 희태는 우선 사랑을 키워나간다.



광주의 그날이 오기 전, 사실 명희와 희태는 광주를 떠나려 했다. 수련의 거짓말이 탄로 나고, 희태의 아버지가 눈에 불을 켜고 그들을 쫓아오기 전 그들은 꼭 떠나야만 했다. 그러나 모든 건 타이밍의 어긋남으로부터 엉망이 된다. 하루만 더, 한 명만 더, 하며 광주 병원을 지키고자 했던 명희로 인해 둘의 도주는 수포로 돌아간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건 명희 곁에 희태가 있다는 사실이다. 시대의 분위기는 극악무도했으나 둘은 아주 젊은 청춘이었고, 어떤 상황에 놓이더라도 사람 간의 인연은 쉽게 끊어지지 않으므로 이 둘 또한 쉽사리 끊어지지 않았다.



보는 내내 그런 생각이 들었다. 모든 장면의 끝에 '않았더라면-' 하는 물음표가 내 머릿속을 떠다녔다. 이를테면, 명희와 희태가 손을 잡고 뛰는 걸 아무도 보지 않았더라면, 수찬 오빠가 명희를 좋아하지 않았더라면, 명희가 수련이를 조금만 덜 아꼈더라면, 명희의 아버지가 조금만 덜 억울했더라면, 그렇다면 이 둘의 앞길 또한 달라지지 않았을까. 물론 아직 2회가 남아 결말이 난 것은 아니지만, 그 많은 물음표들이 실제였다면 이 둘이 겪어야 했던 고초가 반이나 줄어들게 분명하니까. 그래서 불가능한 걸 알지만 계속 그런 물음을 던져댔다.


오월의 그날, 광주에서는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우리가 아는 참상의 내용 말고 그 이면의 장면들이 궁금하기도 했다. 명희와 희태처럼 피하지 못해 그날을 겪어버린 사람들이 넘쳐날 텐데, 그렇다면 그들이 가진 저마다의 아픔과 상처는 도대체 어떻게 치유받을 수 있을까. 모두의 이야기가 다 드라마 같지는 않았을까. 거기에 있던 사람들은 다 명희고, 수찬이고, 희태고, 수련이지 않았을까.



등장인물이 모두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면 좋겠다. 모두가 멋지게 헤쳐나가 마지막 장면에서 서로를 부둥켜안으며 잘 버텼노라고 다독여주며 끝나면 좋겠다. 희태와 명희가 걷는 광주의 거리 하늘이 더없이 찬란하게 빛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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