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웅현『여덟 단어』를 읽고
꽃게가 간장 속에/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에 스며드는 것을/한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불 끄고 잘 시간이야/
안도현의 ‘스미는 것’이라는 시의 전문이다. 『여덟 단어』의 저자 박웅현은 이 시를 읽고 간장게장을 먹지 않는다고, 아니 못 먹는다고 한다. 나 역시 그럴 것 같다.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부분은 다 읽기도 전에 눈물이 흘렀고, 다 읽고 나서는 먹먹한 가슴을 한동안 누르고 있어야 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책에 대한 기대가 전혀 없었다. ‘인문학의 위기’라는 시대 상황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인문학 서적과 자기 계발서가 서점에 넘쳐나고 베스트셀러에 등극하는 아이러니를 목도하면서, 그저 그런 류의 책이거나 상투적이고 식상한 또 하나의 힐링이라는 이름표를 붙인 트렌드를 좇는 책이 나왔겠거니 무시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을 고백해야겠다. 또한 20, 30대 청춘들을 대상으로 했던 강의를 책으로 출판한 것이라, 강의를 그대로 재현한 구어체의 문장들로 인해 너무 쉽게 써진 책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하면서 깊이는 없겠다는 체념이 들고 있던 찰나였다.
그러나 저자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공감하면서 그야말로 급작스럽게 애정이 생겨나고 그가 말하고자 하는 ‘인생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로 제시한 여덟 단어인 ‘자존自尊, 본질本質, 고전古典, 견見, 현재現在, 권위權威, 소통疏通, 인생人生’에 전적으로 응답을 보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스미는 것’이라는 시를 통해 시인의 시선을 통찰해 내는 저자의 촉수와 공감이 전달되었기 때문이리라. 저자는 여덟 단어 중의 하나인 견見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기 위해 안도현의 시 ‘스미는 것’이라는 시를 서두에 제시했다. 간장게장을 수없이 먹어봤던 저자나 먹었을 우리는 안도현처럼 꽃게를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것에서 見의 중요성을 피력하는 것이다. 시인이 봤던 꽃게와 우리가 봤던 꽃게는 분명 같은 꽃게일 것이지만 “똑같은 꽃게를 보고 다른 것을 읽어낼 수 있는 힘”은 시인의 눈에서 시작되어 바이러스처럼 퍼지게 하는 힘이 있다. 그 힘을 감성으로 받아들인 저자가 자신의 딸에게도 읽게 하고 그 딸은 ‘울컥울컥 쏟아질 때’부터 울기 시작하고 자신은 그 후로 간장게장을 못 먹게 되는 그런 사람의 말이라면 귀를 기울여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서 사람이 느껴졌다. 직업이 카피라이터인 저자에게 명성을 안겨준 광고 문안들을 보면서 그 안에 사람이 있고, 그것은 견見에서부터 나온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시를 쓰든 말든, 광고를 하든 말든, 창의적이 되든 말든 다 떠나서 보는 건 정말 중요합니다. 제대로 볼 수 있는 게 곧 풍요니까요. 그래서 인문이라는 단어는 법학, 의학, 과학, 물리학에 다 필요한 거예요. 이런 게 있어야 행복한 상태로 살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보배롭게 봐야 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을 보는 힘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무것인 게 인생이더라.”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무것인 것’을 알아채는 것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니다. 선천적인 감수성과 촉수를 지닌 시인과 같은 사람들 외에는 일반적으로 인문학적 교양과 통찰에 의한 결과물로 나올 수 있다고 본다. 이쯤에서 이 글이 책으로 나오기까지 과정을 되짚어 본다면 20, 30대 청춘들을 위한 인문학 강의를 책으로 엮은 것이라는 것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서두에 나는 이 책에 큰 기대가 없었노라고 고백했다. 책을 다 읽고 나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청춘이 아닌 세대였고, 이미 그런 과정을 거쳐 온 나이일 뿐 아니라 수없이 많은 인문학 서적과 자기 계발서를 읽는 데에 청춘을 바쳤으며 아직까지 그런 종류의 책을 집어 드는, 청춘에 미련이 남은 나이 들어가는 자의 행위로 인한 자괴감이 얄팍하게 깔려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20대 뜨거운 날, 그러한 책들로 인해 몸과 마음이 용솟음치던 때를 기억한다. 어디선가 이 책을 읽고 있을 젊음들은 예전의 나처럼 그렇게 뜨거워진 상태로 사색의 감옥으로 걸어 들어갈지도 모른다.
저자는 그러한 일을 자신의 딸과 청춘들에게 꾸준히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나도 조심스럽게 아들에게 안도현의 ‘스미는 것’을 읽어보라고 권한다. 그리고 아들의 표정에서 미묘하게 잔금이 가는 것을 지켜보며 내심 안도했다. 그리고 물어봤다. “어때?” 아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휴‧‧‧‧‧‧.” 한숨을 내뱉었다. 나는 아들이 한 어절로 만들어낸 ‘휴’라는 소리를 들으며 그의 미래에 대해서 염려할 필요가 없음을 알았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 임을 마음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기에 ‘휴’에 우주를 담아 내뱉어 낼 수 있었으리라 믿는다. 그리고 다시 한번 조심스럽게 『여덟 단어』를 읽어보라고 권했다. 아들은 그 책을 읽고 자존自尊, 본질本質, 고전古典, 견見, 현재現在, 권위權威, 소통疏通, 인생人生’이라는 여덟 단어를 통해 인생을 대하는 자세를 배울 것이며, 예전에 내가 그랬듯이 몸과 마음에 충만함을 느낄 것이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우리 인생은 몇 번의 강의와 몇 권의 책으로 바뀔 만큼 시시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지나간 청춘들이 그렇게 지나왔듯이 지금의 청춘들도 이런 책을 통해서 조금씩 스며들고 스며들어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무것인 것’인 우주를 느껴본다면 살아갈 만한 세상이 그들 앞에 펼쳐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