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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리아 Apr 12. 2020

도움과 오지랖의 경계

다시 생각해보게 된 계기가 된 코로나 사태

누군가 나에게 어떤 것을 해달라고 부탁했을 때, 내가 그걸 해결하지 못한다면 내 선에서 잘라야 한다. 

내가 해결하지 못해서 또 다른 사람들을 통해 해결해주려고 하는 건 현명하지 않다. 그게 바로 오지랖이다. 


이것을 깨닫게 된 계기가 되어준 게 코로나이다. 

이번 코로나 사태로 많은 유학생들이 한국에 들어가야했고, 따라서 방을 정리해야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중의 한명이 내 친구이다. 돌아오는 4월 17일에 전세기를 타고 한국에 돌아가는데, 기약없이 호주를 떠나는 모양새이니 방세가 부담되어서 방을 빼야만 했다. 


정말 중요한 물건들 외에는 다 처분하고, 교과서와 책 몇 권이 남아서 모으니 두 박스정도가 남았다. 친구는 내 집에 혹시 맡겨도 되냐고 물어봤고, 나는 방도 충분히 크니 맡겨도 된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 집까지는 먼 편이라 짐을 전하는 게 난감했다. 


아빠 퇴근길에 받을 수 있는 지 여쭤보려고 했는데 아빠가 너무 바쁘시기도 했고, 아빠가 운전하셔서 친구집까지 가기에는 멀었다. 평소라면 기꺼이 해주셨을 아빠지만,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새로 제정된 법 (주: 집, 일 외에는 15km반경 안에서 생활해야 한다. 만약 Non-essential한 이유로 15km 반경에서 벗어나야 한다면 $1600, 약 백 사십만원의 벌금을 내야한다.) 때문에 가기도 부담스러웠다. 친구가 소형이사나 택배를 알아봤는데, 그것도 거리때문에 가격이 비싸서 유학생에게는 부담이 되는 금액이었다. 친구는 나에게 괜찮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다. 신경 쓰게 해서 미안하다고. 


나는 알겠다고 말했지만, 내 나름대로 마음이 쓰여서 어떻게 방법이 있나 고민을 해봤다. 이번 기회에 한국에 들어가시는 고모가 생각났고, 고모는 집을 비우시는 건지, 아니면 친구 짐 두 박스를 보관해주실수 있나 생각해봤다. 


엄마께 얘기를 꺼내보았는데, 엄마는 부정적이었다. 고모가 여러 번 엄마랑 고민을 나눴다고 한다. 고모가 렌트는 유지한 채로 한국에 돌아가니까, 고모를 아시는 여러 사람들이 혹시 그 집에 자기가 살아도 되냐고 물어봤다고. 물론 내 집에 나 없이 다른 사람이 사는 건 당연히 불편하기에, 고모는 여러 번 거절했다. 


엄마는 내 부탁을 엄마 선에서 커트하려고 했다.사람들이 고모에게 불편한 부탁을 한 걸 뻔히 아는데, 고모를 더 부담지게 하기 싫어하셨다.  그런데 나는 조그마한 박스 두개 정도는 혹시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고, 그 말에 엄마가 전화기를 들었다. 엄하게 훈수를 두는 건 잊지 않았다. 


물어는 볼건데, 기대는 하지마.


예상했듯이 그 전화는 내가 원하는 대로 향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고모께는 모르는 사람의 짐을 맡는 다는게 꺼려졌을 거고, 또 택배를 받거나 하는게 호주에서는 마냥 편하지 않으니까 내 생각에도 그냥 거절하는 게 현명한 판단이었다. 


거기까지는 그런듯 괜찮았는데, 여기에 변수가 생겼다. 아빠가 전후사정을 모르고 엄마랑 나를 꾸짖기 시작했다. 왜 괜한 부탁을 고모한테 하냐고, 내가 무리한 부탁을 했으면 엄마 선에서 끊어야하는 게 아니냐고. 여기서 좋은 마음으로 고모한테 전화한 엄마도 기분이 나빠져서 아빠랑 말다툼을 했다. 괜히 부부싸움을 부추기게 된 나로서는 괜히 죄책감이 들었다. 거실에 싸한 바람이 가라앉은 후에, 엄마한테 쭈뼛쭈뼛 다가가 사과했다.



엄마가 내게 말했다. 

친구를 도우려고 하는 건 좋은 마음이지만, 그게 항상 좋은 결과가 되는 건 아니야.





그 후 내가 고찰해본 바로는 이렇다. 


친구가 도움을 요청했을 때 내가 도울 수 있다면 열심히 도와줘도 된다. 그건 선한 마음이니까. 


하지만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린다면 불확실한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그 결과는 내 책임이 될 것이다. 또한 도우려는 과정 속에서 마찰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러면 사실 내게는 좋지 않은 방향이 될 것이다. 선의로 도움을 준 사람에게도 상처를 줄 수 있으니. 


게다가 친구의 마음을 모르는 채로 도와주려고 한다면, 그건 오지랖일 것이다. 친구에게 괜한 희망을 주기 싫어 나는 고모의 의중을 먼저 물어보고 싶었다. 그건 잘 한 행동 같은데, 또 생각해보면 친구는 또 잘 모르는 사람한테 폐 끼치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다. 남의 마음을 헤아려보지 않고, 또 대화해 보지 않고 행동하는 것은 선을 넘고, 불편함을 끼쳤을 수도 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인간관계에 대해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예를 들면,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보는 것. 고모와 부모님께서는 항상 내 부탁에 응해주셨기 때문에 내 친구가 힘들 때도 어떻게 해결해주시겠지, 라고 쉽게 생각했던 게 큰 오산이었다. 


나를 사랑하시니까 불편함을 감수하셨던 건데, 그걸 당연하게 여겼기에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까, 다시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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