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옹에서의 첫 주
리옹에서 맞이하는 두 번째 아침, 이 날은 오전에 정기 교통권을 만들고 강가를 구경할 생각으로 일찍이 집을 나섰다. 파리도 아닌 리옹에서 영어가 통할리 없기에 되지도 않는 불어로 교통권을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Part-Dieu 역 옆에 위치한 리옹의 대중교통 회사 TCL의 서비스센터로 향했다. 다행히도 우리 부모님 뻘 되어 보이는 인자한 직원분께서 내 업무를 봐주셨는데 내가 어색한 불어를 한 자 내뱉을 때마다 인내심을 가지고 들어주셨다. 심지어 마지막에는 엄지를 치켜세우며 내 가여운 프랑스어를 칭찬해주시기까지 했다. 항상 'Désolé Madame, j'ai pas le temps.' (미안합니다. 시간이 없어요.)라고 말하며 본래 속도로 불어를 내뱉던 파리의 서비스 종사자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친절함이었다.
불어로 교통권을 만들었다는 뿌듯함을 안고 강가를 향해 20여분을 걸었다. 아무리 걸어도 강가가 보이지 않아 다시 구글맵을 열어보니 내 위치가 임시숙소 앞으로 찍혀있었다. 당황해서 주위를 둘러보니 바로 눈 앞에 내 숙소가 보였다. 강가와 정 반대 방향으로 한참을 걷고 있던 것인데 어쩌다 보니 내 숙소 앞에 닿아있던 것이다. 아까 교통권 만들기에 성공하고 얻은 뿌듯함은 어디론가 사라졌고 어이없는 웃음이 새어 나왔다. 강가와 한참 멀어졌으니 걷기는 포기하고 아까 구매한 1회권 티켓을 사용해 트램에 올라탔다.
운 좋게도 내가 강가에 다다랐을 때쯤 먹구름이 걷히고 해가 쨍하게 내리쬐었다. 리옹에 흐르는 이 강은 Rhône이라 불리는데 파리의 센 강 (La Seine)과 비교하면 물이 훨씬 맑고 투명하다. 리옹은 니스처럼 완전히 지중해 남부에 위치한 도시는 아니지만 푸른 강물 색과 쨍한 햇볕을 보아하니 남부 도시의 색채를 조금은 띄고 있는 듯싶었다. 한 편 에메랄드 빛깔의 물과 주황색 지붕들로 둘러싸인 강의 모습이 스위스의 베른을 연상시키기도 했는데, 이에 잠시 이 강가의 풍경이 알프스 근처 도시들이 공유하는 모습인지에 대한 궁금증에 휩싸여 있었다.
이런저런 상상을 하며 초여름 맑은 하늘 아래의 강가에 서서 바람을 쐬고 있으니, 내가 여행하는 삶을 시작한 이래로 살아왔던 도시들과 이야기 그리고 사람들이 떠올랐다. 매번 어려운 문제를 던지고 나를 시험하고, 그 와중에 또 아이처럼 웃게 되는 사건들도 가끔씩 생겨나고, 새로운 사람들과 경험 그리고 배움으로 가득했던 그 시간들이 생생하게 기억났다. 안정과 거리가 먼 삶의 패턴 때문에 때때로 스트레스도 받지만 그래도 나는 내가 좋아서 이 삶을 계속 선택하고 또 살아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산책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잠시 쉬다 저녁에는 같이 일하게 될 동료들을 만났다. 리옹 3구에 있는 Mi casa라는 레스토랑에 테라스에 앉아 다 같이 맥주를 한 잔씩 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여섯 명의 직원들과 네 명의 다른 인턴 친구들과 대화를 나눴는데 다들 친절하고 재밌는 사람들이었다. 다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낸 후 기쁜 마음으로 숙소로 돌아와 리옹에서의 첫날을 마무리했다.
새로운 도시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일은 몇 번을 해도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지칠 때마다 한 번씩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좋은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한 번 해볼 만한 일이기도 하다. 나를 포함하여 새로운 시작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눈 앞에 펼쳐진 가시덤불을 조심히 또 가끔은 과감히 베어나가며 새 삶을 씩씩하게 꾸리고 또 그 과정 속에서 많이 배우고 성장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또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