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세 번째 계절

궁금하다, 너

by 세지



벌써 그와 어느덧 세 번째 계절을 보내고 있다. 참 행복한 순간이 많았고 내가 설레하는 모습을 많이 들켰다. 지금 우리의 연애는 어느 정도 안정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안한 내 마음은 뭘까, 이 부분이 몇 주째 내 머릿속을 헤집는다.


이제 우리의 생활 패턴도 루틴 하게 되었고 주중에는 가볍게 한-두 번, 주말에는 한 번 진하게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나도 어쩔 수 없는 여자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보러 오는 횟수에 집착을 하고 그가 했던 말 하나하나에 점점 의미를 두게 되었다.


지난 그의 생일, '우리 봄에 제주도 가자.'라고 한 그의 말을 계속 되새겨 본다거나, 일이 바쁘더라도 잠시 얼굴만 보고 가는 날들이 많았었는데 이제는 전화 한 통 후 그냥 집으로 향하는 날이 더 많아졌다던가. 마음속 깊은 곳에서 불안함이 밀려왔다. 이 불안함은 틱틱대는 못난 모습으로 나타나곤 했다. 이런 내 모습이 너무 속 좁은 여자친구로 보여 스스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지만 절대 아무렇지 않은 척할 수도 없었다. 마음속 쌓여 나중에 폭발할 나를 내가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최대한 쌓지 않으려고 했다. 그럼에도 내가 했던 말을 잊는다거나, 전에 했던 이야기를 또 한다거나, 핸드폰을 계속 본다거나, 술을 즐길 줄 아는 나와 더는 속도를 맞춰주지 않는다거나, 전에는 메뉴를 잘 고르지 못하는 나를 위해 바로바로 결정해 주는 모습이 좋았다면 이제는 결정을 못하고 머뭇거리는 내 모습을 답답해하는 것 같다거나, 내가 꼭 지켜줬으면 하는 부분을 이야기해도 장난스레 넘긴다거나,

이런 모든 모습들은 연애를 길게 할수록 흔히 볼 수 있겠으나, 내 남자친구도 나를 설레게 하고 배려하는 초반의 모습들로 평생 살아갈 수 없다는 것 너무 잘 알지만, 그럼에도 서운한 건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지금도 아직 고민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이 이야기를 잘 에둘러서 말할 수 있을까? 근데 어쩌면 에둘러서 말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은 없을지도 모른다. 대놓고 내 뜻을 명확히 전달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일지도.


내가 먼저 좋아했고 오래 좋아했기에, 내게 조심스러운 모습들이 남아있는지도 모른다. 말 한마디도 기분이 나쁠까 고민하고 그의 모습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더라도 입 밖으로 꺼내서 그의 기분을 굳이 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이런 누구나 가질법한 뻔한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내가 지금 무엇보다 원하는 건 우리의 이야기이다.

지난 글에서 썼듯이, 서로를 공유하고 털어놓고 공감하고 이해하는 그런 날들이 많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일반적인 친구 이상의 것들을 공유하고 싶은 것인데, 그런 모먼트 자체가 그 이후로 잘 만들어지지 않았다. 어쩌면 작년 그가 고민을 털어놓던 그날 이후로 나는 계속해서 그런 날들이 많아지기를 기다리고 있는데도, 상황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날 만큼의 솔직함은 아직 볼 수 없었다. 글을 쓰면서도 마음 한 구석이 아리다. 고작 하루의 대화와 웃음, 눈물, 행복이 지난 몇 달을 또 추억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어쩌면 내 앞에서 만큼은 본인을 곱게 접어 놓고 좋은 모습만 보여주려고 했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주변 친한 지인들은 알아도 나만 모르는 이야기들이 수두룩 할 것이다. 겉으로는 내가 이해 못 할 이야기들이라고 하지만, 한 편으로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나의 위치가 어디쯤인지 대략 짐작을 해보곤 한다. 우리에겐 10년이 넘는 세월이 있었어도 결국 겉핥기였을까. 나는 함께 달리기 출발선에서 열심히 뛸 준비를 하고 있는데, 아직도 그는 경기장에 도착도 하지 않은 느낌이 든다. 우리가 더욱 가까워졌으면 하는데 아직은 너무 멀리 있다. 언제쯤 가까워질 수 있을까?


가장 서운한 말 중에는, '좀 할 게 있어서 내일 쉬려고.', '개인적인 일로 할게 좀 있어서.' 이런 것들이었다. 다시금 그와 연인이 되기 전 열심히 선긋기를 하던 그가 떠올랐다. 항상 바르고 올바른 모습만 보여주려 하던 그를 보며 조금은 답답하고 안쓰러웠다. 친구로서 '나에게까지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라는 생각을 하며 넘겼다고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충분히 그것들이 무엇인지 궁금할 명분은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제는 연인임에도, 그걸 물었을 때 한 걸음 물러서는 그의 모습을 이미 여러 번 보았기에 그가 스스로 동굴을 나올 때까지 기다려 주기로 한다.


연애 초반의 표현도 많고 결단력 있는 모습에 다시 한번 반했다고 하면, 지금은 그 표현들이 그만큼 보이지 않으니 내 마음이 갑갑하고 고민이 많아졌다. 단순히 집 가기 전에 뽀뽀하고 가기 싫어하고 먼저 사랑해라고 말하고 답이 돌아오지 않으면 서운해하는 그가 더 이상 아닌 것 같아 서운하다. 이 글을 쓰면서 언제 사랑해라고 들었는지 생각해 보며 목이 막혔다. 불과 몇 시간 전에 헤어졌는데 기억이 안 난다니. 내게 이번 연애가 참 소중한가 보다. 전에 연애에서는 이런 작은 감정들까지 고려하지 않았었나 보다. 연애란 것이 원래 시작하는 처음과 똑같을 수 없는 것이란 건 당연히 알지만, 이것이 나에게 일어나는 일이라고 하니 어떻게 건강한 방법으로 소화해 볼지 고민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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