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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리아 Aug 22. 2019

빅토리아 바다에서 찾은 거제도의 밥상

우리 엄마의 한국 밥상 찾기 고군분투기

미리 말하자면 이건 내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엄마의 이야기다.

정확히는, 거제도 끝자락에서 태어나 남편 따라 얼떨결에 호주에 오시게 된 우리 엄마.


우리 엄마는 거제도 끝, 법동이라는 곳에서 태어나셨다. 할머니, 아버지, 그리고 위로 다섯 아래로 두 명이 있는 여섯째이자 공주이시다. 뭐 증조할머니 께서나 할아버지께서 우리 엄마를 어화둥둥했다는 건 아니고, 그냥 엄마가 예뻐서 공주란다.


이런 엄마가 살던 곳은 다락방이 있는 작은 벽돌집인데, 집 바로 앞에 바다가 있고 산달섬이라는 곳이 있다. 엄마는 이런 바다에서 조개를 따고 쑥을 캐는 게 일상이었다고 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닭장에서 계란 다섯 개를 꺼내 아버지께 대령하고, 하교하면 동생과 소를 데리고 풀밭에 나가 풀을 먹게 한 후, 그 옆에 나란히 누워 하늘을 바라보았다고 한다.


방학에 한국에 갔을 때 외삼촌 집에 놀러 갔을 때 찍은 사진.


이렇게 평화로운 생활에 장점이 하나 더 있었다면, 우리 증조할머니 (엄마의 조모 되시는 분)께서 요리를 정말 잘하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엄마는 미식가다. 한국에 갈 때마다 맛있는 음식을 찾으신다. 아귀찜, 해파리 무침, 전골, 꽁보리밥에 된장국, 그리고 콩국수. 콩국수 맛있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건 제쳐두고.


경상남도에 내려갈 때마다 우리 이모들이랑 외숙모께서도 항상 엄청 맛있는 걸 해주신다. 구운 가리비, 대게, 광어회, 해파리 무침... 얘기하자면 끝도 없다.


함안 사는 이모네에서 묵을 때 차려주신 아침 밥상. 꼬막과 해파리 무침, 순대 그리고 다양한 반찬이 있다.


그렇게 다양한 한식을 접하던 우리 엄마가 어느 날 얼떨결에 호주에 오시게 되었다. 우리가 처음 왔었던 십 년 전만 해도 아귀찜은커녕 한식집도 별로 없었다. 한식을 먹으려면 직접 요리하는 수밖에 없었다.

공주이셨던 우리 엄마는 렇게 요리를 시작하게 됐다.


한인마트에서 김이나 김치, 혹은 말린 멸치를 사려면 가격대가 상당해서 우리는 친척들께 부탁해 택배를 받아야만 했다. 이런 기본적인 반찬으로만 한국음식을 먹던 엄마는 어느 날 소매를 걷어붙이고 음식거리를 본격적으로 찾기 시작했다.


처음은 김장으로 시작했다. 근처 중국 마트에서 (호주 배추는 다르게 생기고 맛도 다르다) 배추를 구해 소금에 절이고, 양념에 버무리는 것. 엄마는 김치를 잘 만드셨다.


그리고 근처 정육점에서 소꼬리랑 소뼈를 사서 사골이랑 감자탕을 양껏 만들어 먹었다. 이 얘기를 하면서 항상 웃으시는 게, 호주에서는 소꼬리랑 소뼈의 수요가 거의 없어서 소뼈는 버리거나 공짜로 주고, 소꼬리는 한 이천 원에서 오천 원이면 진짜 한 아름 받아오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비싸서 못 먹는 걸 말이다.

세인트 킬다 바다를 카페 앞 그네에서 감상하는 중.


미역국은 원래 말린 미역을 불려서 먹었는데, 엄마는 한 발 앞서서 미역을 직접 캐셨다.

St. Kilda beach에 정말 예쁜 바다가 있어서 그 옆 산책로를 가곤 했는데, 지나갈 때마다 널려있는 미역을 보면서 이거 다 먹을 건데... 생각하시더니, 결국 Fishing license를 사서 미역을 따셨다. 옆에서 거던 동생과 나, 그리고 서울 토박이 아빠는 정말 신기해했다. 역시 어부의 딸! 이러면서. 엄마가 따오신 채취물을 우리에게 설명해주시는데 내가 무심코 넘어간 해초에도 이렇게 다양한 종류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미역뿐만이 아니라 자연 상태의 흐물흐물한 김, 항상 딱딱한 줄만 알았던 다시마, 그리고 초록색 물감처럼 생긴 매생이. 또 이상한 연두색의 톳이라는 것도 있었다.


데쳐서 초장에 찍어먹기도 하고, 미역국을 끓여먹기도 하고, 엄청 차가운 미역국을 끓이시기도 했다. 톳을 무쳐서 한인교회에 가져가시려고 해서 내가 극구 말렸는데 (모양이 특이해서 사람들이 싫어할 것 같았다) 의외로 어른들이 환영하셔서 깜짝 놀랐다. 이런 한국음식 너무 그리웠다면서, 여자 집사님들이 모여서 세인트 킬다까지 따라와 미역을 같이 따시기도 했다.

빅토리아의 어느 바다. 모닝턴 페닌슐라 주위에 있다.

또한, 우리는 12월 여름방학을 보낼 때 항상 들리는 바다가 있다. 바로 론 비치 (Lorne Beach)와 비너스 베이 (Venus Bay)이다. 그 이유가 뭐냐 하면 - 웃지 마시라 - 조개와 꽃게를 잡으려고 이다.


비너스 베이에서 모래놀이를 하러 손을 모래 안에 집어넣으면, 조개가 두 어정도 느껴진다.  조그마한 것들은 남겨두고, 과장 좀 보태 열 살짜리 꼬맹이 손바닥 정도 되는 조개만 건져서 주머니에 담았다. 이렇게 조개를 몇십 개 따서 가져가면 한동안은 깔끔한 된장찌개, 수제비 그리고 칼국수를 마음껏 먹을 수 있다.


론 비치에는 꽃게가 많은 데, 꽃게 망에 생닭을 매달아 바다에 내려놓으면 꽃게들이 모인다. 그럼 몇십 초 후에 건지면 게 4-5마리가 옹기종기 모여있다. 조금 욕심부려 몇십 마리를 잡아 집에 가면 그 날부턴 매운탕, 삶은 꽃게, 간장게장, 양념게장 등등 다양한 요리를 해주셨다. 그리고 이런 음식을 한인 교회에 가서 나눠먹었다. (만약 이 글을 읽고 호주에서 조개를 따시려면 꼭 $5-10불 정도를 내고 Fishing License를 사라고 권하고 싶다. 안 그러면 불법이다.)  


론 비치에서 산책하다 발견한 작은 꽃게. 이 아이는 물로 돌려보내주었다.


난 우리 엄마가 해안가 사람이어서 너무 행복하다. 우리 엄마는 거제도에서 자라나며 먹었던 음식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면서 어떻게 만들까 구상한다. 그리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결국 이 먼 땅 호주에서 한국의 밥상을 차리시는 데 성공하신다. 그리고 그것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음식에 도전하시는 게 참 멋있다.


  나는 엄마의 손맛과 열정이 담긴 한식 밥상이 정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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