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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뭉클

오마니, 포도주 주세요. 잉잉잉잉

최인호『인생』을 읽고

by 몽상가


최. 인. 호. 이름 자체가 문화코드였던 사람. 환자가 아닌 작가로 죽고 싶다던 바람대로 그는 작가로 살다 갔다. 5년간 침샘암이라는 고약한 놈과 한 몸으로 지내며 했다는 그의 생떼 기도가 들리는 듯하다.


“아이고, 어머니, 엄마, 저 글 쓰게 해 주세요. 앙앙앙앙, 아드님 예수께 인호가 글 좀 쓰게 해달라고 일러주세요. 엄마, 오마니, 때가 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아드님은 오마니의 부탁을 거절하지는 못하실 것입니다. 앵앵앵 앵, 오마니, 저를 포도주로 만들게 해 주세요. 이 세상을 잔칫날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을 취하게 하는 좋은 포도주로 만들게 해 주세요. 아드님이 말을 듣지 않으면 ‘너 때문에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느냐’ 하고 혼을 내세요. 아이고, 엄마, 어무니, 으잉 으잉 잉잉잉.”


고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막무가내 식 ‘떼’ 기도인 셈인데 성모님께 드리는 로사리오 기도를 드릴 때면 이렇게 떼쟁이가 되었다 한다. 누가 엄마에게 고상하게 매달리며, 열두 살 되던 해에 무단가출한 문제아들을 사흘이나 찾아 헤매었던 성모였기에, 남편이 일찍 죽고 아들이 십자가에 매달린 것을 보았던 어머니였기에, 체면과 자존심 같은 것은 집어치우고 엄마 치마폭을 붙들고 징징대는 어린아이처럼 생떼기도를 올릴 수 있는 것이란다.


그가 이런 생떼를 부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자신이 작가가 아니라 환자라는 사실이 너무 슬펐기에 작가로 죽고 싶다고 떼를 쓴 것이었다. 그의 생떼기도에 있듯이 그는 이미 세상을 잔칫날로 만들었고 사람을 취하게 하는 포도주였던 전적이 있다. 그리고 그가 떠난 후에도 세상에 남겨진 그의 글은 성대한 잔칫날에 쓰일 포도주로 변해 사람들을 취하게 할 것이었다.


그가 떠난 후에야 눈물로 고백하거니와 최. 인. 호.라는 이름에 취해 그가 만들었던 포도주에 길이 들었던 나는, 항암치료로 빠진 손톱에 골무를 끼워서 두 달 만에 완성한 장편소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를 출간되자마자 읽었고 이전의 포도주와 맛이 다르다는 독단적인 평가를 내리고는 그의 포도주에 대해 실망하고 화가 나는 것을 숨길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책을 소장하고 싶지도 않아 선배에게 선물해 버렸다. 또한 예수를 세 번 배반한 베드로처럼 그를 외면했다. 그때 나는 최. 인. 호. 를 작가 외에 다른 이름으로 생각해보지 않았고, 최인호는 그냥 최. 인. 호. 로서만 존재하며 이전에 그가 내놓았던 질 좋은 포도주를 기억하고 있으므로 길들여진 혀는 만족스럽지 않았고 성찬에 초대받았으나 떨떠름할 뿐이었다. 마침내 최. 인. 호.라는 이름조차 머릿속에서 지우고야 말았다.


10여 년 전에 들려온 그의 부음에 가슴이 쿵 내려앉았던 순간이 떠오른다. 속죄하듯이 그의 마지막 작품집인 ’ 인생‘을 읽기 시작했다. 글을 쓰게 해달라고 징징거리며 떼를 쓰는 ’ 으잉 으잉 잉잉잉‘ 소리가 귀에서 떠나지 않았다. 생떼 기도를 드리던 그때의 절실함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고 병중에 장편을 집필하면서 겪었을 고통이 전이되는 듯했다. 구역질이 날 때마다 얼음 조각을 씹으며 원고지를 채워나갔던, 빠진 발톱에 테이프를 감고 빠진 손톱에는 골무를 끼고서 하루에 원고지 20에서 30매씩 하루도 거르지 않고 두 달간 원고를 썼던 그의 모습이 눈앞에 나타났다. 최. 인. 호. 가 아닌 사람이 보였다. 장편소설의 완성은 생떼 기도가 이루어진 것을 알려주는 징표였다.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이제야 그것이 기적이었음을 알아챈 나는 베드로의 후회를 실감하면서 눈물로 그의 마지막 포도주를 마셨다. “말과 행동이 업이 되어서 결과를 이루게”되듯이 최. 인. 호. 역시 사람을 취하게 하는 좋은 포도주가 되고자 말과 행동으로 보인 것이 결과로 나타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실제로 죽음이 닥치면 어떨지 모르지만 지금 생각으로는 무섭지 않을 것 같습니다. 죽음은 인생의 끝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이러한 생각들이 확고해지면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가 있어요. 죽음을 받아들이면 사람의 삶의 폭이 훨씬 커집니다. 사물을 보는 눈도 훨씬 깊어집니다. 죽음 앞에서 두려워한다면 지금까지의 삶이 소홀했던 것입니다. 죽음은 누구나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고인이 법정스님에게 죽음이 무섭지 않느냐는 질문에 법정스님이 대답한 말이다. 지금은 그 말을 했던 법정스님도 질문을 했던 최. 인. 호. 도 모두 육신의 껍질을 벗었다. 우리는 언젠가 육신에서 벗어나게 되어있다. 죽음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모두에게 자연스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은 겸허하고 고요하게 육신에서 놓여났으며 아주 진하고 달디 단 포도주를 이 세상에 남기고 갔다. 최. 인. 호. 는 육신의 치유에 이르지 못했으나 구원을 받은 것이다. 나는 예수를 세 번 배반한 베드로의 뉘우침으로 다시 한번 최. 인. 호. 가 남기고 간 포도주를 마셨다. 그리고 흠뻑 취해본다. 취한 김에 나 역시 최인호식 생떼 기도를 올린다.


“오마니, 엄마, 저를 포도주로 만들어 주세요. 으잉 으잉잉잉잉. 이 세상을 잔칫날로 만들지는 못해도 사람이 취할 수 있는 맛 좋은 포도주 좀 주세요. 인호 기도도 들어줬으니 제 기도도 들어주세요. 앙앙앙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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