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옹으로 이사하기
프랑스에서 뭔가 일 처리를 할 때 아무런 문제 없이 한 번에 해결됐다면 그날은 정말 운이 좋은 거다. 지금까지 나는 프랑스에 반년 조금 넘게 살면서 행정처리를 하거나 사설 서비스를 이용할 때마다 크고 작은 문제를 겪어왔다. 파리에서 리옹으로 이사를 하는 일도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긴장하고 있었는데 역시나 불길한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고 나는 몸고생을 해야 했다.
원래는 철도회사(SNCF)에서 제공하는 캐리어 이송서비스를 이용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 서비스가 코로나로 인해 일시적으로 중단되어 다른 이사서비스를 알아보니 도시 간 이동의 경우 가격이 터무니없게 비쌌다. 결국 최후의 보루인 '내 노동력 활용하기' 옵션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내 계획은 먼저 꼭 필요한 물건만 담은 큰 캐리어 두 개와 배낭 한 개를 우버와 철도를 이용해 리옹으로 옮기는 것이었다. 그리고 인턴 시작 전에 한 번 똑같은 방법으로 나머지 짐을 옮길 생각으로 우선 첫 번째 미션에 착수했다. 리옹에서 잠시 머물기로 한 숙소는 다행히 기차역에서 도보로 7분 정도 떨어진 거리였기에 철도역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있지 않은 이상 큰 힘 들이지 않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역시 이 나라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우버에서 내리자마자 슬프게도 나는 '엘리베이터 고장'이라는 안내문을 봐야 했다. 리옹행 기차가 들어오는 플랫폼은 깊은 지하층에 위치해있었다.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고 지상층 플랫폼이 아닌 것에 감사하며 30kg이 훌쩍 넘는 가방을 하나씩 옮기기 시작했다. 한 가방을 조금 내려다 놓고 다른 가방을 옮기는 식으로 짐을 옮기고 있었다. 마음속으로 항상 하자가 있는 프랑스의 시설에 대해 한껏 욕을 하면서 내려가고 있는데 뒤에서 덜컹거리는 소리가 났다. 뒤를 돌아보니 어떤 젊은 여자분이 본인의 캐리어를 한 손에 들고 다른 한 손에는 내 캐리어를 들고 뒤따라 내려오고 있었다.
짧은 프랑스어로 "Merci, Madame!"이라고 인사하자 그분은 "De rien!"이라는 말과 예쁜 미소를 남기고 떠나갔다. '정말 저 남은 가방 하나는 못 내릴 것 같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에 너무나도 크고 값진 호의를 받아 마음이 물렁하고 따뜻해졌다. '이런 분들 덕분에 또 힘이 나'라고 생각하며 자판기에서 와플 하나를 뽑아 입에 욱여넣고 기차에 올라탔다.
기차에 타고 보니 이전 것과 비교하면 조금은 작고 귀여운 또 하나의 난관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캐리어를 짐칸에 넣어야 하는데 혼자서는 도저히 허리까지 오는 짐칸의 높이만큼 캐리어를 들어 올릴 수가 없었다. 혼자 끙끙대고 있는데 이번에는 내 또래로 보이는 여성분이 와서 짐을 함께 들어주셨다. 엘리베이터 고장으로 지친 몸이 사람들의 따뜻한 호의에 스르륵 풀리는 것 같았다. 그렇게 짐 정리를 마치고 내 자리에 앉아 한동안 복잡한 감정을 느끼다 잠에 들었다.
잠에서 깨고 보니 시간은 오후 9시 20분, 리옹에 도착하기 10분 전이었다. 그렇게 금방 9시 반이 되었고 나는 기차에서 내려 처음으로 리옹과 마주했다. 리옹 한가운데에 있는 Part-Dieu 역에서 본 리옹은 파리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현대적인 건물들이 즐비했고 길은 깔끔하고 널찍했다. 현대적이고 깨끗한 도시를 좋아하는 나는 너무 설레었고, 여기에서 펼쳐질 새로운 삶을 기대하며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