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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스 Sep 03. 2021

1인분의 외로움

혼밥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필요한 게 정말 사람일까?


사실 내게 '혼영'은 꽤 쉬운 일이었다. 그러나 '혼밥'을 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꽤 길었다. 영화관은 대체로 어두워, 주위를 살피기에 적당한 곳이 아니다. 그러니 자연스레 혼자 앉아 있는 사람을 향한 관심이 금방 사그라든다. 그런데 식당은 밝다. 식당뿐만이 아니라, 사실 영화관이 아닌 모든 세상은 너무 밝다. 그래서 혼자 있는 사람을 향한 시선이 쉽게 거둬지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북적이는 식당 안에 들어가 말없이 스마트폰 속 동영상을 보며, 밥을 먹는 건 아직도 완전히 익숙지가 않다. 딱 주문하는 1인분의 양만큼의 외로움을 감당해야 하는 것. 적응했다 싶다가도 문득 낯설게만 느껴지는 숙제다.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은 콜센터 상담 직원 진아(공승연 분)의 시점을 따라간다. 진아는 뭐든 혼자 하는 여자다. 출퇴근도 혼자, 밥도 혼자, 집에서도 혼자. 일하는 그녀의 귀에는 헤드폰 속 고객들의 말이 흘러나오고, 일하지 않는 그녀의 귀에는 스마트폰과 연결된 미디어의 잡음이 흘러나온다. 이러쿵저러쿵, 쏟아지는 세상의 일들을 하루 종일 듣는 셈이지만, 진아는 도통 입을 여는 법이 없다. 대화보다 침묵이 익숙하고, 관심보다는 무심함이 어울리는 사람. 진아는 그래서 언뜻 보기에 더없이 차가워 보인다.



더군다나 진아에게는 어린 시절의 상처가 있다. 바람나 자신과 엄마를 두고 떠났던 아버지에게서 받은 상처다. 그런데 아버지가 어느 날 갑자기 집으로 돌아온다. 엄마는 세상을 떠나고, 자신을 떠났던 아버지는 다시 돌아오고. 진아는 그런 상황이 혼란스럽다.


그런 진아 곁에 다가온 건 아버지뿐만이 아닌다. 옆집으로 이사 온 성훈(서현우 분), 콜센터 후임으로 들어온 수진(정다은 분)이 자꾸만 진아에게 말을 건다. 그들의 관심과 환대에 진아는 선뜻 호의로 답하지 못한다. 진아는 환대에 익숙지 않은 사람이다. 그래서 자꾸 뒷걸음질 치며, 인상을 쓰고, 한숨을 쉰다.



진아가 견디던 혼자만의 생활은 나름대로 부족함이 없었다. 좁기는 하다만 자신 혼자 사는 집도 있었고, 직장에서는 실적 1등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그런데 진아의 인생에는 '함께'가 없었다. 함께여야만 누릴 수 있는 무언가들. 이를테면 웃음, 재미, 환대, 연대, 공감 같은 것들. 그런 것들이 없었다. 그래서 진아의 생활은 커튼을 걷어내지 않아 어딘가 그늘져버린 진아의 방처럼, 어둑하니 꼭 쓸쓸함이 항상 드리워져 있었다.


혼밥을 비롯한 '혼자만의 인생'이 반드시 쓸쓸한가. 물론 아니다. 때로는 정말 간절히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부대끼며 답답하게 사느니, 차라리 혼자 맘 편히 밥 먹고, 영화 보고, 살아가면 정말 좋겠다는 그런 생각. 진아도 그런 생각을 늘 하고 있었을 테다. 자신을 버리고 떠났던 아버지처럼, 언젠가 떠날 사람들에게 정 같은 거 줘서 뭐하느냐고, 그냥 맘 편히 혼자 내 인생 열심히 살아가면 그만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수진의 살가움이 부담으로 느껴져, 뒷걸음질 치던 진아는 결국 더 이상 다가오지 말라는 엄포를 놓는다. 그런데 그런 진아의 곁에서 수진이 아예 사라져 버린다. 힘듦을 못 이겨 콜센터를 때려치우고 만 수진의 빈자리에서, 진아는 여태껏 참아오던 외로움의 양이 결국 '1인분'을 넘어버렸음을 깨닫는다.


수진이 항상 혼자만의 점심시간 속에서 마주하던 1인분의 외로움은 견딜만한 것이었으나, 이미 곁에 들인 사람이 있었던 한 그 빈자리에서 느껴지는 외로움은 1인분 이상의 것이었던 셈이다. 그 깨달음 앞에서, 수진은 결국 손을 내민다.


진아에게, 이사 온 성훈에게, 고독사로 죽어버린 옆집 청년에게, 거실을 서성이며 춤 연습을 하는 아버지를 향해. 활짝 두 팔을 벌려 끌어안는 환대를 하지는 않더라도, 손을 쫙펴 내미는 그 정도의 관심과 애정. 그렇게 미약하게나마 창대한 진아의 변화와 함께, 진아는 집의 커튼을 활짝 걷어낸다.


햇볕이 드는 진아의 좁은 방. 앞으로의 진아의 인생이 쓸쓸함 대신 햇볕의 느슨한 따스함으로 가득하길, 나도 모르게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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