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있을 수만 있다면
"그럼 잠은 어디서 자요?"
내가 혼자 차박을 다닌다고 하면 사람들이 가장 먼저 묻는 질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100%의 확률로 모두 여자다.
차박은 말 그대로 '차에서 잠을 잔다'는 뜻인데, 과연 그들이 '박(泊)'의 사전적 의미를 모르고 나에게 질문한 것일까?
아마도 차 안에서 불편하게 몸을 구겨 잠을 자는 것이 머릿속에서 전혀 그려지지 않거나, 여자 혼자 밖에서 자는 것 자체에 대해 무섭다는 감정이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리라. 그들의 질문이 충분히 이해된다.
오해할까 봐 먼저 말해두는데 나도 호텔 무지하게 좋아한다.
분위기 있는 음악을 틀어놓고, 향기 좋은 어메니티로 샤워를 하고, 맛있는 디저트를 사 와서 따뜻한 차와 함께 음미한 후 바삭바삭한 침구 속에 쏙 들어가 하룻밤을 잔다? 상상만으로도 벌써부터 행복하고 짜릿하다.
(아 물론, 내가 요리도 청소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가장 좋다.)
그럼에도 만약 나에게 단 하루의 자유시간이 주어진다면 난 호텔 대신 차 트렁크로 기어들어가겠다.
내가 자유부인이 되는 날은 언제나 변수가 충만하다.
큰 맘먹고 오래전부터 디데이를 정해 놓고 손꼽아 기다리다가도 아이가 갑자기 아프기라도 하면 도저히 짐을 챙겨 나올 수 없다. 같은 이유로 친구들과의 약속을 잡지 않은지도 오래다. 어쩜 애들은 엄마 나가는 걸 기가 막히게 알아채고 딱 전날 열이 오르기 시작하는지..
아픈 아이를 돌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혼자만의 시간을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도 자라서 못난 짜증으로 변해가지만 이 감정을 밖으로 표출하기에 나는 너무나도 성숙한 어른인 것이지. 태연한 표정 뒤로 애써 숨겨온 나의 속상함은 숙박 취소 수수료 문자 앞에서 그만 무릎을 꿇고 만다.
젠장. 이 돈이면 외식이 몇 번이냐. 돈은 돈대로 날리고, 언제 올지 모르는 자유시간의 기회도 날려버리고..
아이가 다 낫고 나면 내가 연달아 아픈 이유가 된다.
엄마도 가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
아이를 재우고 마시는 맥주 한 캔으로도 도저히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있었다.
<엄마의 말공부>라는 책으로 유명한 이임숙 소장님의 또 다른 책 제목 <엄마도 가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처럼 나는 혼자만의 시간을 원했던 것이다. 그것도 아주 격렬하게.
공간적 분리에 대한 나의 집착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 모르겠다. 우선 집 안에서는 내가 혼자 있을 공간이 없다. 화장실에서조차 아이와 눈을 마주치며 볼일을 봐야 하는 치욕을 경험한 분들이라면 격하게 공감하시리라 생각한다. 짱구를 굴리다가 혼자 있는 시간이라도 만들어보자 하고 새벽에 일어나는 것을 시도해 봤지만, "엄마가 깼다"는 나만 모르는 알람이 어디서 울리는지 아이들도 귀신같이 깨서 이불로 복귀한 적이 허다했다.
실패로 돌아간 시도들 때문에 울적해진 마음을 주변사람들에게 슬쩍 내비치자 이번엔 조언을 빙자한 비난들이 나에게 꽂힌다.
"애 엄마가 무슨 혼자만의 시간이야. 꿈도 크다 얘"
"그럴 시간에 애들, 남편이나 신경 써"
이 또한 놀랍게도 모두 여성들에게 들은 말이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전혀 중요치 않은 사람일까?
아니면 혼자만의 시간을 갖지 못한 채 살아가는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나를 친절히 끌어내려 옆에 앉히고 싶은 걸까?
나는 아직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그들의 시선을 양분 삼아 더욱 열심히 '혼자만의 시간'을 확보하고자 애썼다.
나의 조건은 이러했다.
집이라는 공간을 벗어날 것
이왕이면 자연에 가까운 곳에 나를 데리고 갈 것
사용비용이 부담스럽지 않을 것
시간에 제약 없이 언제든 실행할 수 있을 것
그리고 수많은 시도 끝에 나의 조건에 완벽히 부합하는 녀석 '차박'을 만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