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아직도 20대인데 어느새 40대 중반이 되어버린 나를 바라보며
나는 1982년 12월생으로, 글을 쓰고 있는 2025년 8월 13일 현재 만으로 42세다.
고등학생때인가.
공부하다가 소소하게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스트레스를 풀 때였던거 같다. 이야기의 맥락은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친구들과 미래의 이야기를 하던 끝에 내가 했던 말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나는 30살 넘으면 그냥 죽을거야. 그렇게 늙어서 어떻게 살어. 살기 싫어.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당시 사춘기가 좀 늦게 와서 약간의 치기와 갬성(?)이 살아있었던 나는 그렇게 진심으로 생각했었던 것 같다. 30살이 넘으면 여자로서의 삶은 끝, 그럼 내 인생도 같이 끝이라고. 예쁜 모습으로 사랑만 받다가 죽고 싶다고, 소설 속의 병약 여주를 동경하던 건장한 소녀는 그렇게 믿고 있었으리라.
나이듦과 잊혀짐을 두려워하던 열일곱의 소녀는, 어느새 중년에 접어든 마흔 둘의 본인을 보고 과연 뭐라고 말할까.
사실, 솔직히 아직도 내가 40대에 접어들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때가 더 많다고 하면 웃는 사람도 많겠으나, 적어도 마음만은 그렇다고 한다면, 그래도 공감해줄 사람들이 있을 것도 같다.
TV에 나오는 아이돌 이름은 잘 못외우지만, 여전히 드라마속 멋진 오빠(잘생기면 다 오빠라고 누가 그랬다)를 보면서 가슴 설레하고, 각종 예쁜 것들(옷, 음식, 가방, 구두 등)에 두근거리고, 남편에게 아직은 내가 살빼고 꾸미면 나름 봐줄만하지 않느냐는 숨겨진 다이아몬드썰(?)을 주장하기도 한다. 아이를 키우느라 쉬어서 그렇지, 나도 맘 먹고 하면 뭐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대책없는 자신감도 아직은 조금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유튜브에 나오는 각종 화장법과 미용법을 열심히 구독하고(정말 구독만 열심히 한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자리양보는 당연히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친구들과 모이면 마치 학생때처럼 깔깔대며 수다를 떨고, 어린 아이들처럼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며 행복해하기도 한다. 학교에서도 아직 애들에게 먹히는(???) 나이라고 생각하며 친근하게 다가가보기도 한다. (참고로 아이들은 기가 막히게 젊은 선생님을 좋아한다. )
이런저런 상태를 예로 들었지만, 한마디로 말한다면 나이가 마흔둘이 되었어도 정신상태는 아직도 이십대를 살고자 하는, 마치 늙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있는 듯한 느낌이라고 하면 맞을 것 같다. 어쩌면 나이듦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아줌마의 발악일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랬던 나였지만...
언제부턴가, 이런 발악이 조용히 수그러 드는 순간들이 자꾸만 찾아들고 있다.
직장다니랴, 육아하랴 버석해진 얼굴과 퉁퉁 붓고 살찐 몸뚱아리.
경고 신호를 보내는 각종 혈액수치들.
하루종일 쉬어도 반나절이면 방전되는 저질스런 체력.
자다깨다를 반복하는 불규칙적인 수면패턴과 그로 인한 우울감.
염색을 일주일만 방치해도 희끗희끗 보이는 흰 머리.
어느새 눈가에 퍼진 기미와 옅은 주름들.
하나 둘 입기에 불편하고 어색해지는 옷장 속의 아이템들.
이런 것들을 통해 나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나이듦”을 실감한다.
그리고 그로 인해 ‘잃어버리는 것들’을 생각하곤 한다.
이제 와서 밀려드는 상실감 속에서 허우적거려본들, 야속하게도 나이듦으로 상실한 것들은 대부분 돌아오기 어렵다. 뭐, 건강과 관련된 수치 정도는 운동과 피나는 노력으로 개선될지도 모르겠지만, 흰머리나 주름 등은 잠시 가려볼 수는 있을지언정 예전처럼 되돌려 없앨 수는 없는 것임을 아마 대부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이듦=상실‘로 받아들이고, 그로 인한 빼앗김을 천형처럼 여기며 남은 생을 살아가야 하는 걸까. 마치 형벌처럼, 그렇게 나이듦을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어제는 산부인과 정기검진 후 추가 혈액검사 결과를 보는 날이었다. 불규칙한 월경과 부정출혈때문에 한 검사였는데, 난소기능이 많이 떨어져 있어 거의 48세 정도라는 말에 큰 충격을 받았고, 이대로 방치하면 2년 후 페경 예상이라는 말에 또 한번 충격을 받았다. 일단 할 수 있는 호르몬치료를 시작하기로 하고 돌아왔는데, 왜 이렇게 눈물이 나던지. ..
아이를 또 가질 생각도 없었으면서도... 이제 여자로서 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일부 상실한다는 것이, 마치 젊음에 대한 상실같아서... 눈물이 났던 것 같다.
나만 겪는 일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쉬이 받아들이기는 힘든 것도 사실이긴 하다.
또 한번 이렇게 ‘나이듦’을 실감한 날.
그럼에도 아직은 그를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할 수 있는 조금의 노력을 하며 자신을 돌보는 선택을 해보마.. 그렇게 결심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