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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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조... 당신 이름을 떠올려봅니다. 한숨이 같이 나옵니다. 다자이 오사무의 또 다른 이름. 요조
그렇게 살기가 힘들어서야 어찌 살 수 있었겠습니까? 당신의 수기를 보면서 참 살아가기가 이렇게 힘든 거구나 생각했습니다. 39해를 살면서 다섯 번 자살을 시도하고 다섯 번째 시도에 죽을 수 있었던 당신. 그 시대를 사는 지식인으로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요? 세상에 섞이지 못한 텅 빈 가슴을 한 잔의 압생트로 채우는 우아한 귀족주의는 역겹기까지 합니다. 원조 압생트가 만들어진 나라에서 압생트에 중독된 작가들이 느꼈던 상실감과는 다른 가진 자 로서의 부채의식 그런 것... 그래서 마시다 만 압생트를 노래할 수밖에 없었습니까?
당신의 모든 말은 변명으로 들립니다. 천민의식을 가지고 혜택 받은 자로서의 자기 파멸을 마치 세상의 다른 이름에게 돌리는 수작인 것이지요. 시대가 당신을 그렇게 만들었다고요? 그 시대라는 거 비슷하게 지나가는 건가 봅니다. 우리나라에도 근대문학으로서의 결핵이 유행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작가들이 떼거지로 결핵에 걸리고 그때 썼던 작품들이 또한 각혈처럼 쏟아졌지요. 그중에 당신과 비슷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나도향이라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당신처럼 자살하지도 않았고 25세에 요절한 작가입니다. 그 시대에는 결핵이 병인 동시에 현실에 없는 환각에 이르기 위한 도피처이기도 했습니다. 요조, 당신처럼 혜택을 많이 받을 수 있는 가진 자의 아들이었습니다. 가문과 전통을 버리고 예술을 위해 가출 한 곳이 당신의 나라였습니다. 당신처럼 잠깐의 각혈로 끝났으면 좋았겠지만 그는 타국에서 죽었습니다. 문제는 결핵이 현실적인 육체의 병으로 인식된 것이 아니라 문학적 취향의 일종으로 선택되었다는 것이지요. 각혈과 함께 다가서고 싶었던 황홀경, 그것이 그를 결핵으로 이끈 것입니다. 물론 고생 모르고 자란 여린 육체와 든든한 가문의 원조를 받지 못한 곤궁한 환경 탓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의 비극은 궁핍을 근원적으로 인식하지 못했다는 데 있습니다. 진정으로 궁핍함을 알지 못했던 겁니다. 요조, 당신 역시 그렇습니다. 각혈을 하며 압생트를 마셔야 했다던 그 시대에 당신이 진정한 궁핍함을 얼마나 알고 있었습니까? 자신의 기질에 파묻혀 절절매다가 자살 시도나 하는 것으로 외면했습니다. 죽으려면 확실하게 죽던가? 당신 주변에 있던 여인들은 무슨 죄입니까? 죽기로 작정했으면 단 번에 죽을 수 있는 길을 택하던가. 세상이 그렇게 싫은데 그렇게 흐지부지 죽어지던가요? 내가 아는 한 그런 사람들은 죽는 것에도 비겁합니다. 당신이 만약 내 옆에 있다면 날이 선 면도날을 손에 쥐어 줬을 겁니다.
오래전에 친구 하나가 죽기를 결심하고 자신의 팔목을 그었습니다. 하필 그 시간이 여러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시간이어서 전시효과는 즉각 일어났습니다. 그 친구의 팔목에 수차례 칼을 그어댄 흔적을 보고 그 친구가 자살미수에 그친 이유를 알았습니다. 무도 썰지 못할 무딘 면도칼이었습니다. 가게에 가서 면도용 날 선 면도칼을 사다 줬습니다. 죽으려면 깨끗하게 단 번에 확실하게 죽으라고 면도날을 그 친구의 손에 쥐어줬습니다. 울기만 합디다. 나는 그 친구가 죽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진짜 죽기로 작정한 사람은 사람들이 자신의 죽음을 봐주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단 칼에 죽습니다. 그만큼 이 세상을 떠날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요조... 당신 역시 죽을 용기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을 미워하고 자신을 증오하면서도 그 세상에 뭔가를 보여주고 싶은 욕망이 그렇게 만들었을 겁니다. 그래도 죽어야 했기에 혼자서는 죽을 용기가 없어서 진정한 궁핍에 있는 여인들을 끌어 들었던 겁니다. 당신이 가진 매력에 홀랑 빠진 그 여인들은 그 시대를 살아가면서 얼마나 힘겹게 살아가던 여인들이었습니까? 그 여인들은 죽을 이유가 당신으로 인해 생긴 것입니다. 궁핍하게 살았으나 자살이란 것 따위에 마음 내줄 겨를이 없었던 여인들이 진정한 궁핍이 무엇인지 모르는 당신과 함께 그렇게 목숨을 끊었던 겁니다. 그 여인들은 마음먹은 대로 죽었습니다. 당신은 마음먹은 대로 죽지 않고 살아나 그 짓을 되풀이했습니다. 결국 마지막 작품 속에 요조를 만들어놓고 가더군요. 끝까지 세상에 보이고 싶었던 욕망을 포기하지 못한 채 요조가 남았습니다. 요조... 다자이 오사무... 인간 실격... 참 잘 지어진 제목입니다. 미시마 유키오가 '다자이 오사무란 인간은 정말 싫지만, 그의 소설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한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