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바다 앞에서 행복할까
회사를 다니고 약 1년 만에 휴가를 얻었다. 노트북 한번 켜지 않고 정말 휴가답게 보낼 수 있는 '진짜 휴가'. 가장 친한 친구와 함께 주말을 끼고 3일 동안 떠난 부산 여행. 비 한 방울 맞지 않고 바닷바람을 듬뿍 느끼고 왔으니 그런대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떠나기 전 (누군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이런 말을 들었다.
"바닷가는 참 좋아. 바다 앞에서 사람들은 행복하잖아"
듣고 조금의 시간이 흐른 후, 갑자기 다시 이 말이 생각나 재빨리 메모장에 적었다. 바다 앞에 사람들은 행복하잖아. 진짜 그런가? 나는 바다 앞에서 대체로 행복했던가? 그렇다면 행복해지고 싶으면 바다 앞에서 나의 시간을 보내야 하나? 생각은 꼬리의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나는 정확히 일주일 후 부산 바다 앞에 서있었다. 바닷가 앞에 선 사람들은, 나 말고도 수많은 사람들이 서있었는데, 정말로 행복해 보였다.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재롱부리는 아이를 보며 웃음 짓는 가족들, 다정하게 서로를 눈에 담는 커플들, 조용히 혼자 만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까지. 내가 갔던 날짜는 휴가철 끝자락이었으므로, 저마다의 현실에서 벗어나 얼마만의 휴가를 즐기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을 테다. 휴가란 쉬는 시간이니까, 쉬는 사람들은 행복할 수밖에 없으므로, 그래서 대체로 사람들의 얼굴이 밝아 보였지 않았을까.
나는 밤바다를 무서워했다. 아득하게 까만 밤바다를 보고 있으면, 꼭 일렁이는 물결이 나를 덮칠 것 같다는 무서운 상상을 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철썩- 하며 부딪히는 파도는 꼭 나한테 가까이 오지 말라 경고하는 것 같았다. 더 이상 다가가면, 끝을 알 수 없는 파도 속으로 빨려 들어가 영영 돌아오지 못할 것만 같았다. 알지 못하는 세계에 대해서는 동경심보다 공포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나는 새벽 밤바다의 세계를 알지 못했고 그 무지는 여전히 나를 두렵게 만든다.
아무 생각 없이 찾아간 광안리
그때 그 미소가 그때 그 향기가
빛바랜 바다에 비쳐
너와 내가 파도에 부서져
깨진 조각들을 맞춰본다
-최백호, <부산에 가면>
부산은 두 번째였다. 엄마와 찾았던 첫 번째 부산은 너무 빠르게 지나가 정신이 없었다. 수도권 촌놈이었던 나에게 부산은 그저 미지의 도시였고, 밤바다와 비슷하게, 미지의 도시는 알 수 없는 거리감을 선사했다. 사투리가 짙은 곳. 사투리만큼이나 색채가 강해 내게 부산은 꼭 외국 과도 같은 도시였다. 해운대부터 광안리까지, 바닷가를 따라 이어진 도시는 보이는 것이라곤 산 혹은 건물뿐인 내 고향과는 무척 달랐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걸을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내겐 충분히 매력적인 도시였다. 반짝이는 광안대교를 보며 요트를 탈 수 있다는 건 어쩌면 그들의 특권일지도. 모처럼 관광객이 되어 바다를 원 없이 누리다 보니, 문득 며칠 후 다시 출근해 일을 해야 하는 건 꼭 다른 세계의 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밥도, 낙곱새도 없었던 여행.
그러나
캐리어를 찾기 귀찮다는 이유로 큰 배낭을 메고 떠났던 부산, 그 배낭을 업고 낑낑 대며 버스를 타기 위해 언덕 위 정류장을 올랐던 여름, 시원하게 뻗었던 바닷가의 하늘. 그만으로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