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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민아 Aug 14. 2021

노란 백조, 오리 되는 날

 톡. 톡. 톡

알들이 움직이기 시작해요.

무더위를 이겨내며 알들을 품고 있던 엄마 백조는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려왔는지 몰라요. 아기 백조들을 빨리 만나고 싶은 마음도 컸지만, 유달리 작고 뽀얀 알 하나가 있었기 때문일지도 몰라요. 이런 엄마 백조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조금씩 움직이며 금이 가는 알들 틈에서 유달리 작은 알 하나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어요. 엄마 백조는 혹시 아기 백조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해요. 넓직한 부리로 살살 작은 알을 굴려보아요. 그래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어요. 


 아기 백조들이 하나 둘 햇살을 만나기 시작해요. 어두운 알 속에서 처음 햇살을 만난 아기 백조들이 눈을 찌푸려요. 그러나 곧 엄마 백조의 냄새와 온기를 느끼며 털을 부벼대요. 엄마 백조는 갓 태어난 아기 백조들을 돌보느라 정신이 없어요.  


 그때 뒤늦게 마지막 남은 작은 알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해요. 알이 너무 작아 아기 백조가 태어나지 못 할까봐 걱정이던 엄마 백조는 설레는 마음으로 지켜 보아요. 아, 그런데 알을 깨고 나온 막내 백조는 눈부신 햇살 같이 노란 털을 갖고 태어났어요. 잿빛 털을 지닌 아기 백조들 틈에서 노란 백조는 더욱 더 반짝거려요. 덩치도 작으니 더욱 귀여움을 독차지해요. 


 “어머! 너무 예쁜 백조가 태어났어! 털 색을 좀 봐. 눈이 부셔서 바라볼 수 없을 정도야.” 


 다른 아기 백조들은 모두 노란 아기 백조를 부러워하며 바라봤어요.  


 “우리는 왜 털 색이 이렇게 어두침침한 거야?” 


 하지만 막내 백조는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것이 너무 싫었어요. 


 “난 왜 다른 형제들이랑 다르게 생긴 걸까? 남다르다며 귀엽다고 다 나를 쳐다보는게 너무 싫어.” 


 다른 형제들은 그런 막내를 이해할 수 없었어요. 


 “모두들 귀엽다고 예뻐해 주는데 왜 저렇게 뾰루퉁 한 거지?”

 “그러게 말이야. 자기가 좀 예쁘게 생겼다고 잘난 척 하는 건가봐.”

 “사랑은 혼자 다 받으면서 왜 저렇게 불만이 많은 표정이지? 쟤만 보면 기분이 나빠진다니까!” 


 막내 백조는 이웃의 다른 백조들의 관심을 받는 것보다는 언니, 오빠들과 놀고 싶었어요. 하지만 언니, 오빠들은 막내 백조가 귀여움을 독차지하면서 늘 불만이 많아 보이는 모습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막내 백조는 점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아기 백조들은 이제 조금 자라서 엄마 백조를 따라 헤엄도 곧잘 치게 되었지요. 백조 가족은 가까운 연못으로 나들이를 가기로 했어요. 모두들 들떴지만 막내 백조는 별로 신나지 않았어요. 터덜터덜 엄마와 언니, 오빠들을 따라 맨 뒤에서 따라가던 막내 백조는 무언가를 발견했어요! 바로 자신과 똑같이 생긴 백조들이었지요. 막내 백조는 자기도 모르게 무리에서 떨어져나갔어요. 


 “안녕!” 

 막내 백조가 인사를 건넸어요. 

 “꽥꽥” 

 자신과 똑같이 생긴 노란 백조들이 모두 이상한 소리를 내며 몰려왔어요.  

 “꽥꽥. 넌 왜 인사를 하지 않니?”

 “아, 나는 그 인사를 배우지 못했어. 그건 무슨 뜻이니?”

 “이건 우리 오리들의 ‘안녕!’이라는 뜻이야.”

 “오리?”

 “그래 우리 오리들말이야.” 

 그제서야 막내 백조는 자신이 백조가 아니라 오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내가 백조가 아니라 오리라서 언니, 오빠들이랑 다른 털 빛을 갖고 있는 것일지도 몰라. 별난 백조라 예쁨을 받는게 아니었어. 이 사실을 알면 언니, 오빠들도 더 이상 나를 남다르게 생각하고 미워하지 않을거야.” 


 막내 백조는 서둘러 엄마 백조를 찾아 헤엄을 쳤어요.   

 “엄마, 엄마, 봤어요?” 

 막내 백조는 오리들의 무리를 가리키며 말했어요. 

 “저기 나와 똑같이 생긴 백조들이 많이 있어요. 그래서 인사를 하고 왔어요. 그런데 저 백조들은 우리와는 다른 인사를 하는 ‘오리’래요. 엄마는 오리를 알고 계셨어요?”

 “물론 엄마도 오리를 잘 알지.”

 “그럼, 엄마는 제가 오리인 것도 알고 계셨어요?”

 “그게 무슨 소리야? 엄마는 오리를 잘 알지만 네가 오리가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어.”

 “하지만 전 언니, 오빠들보다는 저 오리들과 똑같이 생겼는걸요.”

 “아니야. 넌 아주 특별하고 사랑스러운 백조란다. 저 오리들과는 털 빛만 조금 비슷해 보일 뿐이야. 우리 막내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백조로 클 거야.” 


 막내 오리는 조금 이상하게 생각됐지만 엄마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어요. 하지만 이런 이상한 생각을 한 것은 막내 백조뿐만이 아니었어요.   


 “저기 좀 봐. 저 노란 빛의 넓죽한 부리를 가진 귀여운 백조들이 있는 곳을 말이야.”

 “어? 정말? 우리 막내랑 너무 비슷하게 생겼는데?”

 “우리는 막내가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백조라 온갖 사랑을 독차지하는 줄 알았는데 저렇게 똑같이 생긴 백조들이 많이 있잖아!” 


 언니, 오빠들은 엄마에게로 헤엄쳐갔어요. 

 “엄마, 저기 좀 보세요. 우리 막내랑 똑같은 백조들이 저기 엄청 많아요.”

 “우리 막내가 특별한 게 아니었어요!” 


 그러자 엄마 백조는 굳은 얼굴로 말했어요. 


 “잘 들으렴. 우리 막내는 누구보다 미모가 뛰어나고 아름다운 털 빛을 가진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백조야. 저기 보이는 것들은 백조가 아니라 오리란다. 그저 털 빛이 비슷해서 막내와 비슷해 보일 뿐이니 오해하지 말아라.” 


 엄마 백조는 이 나들이를 끝으로 큰 연못에는 나가지 않았어요. 집 앞에 있는 작은 연못에서 헤엄치기를 연습시킬 뿐이었죠. 그리고 또 하나 엄마가 열심히 하는 일이 있었어요. 바로 막내 백조에게 남들보다 우아한 포즈로 헤엄지기를 가르치는 일이었어요.  


 “넌 누구보다 특별하니까 우아한 포즈를 연습하면 모든 시선을 사로잡고 유명해질 수 있어. 그러니까 조금만 참고 허리와 목을 꼿꼿이 세우렴.” 


 막내 백조는 온갖 시선을 한 몸에 받는 것이 너무너무 싫었어요. 하지만 엄마는 그런 막내의 마음을 몰라주었어요. 그리고 또 하나의 문제가 생겼어요. 어느날부터인가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걷는 것이 너무 힘들고 자꾸 엉덩이가 우스꽝스럽게 씰룩거리는 것이었어요. 그럴 때마다 엄마는 화를 냈어요. 


 “엉덩이를 왜 이렇게 들고 씰룩거리며 걷니? 우아하게 허리를 쏙 집어넣고 걸으면 엉덩이가 안 움직인단 말이야. 어서 해 봐.” 

 “언니, 오빠들을 보렴. 목을 길게 세우고 허리를 쏙 집어넣고 엉덩이는 보이지도 않게 우아하게 걷잖니. 너는 털빛이 특별해서 우아하게 걷기만 하면 아주 유명해 질 수 있다니까!” 


 막내 백조는 아무리 연습해도 언니, 오빠들처럼 걷기가 힘들었어요. 점점 자라면서 목이 길어지는 언니, 오빠들과는 달리 목도 짧았지요. 그러니 더욱 더 걸을 때마다 엉덩이가 씰룩거리는 것 같았어요.  


 엄마는 막내 백조에게 특별 운동을 시켰어요. 목을 길게 해야 한다면서요. 목을 늘이고 엉덩이가 작아지게 하는 운동이었지요. 막내 오리는 정말 목이 너무 너무 아팠어요.  


 가을이 오자 엄마 백조는 막내 백조를 데리고 숲 속 가운데 큰 연못으로 나갔어요. 가장 우아하고 특별한 백조를 뽑아 큰 상금을 준다고 했지요.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예선 경기를 치르려는데 심사를 하러 나온 노인 백조가 말했어요.  


 “음~ 이상하구나. 저 노란 빛깔의 백조는 백조가 아닌데 말이다. 오리가 왜 우아한 백조 뽑는 대회에 나와서 목을 길게 빼고 있는 게냐? 저 이상한 동물은 탈락이로다.” 


 엄마 백조는 아무 말 없이 막내 백조를 데리고 경기장을 빠져나왔어요. 


 “엄마, 왜 그냥 집에 가는 거에요? 제가 얼마나 힘들게 연습을 하고 운동도 했는지 아시잖아요? 그냥 가시면 어떻게 해요?” 


 어쩐 일인지 엄마 백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집으로 돌아온 엄마 백조는 더 이상 막내 백조에게 운동도 시키지 않고 우아한 포즈를 연습하라고 하지도 않았지요. 이제 막내 백조는 할 일이 없어졌어요.  


 “엄마, 전 이제 무엇을 연습하면 되지요?”

 “넌 이제 연습할 것이 없단다.”

 “이제 전 우아하고 특별한 백조가 아닌가요? 언니, 오빠들도 놀아주지 않고 연습도 할 것이 없다니 전 할 일이 없는걸요.” 


 엄마 백조는 굳은 얼굴로 막내 백조를 한참 쳐다봤어요. 


 “막내야. 사실은 엄마가 너에게 해 줄 말이 있단다. 너는 백조가 아니란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어릴 때 큰 연못에 나들이 갔던 걸 기억하니?”

 “네. 기억해요.”

 “그 곳에서 너는 너와 똑같은 백조들을 만났다고 했었지. 그런데 그들이 백조가 아니라 오리라고 했어. 생각나니?”

 “네. 하지만 엄마가 전 특별한 백조라고 하셨잖아요.”

 “그랬지. 엄마는 널 특별한 백조로 만들고 싶었어. 하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더구나. 넌 오리니까 말이야. 엄마가 특별한 백조를 만들고 싶다는 욕심을 부린 것 같아 미안하구나.”

 “그럼 전 백조가 아니라 오리라는 말씀이세요?” 


 엄마 백조는 아무 말고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말았어요. 막내 백조는 할 말을 잃고 말았어요. 그 동안 오리처럼 걸어서 혼나고 오리처럼 목이 짧아서 운동을 한 것일까요?  


 언니, 오빠들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어요. 특별한 백조라서 사랑을 독차지한다고 생각하며 미워한 막내가 사실은 오리였다니 이제는 미워할 이유가 없었지요.  


 “너는 가장 오리다워서 특별한 거였어.” 


 언니, 오빠들이 다가와 건네주는 한 마디에 막내는 눈물이 나고 말았어요. 막내 백조는 가족을 찾아 엉덩이를 뒤뚱거리며 씩씩하게 작은 연못을 빠져 나왔어요. 누구보다 오리다워 질 수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서 떠나는 첫 발걸음이었죠. 


 “큰 연못에서 만나면 꼭 아는 척 하기야!” 


 언니, 오빠들은 인사를 했고 엄마 백조는 미안함에 눈물을 흘리며 날개짓을 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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