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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미나 Nov 30. 2020

나는 욕심이 없는 사람

욕심이 없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돈을 벌 생각이 없느냐는 말을 가끔 들었고, 주변에서도 하고 싶은 일 하는데 돈은 어떻게 하느냐고 우려섞인 질문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돈 벌건데요. 돈 벌려고 하는건데요.” 라고 말하면서도 나는 잠시, 아니 꽤 오래 내가 돈에 대한 의욕이 없는 편이라고 믿었다. 전반적인 삶에서도 내가 이토록 여러 길을 헤매며 왔던 건 바로 하고 싶은 바가 명확한 이가 아니어서 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예전에는 명확한 하나의 길을 찾고자 했으며, 어느 시기부터는 내가 원래 이렇게 저렇게 고민하며 가는 스타일인가보다, 그냥 맘 가는데로 가보자 하고 매년 생뚱맞은 배움과 활동을 해왔다. 남들이 보기에는 매번 색다르지만 나에게는 그 것들이 한 가지 맥락을 가지는 것이었고, 그래서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언제나 찰나의 순간에 뒤집어질 수도 있는 것들이라는 생각이 최근 들었다.      


왜 이토록 맘이 조급한가.

기꺼이 꾸려오던 나의 시간들이 어느 순간 엄격하게 평가되고 정리되길 원하고 있었다. 

하고 싶어서 하는 것들이 대부분인 나의 생활은 돈을 벌지 않고 소비만 하는 형태로 흘러갔고, 나에게는 경제적 압박이라는 무기가 다가왔다. 그에 더해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은 10개 20개 점점 늘어나고, 욕심이 나는데 내가 하고 있는 일은 1개 2개 정도가 다라는 생각에 화가 치밀 때가 있다. 처음에는 화인 줄 몰랐다. 갑자기 열이 확 오르고, 목이 후끈하는 건 보일러를 높여 놓아서이거나 갑자기 스트레스를 받아서, 혹은 생각이 많아서 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그 것은 스트레스를 넘은 어떤 화였다. 스스로에 대한 답답함, 비난, 어쩔 수 없이 같은 헤맴을 반복하는 나를 바라보는 무력감, 무력감에 대한 좌절. 그런 것의 반복이 나를 가끔 자기혐오에 빠지게 한다.     


그 와중에 스스로 어이가 없는 건 내가 이상성을 가지면서도 회의성을 가진다는 것이다. 많은 것들을 꿈꾸지만 많은 것들에 회의적이라 엄격하고, 더디고, 쉽지 않다. 하고 싶은 것들이 다 눈에 보이지 않고, 이상성을 포함하고 있으며, 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들이다. 실제로 나는 빅데이터, 영상 만들기, 책출판 프로그램, 전자첵 제작 프로그램, 학습동아리 구성운영, 마을만들기 지원, 협동조합 구성지원 등 가지치기를 하며 배워왔다. 글을 쓰고, 모임도 하다가, 책을 만들고, 모임 연결을 생각하고, 전자책을 배우고 제작하다가 출판 마케팅의 부족함을 느끼는 등. 그러한 과정을 헐떡대며 이어가면서도 나는 이렇게 여러 개를 다하지는 못한다며 하나만 하고 싶다고 투덜대는 것이다. 취업을 한 상황에서는 홍보, 후원, 행사, 활동 등 여러 가지를 해내야 하는 게 죽도록 싫었고, 나는 그저 한 가지 방식만 주구장창 팔 것이라 다짐했었다. 그러나 독립한 나에게 동료들이 있지 않은 이상 작은 한가지의 일을 해내는 데에도 다방면의 기술과 역량이 필요했고, 그렇다고 동료를 모집하거나 협력할 생각은 아직 엄두를 내지 못해서 오로지 나 혼자를 고집하고 있는 상황인 것 같다. 왜 힘든지 알면서도 반복해온 나의 못된 욕심은 자꾸 나를 힘들게 하고, 쉬지 못하게 한다.      


쉬지 못한다는 건 밥도 먹지 않고, 잠도 줄여가며 숨 가쁘게 몰입한다는 것이 아니라, 잠을 자려해도, 밥을 먹으며 드라마를 봐도 정신의 반은 못 다한 일과 그 책임을 추궁하는데 쓰고 있다는 의미다. 그러니 뭘 하든 답답하고 초조할 수밖에 없다. 요 근래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말하면서 듣는 말은 이렇다.     


“동료를 찾아봐.”

“혼자 다하려고 하지 말고 맡기세요.”

‘그래, 그래야지.’     


마음속으로 그렇게 말하면서도 막상 맡기려니 들어가는 돈이 부담 되서, 내가 하면 인건비가 안드니까, 무상으로 부탁하기는 어려워서, 동료를 구하기엔 여력이 안 되서, 그렇다고 지원 사업은 받기 싫어서 등등 오만가지 이유가 흘러나온다.      


“그래 니똥 굵다.”

예전에 종종 들었던 말 같다. 

“그래 내 똥은 굵었다.”

고집스럽다.      


고생고생을 하면서도 마음을 바꾸기가 어려워 또 고생을 하고, 매번 새로 배워 진행하며 움직이고 있다. 왜 이러나 싶어 스스로도 답답해 생각해보면 배워서 직접 해보는 많은 것들이 또 영 싫지 않고, 다들 조금씩(사실 많이.?) 욕심이 나는 것들이다. 

결론은 나는 똥이 굵고, 욕심이 많다. 

하고 싶은 일은 갈수록 넘쳐나고, 그래서 배우고 싶은 것들도 많다. 

모든 과정을 다 책임지고 컨트롤 하려 해서 버거운데, 그 것으로 기어이 돈도 벌려고 한다. 

돈을 벌만큼 하려니 너무 가지가 많고..     


최근 작고 큰 현타를 맞았다.     


첫 번째는 내가 20대 방황기에 최초로 ‘이상’을 꿈꾸게 해준 교육 공동체 활동가 중 한명의 강연을 최근 듣게 된 것이다. 10년 전 즈음에도 활발히 움직이던 그는 이스라엘에서 아이들이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개발하며 움직였고, 그를 보며 ‘신기하다.’ ‘저럴 수도 있구나.’ ‘건물이 없는 학교. 누구나 배우고 싶은 것을 스스로 진행할 수 있는 형태.’ 그런 막연한 꿈들을 행하고 있는 사람들을 알게 되면서 가슴이 미칠 듯이 뛰었다. 그 이후로 자유로운 학습공동체는 내 삶의 큰 틀이 되었는데, 그가 요근래 경기도권 교육활동가들과 온라인 소통을 하며 사례 공유를 하고 있었다. 최근 근황을 듣는데 그 뿐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인터넷 등을 활용한 학습 커리큘럼을 형성하고 나라와 나라를 연결하는 과정을 진행하는 이들이 많이 있었다.      


‘나도!! 나도 정말 저렇게 하고 싶었는데!’     


강연을 듣고 생각했다. 내가 둘러 둘러 가다 그 처음의 맥락에서 꽤 많이 벗어난 것 같다.

둘러둘러가다 제대로 길을 해쳐나가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두 번째는 창업스터디이다. 각 분야에서 준비하는 바는 다르지만 공통으로 학습할만한 것들을 공유하는 모임인데 ‘플랫폼 비즈니스’라는 개념을 한 멤버가 공유했고, 지원금이 일부 있어서 강연을 의뢰하게 되었다. 플랫폼에 대한 책을 읽는데 페이스북, 구글 등 플랫폼서비스로 엄청 확장된 세계기업 위주로 보긴 했지만 그들이 초창기 기준은 바로 연결에 대한 보상을 바라지 않는 것이었다는 걸 알았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일을 할 수는 있지만 거기에 돈을 주면서 참여하는 사람이 대폭 확장되기는 어렵다는 것. 수많은 사람에 제대로 된 정보를 공유하는 매체가 되겠다면 그런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들이 많이 들어올 수 있게 부담을 없애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손해를 감당하면서 규모를 확장하는데 집중한다는 것이다. 창업 스터디를 하면서 나는 서비스를 공급도 하지만 연결도 하고 싶은데, 과연 여력이 될지, 공급하는 비용도 받고 연결하는 비용도 받는 것이 어려울지 등이 고민이었는데 보통은 공급자에서도 벗어나 연결만에 집중한다고 했다. 무수익으로. 최대의 규모를 이끌어 낼 때까지. 돈에 대해 욕심을 부리지 말고, 목적만을 분명히 해서 그 목적에 맞게 최선의 방법만을 택해야 한다는 것. 내가 하는 일에 갈피가 잡히지 않는 느낌의 이유를 깨달았다. 난 내가 하는 일이 가치 있으므로 거기에 대해 합당한 금액을 받아야 하고, 그래야 다른 사람을 동료로 구할 수도 있다 생각했다. 나를 통해 학습모임을 하는 사람들이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게 하면 충분히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것조차 1순위는 나의 돈 욕심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사업의 초점을 가끔, 요즘은 자주 흐리고 있다. 비전 전에 돈이라 비전이 살지 못하고 있다는 확인을 했던 현타였다.     


마지막 현타는 최근의 수술이다. 우연히 몸에 혹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고, 졸지에 급한 전자책 마무리를 앞두고 거의 모든 활동이 제한 되는 일주일을 겪었다. 먹는 거 잘 챙겨먹지, 매운거 끊었지, 술 안먹지, 담배 안피우지, 가끔 산책도 가지 등등 꽤나 후한 점수를 줄 정도로 건강을 챙긴다 생각했는데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나이 들어가니 한번 씩 한방 먹으라는 것인지, 자꾸 일에 매몰되니까 한 번씩 쉬어라가는 의미인지 또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랬더니 생각보다 내가 참여하거나 진행하고 있는 일들이 조금만 덜해도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들이 많다는 것을 체감했다. 스트레스를 받았다. 휴식을 취하라는 데 마음이 진정이 안됐다. 기어이 소변줄, 피빼는 줄, 수액줄을 달고서 꾸역꾸역 노트북을 보며 전자책 보완을 하고, ISBN 신청을 하는 등 하루하루를 보내는 나를 보며 ‘참 피곤하게 산다.’는 결론을 내렸다. 알고 있었지만 또 결론내리는 것이다. 불안해서 거의 진행이 안 되는데도, 비몽사몽하며 노트북을 보고, 책을 한 장 보고 그러는 것이다. 그냥 빠지면 좋겠는데 내가 의뢰한 강의가 있어 그걸 준비하려 책을 봤고, 6인실에서 마이크와 이어폰을 꼽고 두시간 강연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냥 일주일 푹 쉬면서 먹고, 자고, 놀고만 하고 머리는 쉬고, 마음은 안 불안하면 얼마나 좋을까.’

나 때문에 덩달아 일을 쉬고 한 주간 내 옆에만 있던 엄마는 티비를 보고, 옆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넷플릭스를 보고, 자며 시간을 보냈다. 

‘엄마는 어떤 마음일까?’

나는 집에서 밥 먹을 때마다 보던 넷플릭스도 안보고, 자고, 먹고, 일하고, 자고, 먹고, 일하고, 엄마랑 이야기하고를 반복했다. 퇴원하고 나서도 맘이 급해서 엄마 아빠 집에 더 있으라는 걸 됐다며 혼자사는 집으로 돌아왔고, 일했다. 앉아있어도, 서있어도 불편한데 가만히 누워있기는 아무도 해주지 않는 내 일이 숨을 조여 오는 것이다. 그렇게 4-5일 전자책을 겨우겨우 마무리 하고 계약을 진행하는 중이던 어제, 아는 출판사 사장님께 전자책 시장이 너무 많은데 어디까지 유통해야 할지 모르겠다 했더니 중간에서 유통을 모두 관리해주는 업체가 있다고 소개해주었다. 전자책도 사실 지원금을 받게 돼서 그 것을 다른데 의뢰해도 됐었다. 그런데 내가 한번은 해야 앞으로도 써먹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서 꾸역꾸역 해낸 것이다. 전자책 마무리 마감 기한이 촉박한데 내가 만든 전자책에 오류가 나면 어쩌나 불안해하며 작업을 마무리했었다. 유통도 여기저기 15여군데 계약서를 보고 상의를 하고 등기를 주고받고 마케팅 논의를 하고 등등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지말자. 그래 맡기자.’ 그래서 오늘 중간 업체와 거래 계약을 진행하고 도와 달라 했다. 그래프 등도 배경을 없애는 포토샵 기술이 있는데 그걸 혼자 이틀 배운 지식을 가지고 검색하며 이것저것 해보다 며칠을 허비하고 결국 퇴원해서 해결이 안되어, 돈을 주고 의뢰를 했다. 이틀만에 되었다. (아마 그 분은 2-3시간도 안 걸리는 시간에 후딱 했을 것이다.) 떼이는 수수료를 아까워 말고, 나의 불안을 덜고, 시간을 확보하고, 집중해야할 곳에만 집중하고 싶어 결국 퇴원 후, 혼자 하려고 또 막 애를 쓰다가 기간의 막바지에 이르러 몇가지를 맡기게 된 것이다. 사실 병원에 들어가기 전에 파일을 다 넘겨서 각각 맡기면 아마도 25만원, 총 3일이면 될 일이었을 것인데 그걸 나는 40일 가까이 끌어안고 있었다.      


이런 저런 현타 후 아무것도 놓치 못하는 나를 가엽게 여기며, 집중할 것들과 버릴 것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자고 다독이며 최근을 보내고 있다. 사실 오늘도 창업모임에서 지원금을 받아 가야 하는 발표회에 갔다. 아무도 시간이 안되서 내가 가게 되는 것인데 사실 지원사업이 있다는 건 내가 말했지만 나 빼고 다들 지원사업을 원해서 진행하게 됐고, 분담은 했지만 내 정신이 매우 부산스럽고 바빴던 것이 사실이다. 분담이 더 번거로울 정도로 함께 뭔가를 한다는 것은 신경써야 할 것이 많은 것을 오늘도 체감했다. 실밥을 빼고 날은 추운데 괜히 지원 사업 이야기 했다고 후회하면서도, 센터에 수술 후 몸이 안 좋으면 못갈 수도 있다고 말해놓았음에도 난 발표회에 가는 것이다. 한 친구가 같이 가게 돼서 너가 가라 했지만 같이 가줄라고 간다고 해서 꾸역꾸역 또 갔다. 뭔가를 하다가 숨이 차고, 숨이 차다가 감당이 안 되면 결국 정리를 하는데, 제발 이제는 숨이 차서 감당 안 되기 전에 맥락을 맞추고 싶으다.      


앞으로 모임을 만들어주는 역할, 모임을 운영하는 역할, 글을 쓰는 역할, 책을 만드는 역할 등을 정리하여 마음 넉넉히 감당할 수 있는 연간 계획을 세워보련다. 

‘올해 하반기 계획했던 모임 몇 개는 12월에 꼭 개설해야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위와 같이 글을 쓴다.     


그래. 나는 욕심이 없는 사람이 아니다.

욕심덩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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