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1년 5월 20일 15세 P 이야기
놀이, 커뮤니티(2061년)
조용히 불어오는 바람이 P의 얼굴을 스치고, 햇살은 적당히 따뜻하게 내려온다. 사람들의 머리칼, 어깨, 손 등으로 내려온 햇살을 머금고 주말이 시작된다. P는 자전거 폐달을 연신 밟아 골목을 꺽어 지나간다. 큰 거리에 나서서 우회전, 10분 정도 더 타고 가면 15층짜리 건물이 보인다. 건물 외벽에는 [10대’s]라는 글귀가 도드라져 보인다. 자전거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에 내린다. 건물 안은 흡사 시장 같기도, 공연장 같기도, 놀이터 같기도 하다. 엘리베이터 바로 앞은 투명 유리벽 넘어로 13세 O가 손거울 만들기 클래스를 진행하고 있고, 10세부터 17세까지 다양한 10대들이 거울에 한지를 물에 풀어 붙이기를 반복하고 있다. O의 클래스를 지나 우회전을 하면 17세 X가 작은 무대(동그란 나무 무대) 위에서 일인연극을 하고 있다. 10명 남짓한 사람들이 무대 주변을 둘러싸고 앉아 공연을 보고 있다. 그때 X가 관객에게 말을 건다.
X T!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내가 이쁜 게 내 잘못이야?
관객 T가 당황하며 말문이 막히자, 주변 관객들이 키득키득 웃으며 선택당한 T를 부러워하기도, 자신에게 물으면 뭐라고 답할까 고민하기도 한다.
X (T의 어깨를 잡고 흔들며)말 좀 해보라구 T! 멋진 게 내 잘못이냐고!
연극을 곁눈질하며 지나가면 그 옆에 ‘아무거나 이야기해’라 적힌 작은 입간판이 보이고, P는 투명 유리벽 안으로 들어가 겉옷을 옷걸이에 걸쳐 헹거에 걸고, 명찰을 목에 메고, 조명을 켜고, 커튼을 젖힌다. 목걸이 명찰에는 ‘스몰토커 p’라고 적혀 있다. 투명벽 옆 작은 스위치를 누르니 공중에 화면이 하나 떠오르고, 그날의 이야기모임 일정이 뜬다.
1타임: 주제 ‘빌어 먹을 세상’ 오후1시-3시 12명
2타임: 주제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것’ 오후 4-6시 11명
...
P는 ‘1타임’에 있는 ‘12명’을 누른다. 화면에는 ‘명단확인’, ‘연락하기’가 뜬다. ‘연락하기’를 클릭한 P는 목에 걸린 마이크 탑재 이어폰을 머리에 쓰고 말한다
P 안녕하세요, 스몰토커 P입니다. 오늘 1시에 시작되는 ‘빌어 먹을 세상’ 이야기는 일정대로 정해진 시간에 시작할 예정입니다. 조심히들 오세요!
이어폰을 다시 목에 걸치고 공간에 음악을 틀고 자리에 앉으려는 순간 똑똑. I가 웃으며 음료 두잔을 들고 들어온다.
P (웃으며)일찍 왔네?
I 마술쇼 끝나고 시간이 남아서. (음료를 건네며)자.
P는 I가 가져온 핫쵸코를 한모금 홀짝인다. 몸에 활기가 좀 더 도는 느낌이 들었다. P가 연신 음료를 마시는 중, I는 좀 전 화면을 켜서 일정표를 확인한다.
I 와우 오늘 주제(빌어먹을세상)는 좀 센데?
P 그래?
I 안그래?
P 글쎄?
I 이제 한지 좀 됐다고 난이도가 올라가는데? 빌어먹을 세상이라니..
P 한지 좀 됐지. 나 여기 운영한지 1년 다되가.
I 벌써?
P 어 벌써. 넌 얼마나 됐지?
I 난 한 6개월? 쉬엄쉬엄해라. 여기는 우리들 놀이터라고.
P 그니까.
I 그니까?
P 그니까, 노는거니까 왜 쉬엄쉬엄해? 정신없이 해야지.
I 아.. 오케이 그래, 내가 졌다. 너 이야기모임도 좋지만 내 공연도 보러와 재미있다구~
P 알았어. 이번 주 중에 갈게.
I 에그, 또 그소리. 그래 언젠간 오겠지. 나중에 보자 나도 쇼 준비하러 갈거야.
P 그래.
I 싱거운 녀석..스몰토크 때는 완전 딴판이 된다니까.
어느덧 12시 50분이 되고 사람들이 하나둘 오기 시작하더니 11명이 원형 테이블을 둘러싸고 자리에 앉아 있었다. P는 음료를 따라주며 참여자들의 얼굴을 살폈다. 반 정도는 아는 얼굴이었고, 반은 모르겠다. 자신을 스몰토커라 소개하면서 이야기 모임에 참여하거나 진행해본 적 있는지 물은 뒤 오늘의 주제를 알려주는 P. 다소 어색해 하면서도 이런 분위기가 신기하고 궁금한 사람, 익숙하고 잘 알아서 내가 자주 와봤음을 티내고 싶은 사람, 주제가 굉장히 마음에 들어 무슨 말을 꼭해야 할지 머릿속으로 정리 중인 사람, P에 관심있는 사람 등이 P의 설명을 듣고 있다. 그리고 한시간 뒤 자신을 답답하게 했던 각종 사건, 사고에 대해 이야기를 하느라 그들은 얼굴을 붉히고, 목소리를 떨고, 눈을 부릅떴다.
빌어먹을 세상은 이야기 꺼리가 많아서 좋다.
어느덧 두 시간이 흘러 그들은 각자 자신을 답답하게 해온 것들에 대한 글을 적고 헤어졌다. 빌어먹을 세상 따위 쿨하게 입장해주겠다는 표정으로. 그 중 한명이 다시 들어와 P에게 묻는다.
A 이 주제 담주에도 하면 안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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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0년부터 전국 각지에 설립된 청소년놀이터는 현재 총 30개.
평균 층수 15층,
층별 청소년 운영공간 20-25개,
청소년노동자(운영자) 수 약 700명.
월평균 이용자 21만명.
전국 청소년 놀이터 월평균 이용자 210,000명*30개=3,600,000명(360만명)
건물 건축 디자인 설계 과정에서부터 설립예정 지역의 청소년들 의견을 기초자료로 사용하여 각지마다 스타일은 다르지만 흡사 2020년대에 있던 백화점과 같은 식이라 생각하면 되겠다. 청소년 놀이터의 유일한 공통점은 ‘청소년에 의해, 청소년을 위해, 청소년이’ 만들어 간다는 것이다. 운영하는 주체도 청소년, 참여하는 주체도 청소년이 되는 이 공간은 ‘자유’를 기반으로 하는 청소년들의 공간이다. 공간 운영비도 청소년들이 자체 모금 혹은 운영자들이 버는 수익으로 모아 운영이 되고 있다. 알바 겸 활동하는 운영자도 있고, 진짜 놀기만 하려고 운영하는 이들도 있다.
경제적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선거권이 없다는 이유로 사회에서 더욱 배제되어 가던 청소년들에게 다양한 권리를 회복시켜주자는 여론이 확대되었고, 선거권 연령이 만18세(2019년)에서 만16세(2029년), 만13세(2037년)로 낮추어지면서 교육과정이 폐지되고, 교육에 대한 의무감에서 해방되면서 학교라는 형식의 틀 외에 다양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시간이 허용되었고, 자연스럽게 청소년 자유, 놀이 등으로 관심이 이어졌다. 그 중 청소년 놀이터 개발 프로젝트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놀이’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이 곳은 청소년들이 자신이 운영하고 싶은 놀이를 기획, 제출하여 허가를 받으면 세달 동안 한 공간을 활용하여 진행할 수 있다. 허가는 그 지역 청소년들의 청소년투표로 매달말일 진행이 된다. 공간 수는 넉넉할 수도 있지만 한계가 있으므로 선정을 해야 하고, 특정 누군가가 선정하는 것은 옳지 않기 때문에 시간과 돈을 들여서라도 투표를 통해 놀이터를 구성한다. 참고로 온라인투표로 진행되기 때문에 비용이 많이 든다고 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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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전국 각지에서 어린이들의 의견을 수렴하며 만들어지는 놀이터들이 생겨나고 있었다.
아이들 상상은 현실이 된다
http://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759347
청소년들의 놀이공간에 대한 움직임도 있다. 청소년문화의집은 동아리라는 형태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았다.
놀 곳 없는 농촌 청소년…특별한 놀이터서 즐겨요
http://ch.lghellovision.net/news/newsView.do?soCode=SC30000000&idx=3096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