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에 들어가는 듯한 딸아이, 그걸 지켜보는 엄마의 불안함에 대하여..
오늘은 주말이면서, 그동안 손꼽아 기다리던 최애의 콘서트가 있는 날이다.
최애의 목소리와 숨소리를 가까이서 들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아이를 키우는 동안 마음으로만 하던 덕질의 한을 풀 수 있는 이 날이 오기만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십여년만에 끓어오르는 덕심을 간신히 진정시켜가며 오늘을 기다려왔건만..
오매불망 기다렸던 콘서트의 시작을 두어시간 앞두고 있는 지금 나의 기분은.. 뭐랄까..
마냥 행복하지 못하다. 마치 뭔가 두고 온 듯 찝찝한 기분이라고 할까.
오랜만에 아이도 남편도 없이 즐길 수 있는 기회이건만..
사실은 알고 있다. 이 찝찝한 기분의 근원이 어제 저녁부터 이어진 딸아이와의 신경전(?)때문이라는 걸.
사건은 아주 작은 일에서 시작되었다. 오랜만에 조퇴를 하고 집에 와서 아이가 수영학원에 가는 길을 배웅하던 중이었다. 수영장안에서 번거롭다는 이유로 아이가 맨발에 샌들을 신고 나가려고 하는 것을 안된다고 막았다. 추운 날씨 속에서 차량을 기다려야 하는 아이의 처지를 생각한 엄마의 마음이었다. 평소 같으면 자기 뜻대로 마음대로 하고 갔을건데, 일찍 귀가해버린 엄마의 단속에 아이는 양말을 챙겨신고, 두툼한 점퍼를 입었다. 그러나 못내 기분이 별로였는지 웃지도 않고 제대로 인사도 하지 않고 문을 나섰다. 입고 벗기가 번거롭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투정과 함께.
그때는 그러려니 했다. 마음은 좀 상했지만, 아이 입장에서 그럴 수 있지라고 여겼다. 그러나 집에 돌아온 아이가 ‘다녀왔습니다.’ 한마디만을 남긴 채 눈도 마주치지 않고 방으로 들어가 가방을 던지는 모습을 보는 순간 속이 뒤집혔다. 평소같으면 폴짝 뛰어들어와 엄마에게 안기며, 추웠느니 힘들었느니 투정을 부리던 애교많은 아이였으니 충격이 좀 컸던 것 같다. 먼저 삐짐을 시전한 아이도, 화가 머리끝까지 나버린 엄마도 그저 입을 다물었고, 그렇게 아이 아빠가 집에 오는 시간까지 세시간 가까이 집안에는 무거운 침묵만이 가득했다. 중간중간 서로 눈치를 보기는 했으나, 누구도 먼저 속내를 얘기하지는 않았다.
침묵의 저녁을 보내는 동안 내 마음 속에서는 두가지 마음이 계속 싸웠다. ‘어른답게 먼저 마음을 터놓고 얘기하며 풀자’는 이성적인 자아와 ‘내가 뭐 그렇게 큰 잘못을 했다고 저렇게 버릇없이 굴지? 지가 먼저 잘못했다 하기 전에는 모른 척해!’라고 하는 감정적인 자아의 싸움. 결국 나는 이성을 찾지 못했고, 그날 밤 아이와 나는 잘자라는 인사도, 포옹도, 얼굴이 닳을 듯한 굿나잇 키스도 없이 잠에 들어야 했다.
아마 자녀의 찐 사춘기를 경험해 본 선배 부모들이라면, “뭐 저정도 가지고? 아직 멀었어요.“하고 말씀하실거 같다. 그러나 그 분들도 사랑스럽기만 하던 아이의 사뭇 반항적인(?) 모습을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은 비슷하지 않았을까. 더군다나 학교에서 고학년을 많이 맡다보니, 이르게 사춘기에 들어간 아이들을 수도 없이 만나왔다. 그렇기에 아이에게 사춘기가 오더라도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을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는데, 어제와 오늘의 내 모습을 보며 확실히 알았다. 직업적인 능숙함이라는 것과 부모로서 내 자식을 바라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을...
사춘기에 들어온 아이의 뇌는 마치 파충류처럼 감정적이고, 충동적이며, 변화무쌍하다고 익히 배워 알고 있다. 그것은 아이의 잘못이 아니다. 그저 발달의 과정일 뿐. 그렇기에 부모는 그 변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대화하려는 자세로 아이를 대해야 하며, 과도한 간섭보다는 아이를 믿고 자율적으로 하도록 도와주며 서서히 아이가 부모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이 바로 이상적인 사춘기 부모의 모습이라는 것을 이미 나는 배움으로, 경험으로 알고 있다. 너무나 잘 알고 있는데...
지도했던 아이들의 부모님께는 냉정하게 할 수 있었던 조언들이 어쩐지 나에게는 먹히질 않는다. 내 뱃속에 열 달을 품었고, 나를 세상의 전부로 인식하며 매달리고 찾아대던 아이, 엄마의 말에 늘 귀기울여주고, 뭐든지 엄마와 먼저 하려하고, 틈만 나면 사랑한다고 표현하던 사랑스러운 아이가 이제는 엄마를 떠나 자기만의 세상으로 가려 한다. 마땅히 그래야 하는 일이고, 그렇게 아이를 떠나보낼 수 있도록 준비하며 아이를 키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은 내가 준비가 덜 되어 있었나 보다.
숨막히던 모녀 냉전의 끝은 두시간 전, 콘서트를 가기 위해 집을 나오는 순간에야 끝이 났다. 아이는 머쓱한 얼굴로 잘 다녀오라며 가만히 안겨왔다. 이제는 가슴께에 닿는 아이의 어깨를 마주 당겨 안으며, 왈칵, 가슴속에서 뭔가 치밀어 오르는 느낌에 눈물이 날 것 같아 허둥지둥 인사를 마치고 뛰어 나왔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제는 인정해야겠다고.
너는 내가 아니고, 나의 분신도 아니며, 나의 소유물도 아니라는 걸.
너는 그저, 너일 뿐이라는 걸.
돌이켜보면 아이가 막 태어나 꼬물대는 그 모습을 처음 마주했을 때는 너무나 낯설었다. 이 아이가 내가 낳은 아이가 맞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눈도 못 맞추고 목도 못 가누던 아이가 점점 자라고, 어느 순간 내 눈을 맞추고 환하게 웃고 ‘엄마’하고 부르던 순간,나는 이미 이 아이에게 마음을 다 빼앗겨 버린 상태였다. 이 아이를 위해서 죽을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뭐든 해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며, 걱정과 염려로 종종거리며 아이를 키워왔다. 그러나 엄마의 도움없이 밥 한 숟가락 먹지 못하던 아이는, 어느덧 엄마의 손길이 없어도 의젓하게 생활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엄마를 뒤로 한 채 자기만의 세계로 걸어가게 될 것이다. 오직 부모만이 그 뒤에 남아 품안에 남아있던 아이의 온기를 기억하고 그리워하며 남은 생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렇게 아이를 떠나보내는 과정이 순탄치 않을거라는 것, 그리고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고, 많이 아플 수도 있다는 것을 이제는 인정해야겠다. 불과 이십여년 전의 내 부모가 나를 그렇게 떠나보냈듯이, 나 역시 그러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믿어야겠다.
어린 시절의 나와 나의 부모님이 그럭저럭 그 시절을 잘 버텨내고 지나왔듯이,
나의 아이와 나도 그럭저럭 이 시기를 버티며 건너갈 수 있을 거라는 것을.
서로를 이해하며 노력할 수 있는 힘이 나와 아이의 맘 속에 있을 거라는 것을 말이다.
공연장 옆 카페에 앉아 이 글을 쓰던 중 잠시 아이와 통화를 했다. 집을 나섰을 때보다 한결 밝아진 목소리로 ‘엄마’하고 부르는 아이의 말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서운했어도, 화가 났어도, 그래도 엄마에게 늘 먼저 손내밀어주고 웃어주는 아이, 그 고맙고 예쁜 마음이 잊혀지지 않도록 가만히 가슴에 담아본다. 나중에 너에게 너무나 많이 서운한 순간이 오더라도, 지금의 너처럼 내가 먼저 웃어주고 손내밀어줄 수 있도록. 마음속에 많이많이 저금해두고 되새겨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