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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리아 Apr 29. 2020

어렸을 때 맞닥뜨린 문화적 "다름"이 부른 거짓말

솔직함을 향한 도약.

정제되지 않은 날카로운 글을 좋아한다. 

자기 신념이 확실한 사람, 열정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 나를 매료시키는 부류는 바로 그런 솔직한 사람들이다.

한 가지에 꽂히면 그것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 

명확한 비전을 가진 사람의 설렘과 소신. 그들에게서 우러나오는 카리스마가 참 부럽다. 


하지만 정작 나 자신은 둥글고 둥근 조약돌에 가깝다.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좋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나의 모서리는 닳고 닳아 민둥민둥해진 것처럼...




누군가에게 미움받지는 않는 삶이지만, 나에게 솔직하지 못하다. 이렇게 행동하는 게 좋은 것 같지도 않다. 

지금까지 외롭고 싶지 않아서, 또 다양한 친구들이랑 어울리고 싶어서, 몰라도 아는 척, 공감하는 척, 그 들의 하나인 척 흉내 냈지만, 그 "척"을 이어나가는 것이 참 힘들다. 또한 진심으로 다가오는 친구들에게도 항상 마음속 귀퉁이를 숨겨두었던 게 아쉽다. 싫은 건 싫은 거, 좋은 건 좋은 거. 이렇게 표현할 수 있으면 학창 시절에 더 뚜렷하고 진실한 친구관계를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사실 대화는 상호 소통이 되어야 하는 즐거운 법이지만, 나는 다른 사람의 기분을 맞추는 것에 급급했으니. 많은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혹시 얻을 수 있었던 즐거움을 놓쳐버린 것이 아닌가 씁쓸하기도 하다. 


고등학교 시절에 정말 좋아하던 친구가 있었다. 말 수가 적고 주관이 뚜렷해서 말 한마디 한 마디가 신랄한 아이였는데 또 그 모습이 재밌어서 그 친구와 있을 때마다 깔깔 웃었다. 그 친구는 솔직하면서도 사람 간에 예의를 지켜서 크게 맘 상할 일도 없었다. 마냥 그런 모습을 동경했던 것 같다. 친구가 어떤 행동을 했을 때도 솔직하게 이건 별로다.라고 말할 수 있는 모습. 하지만 정작 나는 그럴 자신이 없었다. 솔직함에는 상대의 부정적인 반응도 어련히 따라오는 법이었고, 내 직설적인 말을 들은 사람이 배신감/실망감을 느낄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배신감/실망감을 느낄까 봐 걱정된다는 생각은 내 마음속에서 과장된 것 같다. 어디서 흘러나온 생각인지 잘 모르겠지만, 누군가에게 부정적인 말을 할 때 가끔 "나를 미워하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왜인지 버림받을 것만 같고, 나를 떠나갈 것 같다. 왜 이런 생각을 하는 걸까 가끔 직면하려고 해 본다. 왜 내가 착하지 않으면 나를 버릴 것 같지? 정확히 말하면, "착함"이 아니라 "내가 그 친구에게 맞는 사람이어야 한다"라는 생각이 거듭 든다. 


이 생각은 친구 한정인 것 같다. 내게 23년 동안 무조건적인 사랑을 준 가족에게는 그런 생각이 전혀 없이 편하게 행동한다. 내 생각을 바로바로 직설적으로 표현할 수 있고, 싸울 수도 있다. 내게 이성적인 관심을 가졌던 사람들에게도 편하게 대한다.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바로바로 말하는 편이고, 진솔하게 터놓는 관계를 추구한다. 


하지만 나는 친구 관계 속에서 소심해진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과거의 일을 되짚던 중, 문득 내가 외국에 첫 발을 디디었던 시절이 떠올랐다.


혹시 과거에 친구관계에서 있었던 일과 연관되어 있을까?


나는 초등학교 4학년까지 한국에서 언어적 능력이 뛰어나다고 칭찬받으며 자랐다. 책을 무척이나 좋아해서 공부를 잘했고, 또 항상 책을 쓸 거라는 말을 달고 다녔다. 표현하는 것을 좋아했다. 토론하는 것도 좋아했고, 한국어를 사랑했다. 우리 초등학교의 있던 작은 도서관의 책은 다 읽어서 엄마가 시내 도서관에 매일같이 데려다주시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갑작스레 호주에 오게 되었다. 그리고 나를 맞이한 건 언어의 벽, 그리고 문화의 벽이었다.


초등학교 때에 내 자아와 현실의 차이는 참 컸던 것 같다. 집에서는, 그리고 한국의 친척과 친구들은, 다들 내가 영민하다며 잘 적응할 것 같다고 했지만, 사실 학교에서는 벙어리로 있는 듯 없는 듯 살았다. 나름의 자존심인지, 못하는 영어를 해 비웃음 받지 않으려고 차라리 입을 다물었다. 가끔 모르는 반 애들이 눈을 찢으면서 칭총이라고 한 적도 있었지만, 운이 좋았다면 다행히 선생님과 친구들이 대체적으로 착했다는 것? 말을 걸어도 대답하지 않는 재미없는 나한테도 계속 말을 걸어주고, 놀이에 끼워주고, 나를 웃게 해 주려고 별 노력을 다 했다는 것. 하지만 머릿속에 있는 한국어에 유창한 내 모습과 정반대인 "Later"라는 단어 하나조차도 입에서 내뱉지 못하는 내 모습의 괴리감은 참 컸고,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벽과 같았다. 


그때 얻은 게 낮은 자기 효용 감불안감이었다. 나랑 같은 시기에 호주에 왔지만 더 수월하게 적응해 나가는 내 또래 한국 친구들을 보면서 우울했고, 부모님의 높은 기대와 나의 부족한 모습을 보며 좌절했으며, 나의 부족한 모습에 새로 얻은 친구들이 떠나지 않을까 불안했다. 게다가 나는 언어도 부족한데, 호주 사회에도 조금은 부족하다 느꼈다. 도시락으로 김치볶음밥을 들고 오면 친구들은 표정을 찡그렸고, 반 안은 곳곳에 내 음식 냄새로 가득 찼다 (pervaded). 부끄러웠다. 누구도 뭐라 하진 않았지만, "다름"이라는 것에서 받는 시선이 참 슬펐다. 


그래서 나는 엄마에게 졸라 햄과 치즈, 그리고  양배추를 넣은 샌드위치를 들고 등교하기 시작했다. 한국 노래 대신 영어 노래를 들으려 의식적으로 노력했고, 이해 못해 재미도 없던 호주 청소년 예능도 봤다. 의식적으로 나를 구성하는 "한국인"이라는 주체를 숨기려고 노력했고, "한국인"이라는 이름표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 노력은 성공하지 못했다. 


아무리 호주에 산다고 한들, 나의 일부분은 한국에 속해있었으니까. 





아무래도 어렸을 때에는 비슷한 아이들끼리 그룹을 만들고, 속하지 않는 아이들은 배제하는 일이 잦다. 그래서 친구들이랑 친해지고 싶어서 흉내를 내고 "척"을 했다. 비슷한 영화를 좋아하는 척, 비슷한 취미를 가진 척, 비슷한 경험을 해본 척. 초등학교, 중학교의 대다수와 다르고 싶지 않았다. 외톨이가 될 까 봐.


어린 시절 문화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했다. 당당하게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기보다는 내 것을 부정하고 스며들고 싶어 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렇게 숨기고 숨기고 숨기는 버릇하다 보니, 나라는 존재는 최근까지도 솔직하지 못했다. 친구들이랑 공감대를 형성하고 싶어 해서 좋아하지 않는 유형의 드라마를 보기도 하고,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가수를 좋아하는 척해봤다. 그러지 않으면 친구가 떠날 거란 불안감이 마음속 한 구석에 있었다. 


나는 내 문제가 언어가 아닌 자신감에서 왔다고 판단했다. 왜냐하면 영어에 유창하지 않은 사람도 새로운 환경에 눌리지 않고 의견을 피력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 들은 언어의 장벽에 굴하지 않으며, 자신의 의견을 상대방에게 이해시키려고 노력하고, 또 모국(한국인이든, 유럽인이든)의 아이덴티티를 자신감 있게 표현했다. 모국의 음식을 자랑스럽게 선 보이고, 함께 맛있게 먹으면서 둘의 다른 문화를 자연스럽게 융화시켰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동안 자신의 나라에서 가치관과 생활을 자연스럽게 습득하고, 자신의 문화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을 겪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모국에 대한 자신감이다. 어른이 된 후에는 다들 어른스럽게 '다름'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모국의 "다름"을 쿨하게 인정한 그 사람들. 


즉, 나를 변화시키기에 필요했던 건 나 자신이 조금 더 뚜렷한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자신감 있게 나를 표현하고, 내 의견을 말하려면, 그전에 내가 누구인지, 나는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지를 알아야 했다. 또한, 나 자신의 언어적 능력에 상관없이 자신감 있게 의견을 피력해야 한다고 봤다. 


대학교에 와서 다양한 것을 경험해보고 또 기록하면서 나 자신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아갈 수 있었다.  


너 자신을 알라. 
"Know thyself." - Socrates. 


1. 다양한 경험 하기.

친구들과 한국, 대만, 싱가포르 등등 외국 여행도 가보고, 초콜릿 동아리 회장직을 맡기도 했고, 창작 동아리에 들어가서 활동하기도 했다. 의대 춤 동아리 Med Moves 에도 가입해서 땀을 흘리고, 다양한 알바도 경험해봤다. KFC에서 시작해서, 레스토랑, 꽃집이랑 콜 센터, 그리고 과외랑 통역 등등 여러 가지 일을 경험해보며 다양한 일의 좋고 나쁜 점을 깨닫게 되었고, 또 나는 적당히 사람 상대하면서 내 전문적인 지식을 사용하는 직업을 좋아한 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양한 봉사활동과 자선 사업단체에서 일하며 내가 humanitarian cause 중 어떤 것이 제일 마음에 쓰인 지도 알 수 있었다. 


또한, 대학교에서 많은 문화의 경험을 했다. 대학교 주변에서 스페인, 이탈리안, 중국, 일본, 베트남, 태국, 멕시코 등등, 다양한 문화의 다양한 음식을 먹어보았다. 나는 마라탕을 좋아하고, 돈가스를 좋아하지 않으며, 탕 요리를 좋아한 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한국 음식을 좋아하고, 한국 음악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친구들을 통해 내 문화가 좋은 것이고 인정받을 만하다는 것도 다시금 깨달았다. 


이렇게 쌓인 경험이 내가 누군지 알아가는 것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2. 일기 쓰기

하루에 있었던 일들을 기록하면서 내가 언제 행복했는지, 언제 상처를 받았는지, 어떤 미래를 꿈꾸는지 등등을 알아갈 수 있었다. 나는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어떤 것을 싫어하는지 천천히 알아가다 보면 내 의견이 조금 더 명확하게 변했다. 따라서 의견 표츌이 더 유연하면서도 직선적으로 변했다. 



3. 누구에게나 같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즉, 다른 사람이랑 얘기하고 있다고 행동이 변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 사람의 취향이나 국적에 맞춰서 나의 의견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경험을 통해 쌓아 올린 내 의견을 토대로 얘기할 수 있도록. 


또한 친구 간의 관계에도 솔직해서 내 의견을 정확하게 얘기할 수 있도록, 또 친구 간의 관계에서 크게 상처 받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이렇게 변화하면서 얻은 것은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의 즐거운 시간이었다. 고민이라든지 불만을 솔직하게 나누고, 또 호불호를 편하게 표현한다고 해서 친구들은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직설적인 게 우리의 대화를 생생하고 재밌게 만들고 있다. 

다르지만 함께 있어 행복한 친구들

 

나는 변하고 있지만, 친구들은 변하지 않았다. 이 사실에 느껴지는 바가 있다면, 혹 내가 친구 간의 관계에서 너무 사소한 것에 연연하지 않았나 라는 것이다. 내가 친구랑 같은 관심사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해서 좋은 친구가 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니까. 같은 의견이나 같은 취향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히려 조금의 다름이 더 재밌는 것 같다. 




진심, 그리고 함께 쌓은 추억이 친구 관계를 단단하게 한다. 서로 힘든 상황을 함께 헤쳐나가면서.. 마치 비 온 뒤에 땅이 굳는 것처럼. 


그리고 또 서로의 다름을 통해 배워나가고 좋은 쪽으로 발전해 나가는 것이 진짜 친구 아닐까?  





아직까지는 어렸을 때의 기억이 날 사로잡고 있지만, 그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길도 머지않은 것 같다. 이렇게 글을 쓰면서 내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연습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길을 잃은 아이와 같지만, 이렇게 연습하다 보면 더 늘 것 같다.

조금 더 특별한 조약돌.



나 자신에게 솔직하고, 솔직하고, 또 솔직하자. 

다양성을 존중하며, 내 나라를 멋있게 생각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부정하지 않고, 나의 의견을 당당하게 표출하는.  

나라는 존재에 확신에 찬 멋있는 어른이 되자. 


한 걸음, 또 한 걸음. 


언젠가... 

진실성과 진정성을 가지고 대화하는, 

명확한 소신을 갖고 눈을 반짝 거리는 내가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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