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치마 - 내 고향 서울엔
나는 항상 서울에 살고 싶었다. 서울에는 한강이 있었고, 좋아하는 가수들의 콘서트가 열리는 공연장이 있었고, 한껏 꾸민 사람들이 바쁘게 오가는 번화가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제일 멋지다고 생각했던 동네는 신촌이었다. 신촌에 있는 대학엘 가고 싶었고, 언젠가는 밤늦게까지 공부하거나 술을 마셔 새벽의 신촌을 거닐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다.
반쯤은 이뤘다고 봐도 무방이다. 결국 나는 신촌에서 대학을 다녔고, 이제 신촌 거리만 봐도 넌더리가 날 정도로 쏘다녔다. 신촌에서 시작해 홍대, 망원, 상수까지. 지하철을 타고 학교를 오가야 된다는 사실이 조금 싫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번화가의 중심에서 대학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벅차고 설렜다. 물론 그 설렘은 일 년도 채 지나지 않아 꺾였지만 아무튼 누가 뭐래도 신촌은 내 두 번째 고향이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나는 일산에 살았다. 고만고만한 동네 범위 내에서 움직인 적은 있어도 그 밖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게 들 때는 주로 늦을세라 헐레벌떡 아침을 질주해 사람들로 빽빽한 지하철에 몸을 구겨 넣는 시간대였다. 가끔 뒤풀이가 있을 때면 지하철 시간표를 거듭 확인하며 늦지 않게 집에 가려 노력하는 것도 꽤 성가셨다. 시간이 갈수록 내 진짜 고향에 대한 생각은 희미해졌다. 아주 일찍 나서 아주 늦게 들어가는 정도였지, 그곳에서 쌓은 추억은 얄팍하고 덧없었다.
내 고향 서울엔 아직 눈이 와요
눈 비비며 겨울잠을 이겼더니
내 고향 서울엔 아직 눈이 와요
쌓여도 난 그대로 둘 거예요
-검정치마, <내 고향 서울엔>
가슴이 답답하면 자전거(따릉이라 하기도)를 타고 한강엘 갔다. 혼자 강변을 따라 자전거를 타다 보면 노을이 졌다. 가끔 책을 들고 가서 읽고 싶었지만 한국에서 한강 벤치에 앉아 혼자 책을 읽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녔다. 학교가 끝나면 이어폰을 귀에 꽂고 뒷문에 있는 염리동 언덕엘 올라가 좋아하는 서점에 들르거나, 자전거를 타고 한강엘 가거나, 좋아하는 음반 가게를 찾았다. 내 두 번째 고향 서울에는 그렇게 내가 좋아하는 공간들이 많았다.
개중에는 사라진 곳도 있고, 남아있는 곳도 있다. 인연도 그렇다. 하루의 대부분을 서울에서 보낸 지 5년째이니 스스로를 반 서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아직도 2호선을 타고 합정에서 당산으로 넘어갈 때면 뻥 뚫린 한강 모습에 심장이 두근대는 경기도 촌사람이지만, 그래도 나는 서울이 여전히 좋다.
졸업을 하고 쌓았던 추억들이 하나둘 희미해져 간다. 학교를 떠나니 지난 몇 년 간 만났던 사람들, 찾았던 공간들, 했던 대화들이 무색해진다. 또다시 이방인. 잠시 정 붙였던 서울이 다시금 어색해지려 한다. 언젠간 서울이 온전한 내 고향이 될 날이 오기를, 집 가는 지하철에 몸을 실으며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