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과 사랑 그 언저리에서...

부부싸움의 시작과 끝

by 혜윰


늘 그렇듯, 싸움은 아주 작은 일을 계기로 시작되었다.


이번 주, 월요일.

수요일에 아이 학교 녹색학부모 봉사활동(1년에 1번이다.)이 있었는지라, 저녁즈음 남편에게 사실을 알리고 가줄 수 있는지 물었다. 아무래도 내가 가려면 일부러 전담 선생님께 부탁드려 수업을 변경하고 가야 하기 때문에 원래도 남편이 거의 해주는 편이었고, 그런 대답을 기대했으나, 어쩐 일인지 남편의 입에서 “난 안돼는데”라는 말이 돌아왔다. 사뭇 단호함마져 느껴지는 그의 대답에 당황한 나는 잠시 침묵했으나, 이내 속은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사실 평상시의 그는 사뭇 다정한(?) 말투의 소유자로, 장난스럽기는 해도 쌀쌀맞지는 않은 편이다. 그러나 그날을 비롯해 그 전의 약 1-2주간,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남편의 텐션은 상당히 많이 가라앉아 있었고, 나는 그런 그의 태도를 예의주시하며 꾹 참고 있었던 중이었다. 참고로, 남편이 텐션이 가라앉을 때면 소위 ‘동굴로 파고들어간다“는 남자의 습성을 여실히 보여주며, 절대 그 이유를 속시원히 얘기 하지 않고, 모든 집안일에 슬그머니 손을 떼어버리는 태도를 보인다. 주기적으로 한번씩 이런 때가 찾아오는데, 신혼 초부터 겪었던 일이라 이제는 며칠 정도는 참아주는 인내심이 생겼으나, 이날의 나는 아니었다. 일단 학교에서 미친 듯이 몰아치는 학기말 일폭풍에 휘말려 헐떡이고 있었고, 남편이 손놓아버린 집안일(그나마 설거지는 해주었는데..)마저 내가 해야 하는 일이 빈번했다. 남편은 차가 막힌다는 이유로 새벽 6시 반에 출근해 저녁 9시가 다 되어서야 집에 오는 사람이었고, 결과적으로 아이를 돌보는 모든 일도 내게 맡겨진 상황이었다. 안그래도 슬슬 힘이 부치고 한계에 몰리던 상황에, 그가 일종의 ‘발작버튼’을 눌러버린 셈이다.


그의 대답에 화가 폭발한 나는 “남의 일 얘기하듯 하네? 당연히 내가 해야 하는 일이야? 나는 수업도 바꿔야하고 번거로우니까 더 어려운 거 몰라?“하며 쏘아붙였다. 내 말에 잠시 아무말없이 자기 방으로 들어갔던 그는, 한 10분쯤 후 나와서는 ”회사에 얘기해볼게.“하고는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자기가 가겠다는 대답이었으나, 이미 속이 꼬여버린 나에게는 크게 고맙게 느껴지지 않았다. 퉁명스럽게 “알겠어.”라고 대답하는 것으로 일단 그날의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남편의 ‘동굴탐험’은 그 후에도 계속되었다.


크리스마스였던 목요일, 어떤 약속도 없고 어떤 계획도 없었으나 집에 혼자 뒹굴대는 아이가 안쓰러워서 점심때쯤 아이에게 같이 나가서 맛난것도 먹고 쇼핑도 하자고 말을 했다. 그러나 내내 누워있거나 방안에 처박혀 있기만 했던 남편은 ‘둘이 다녀오라’며 한발 뺐고, 또 한번 화가 머리끝까지 난 나는 “우울증이냐, 우울하면 나처럼 병원을 가라.”하며 응대했다. 결국 아이와 단 둘이 나가서는 이것저것 구경하고 먹고 들어오며 기분을 살짝 풀었으나, 다시 집에 들어왔을 때 또 방에 누워있는 남편을 보는 순간, 분노가 다시 치밀어올랐다. 그러나 아이가 있는 앞에서 소리지르며 화를 낼 수 없었던 나는, 병원에서 많이 불안할 때 먹으라고 받아온 ‘불안약’을 두 알 꺼내 물과 함께 삼키며 마음을 달랬다. 그러나 그에 대한 화와 미움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그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야 기분이 좀 풀렸는지, 남편은 평소처럼 말을 걸어왔다. 오늘 자기가 쉬는 날이라 아이의 학원 라이딩을 직접하겠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이미 꼬일대로 꼬여버린 나는 그러던지 말던지, 그의 말에 대꾸조차 하지 않고 모른척하며 출근준비를 했다. 결국 열렸던 남편의 입도 다시 다물어졌다. 그리고 싸늘한 공기는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정말 힘든 부분은, 우리의 싸움패턴이 늘 똑같다는 거다.


나는 기분이 안좋거나 화가 나면 왜 그런지 알고 싶어하는 사람이지만 남편은 입을 다무는 걸 선택한다. 뭐라도 얘기해주면 좀 나을텐데, 왜 그러는지 무슨 이유인지를 전혀 알 수가 없으니 나는 혼자 별의별 상상을 다 하며 스토리를 꾸며대다 결국 지치거나 폭발하는 결론에 도달하고, 상황은 악화된다. 몇번이나 이런 부분을 남편에게 얘기하고 고쳐달라고 했지만, 이후에 비슷한 일이 생겼을 때 단 한번도 시원하게 답을 들은 적은 없다. 결국 나는 ‘나 때문인가?’하는 자책에 시달리다가 폭발해서는 ‘또 감정적으로 굴었다’는 자책에 시달리며 괴로워하고, 남편은 화해하고 풀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싸늘한 나의 태도를 감당해야 한다.


이런 상황이 너무나 고통스럽고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다, 헤어지고 싶다, 아니 그냥 내가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도 수도 없이 했다. 오늘만해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집에 머무는 게 너무 괴롭다보니 어디로든 도망가고 싶은데, 아이가 있으니 그럴수도 없는 내가 한탄스럽고, 그러다보면 이 삶 자체가 싫어지는 결말로 도달하는 것이다. 아마 내가 우울증 환자이기에 이렇게 극단적인 생각까지 치닫는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아이를 케어해야 하기 때문에 오늘도 ‘불안약’을 열심히 삼키며, 순간을 버텨나가고 있다.




여기까지 읽은 사람 중에는, 그럼 당신이 먼저 마음을 열고 남편을 이해해주면 어떠냐하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너무나 아름다운 해결법이고 나도 가능하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 그러나 그러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지금껏 이런 일이 있은 뒤에 남편에게서 ‘걱정하게 해서 미안하다’ 라던가 ‘많이 힘들었냐’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남편은 회피형으로, 서로 기분 풀고 할 말 나누면 다 풀린 거 아니냐, 굳이 그런 말이 필요하냐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나는 아니다. 내가 힘들었던 시간, 그가 힘들었던 시간에 대한 정리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을 통해 서로의 마음을 한번 더 들여다보고, 그러고나서 건넨 ‘미안함’의 말이 있을 때, 비로소 싸움이 마무리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과정없이 얼렁뚱땅(?) 지나가려고 하는 그의 태도도 나에겐 꽤 많은 상처였던 것 같다. 그래서 쉬이 그를 이해해주고 싶지가 않다. 남편의 입장에서는 이기적으로 들리겠지만...



결론적으로 지금 내가 바라는 건 남편의 사과, 그것이다. 그러나 아마 남편은 먼저 그 말을 꺼내진 않을 것이다.

나는 또 버틸만큼 버티며 냉랭하게 굴었다가, 어느 날 쯤에는 또 어쩔 수 없이 포기하고 그와 대화하고 또 살아갈 거다.

결국 그럴 거라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마지막 오기를 부려본다.


결혼하고 상대를 바꾸려는 태도는 욕심이라고, 그러지 말고 그냥 받아들여야한다고 많이 들었지만...

아직은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은 우리이기에..

그래도 노력으로 조금은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 하면서...



... 남편, 눈치 좀 챙겨줘.. 제발..



(이상은, 전적으로 아내의 입장에서 쓰여진 글이었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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