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줄리아 Mar 30. 2023

초등학교 때 내가 귀가 안 들리는 척했던 이유

이민자 가정 아이들의 숨겨진 고충

내가 초등학교 때 많은 어른들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넌 일찍 이민을 와서 좋겠구나. 난 이 늦은 나이에 이민 와서 영어를 배우기에 너무 벅찬데, 넌 자연스럽게 영어를 습득하겠네."


사실 아이들은 어른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고충들이 많다.  어른들은 모르지만, 사실 그 조그마한 아이들은 매일매일을 치열하게 사투를 벌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날이 발전하는 언어 실력 뒤에는 그만큼의 눈물과 좌절이 뒷받침한다는 걸 사람들은 모른다. 어린아이였을 때 이민 온 다는 건, 자라며 그 기억들을 곧 잊어버린다는 것뿐이다.




바야흐로 내가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시절, 호주에 온 지 곧 일 년즈음이 되는 때였다. 엄마께서는 학교에서 갑작스레 전화가 와서 허둥지둥 학교에 오셨다.


내 담임선생님이셨던 Mr Simon White께서 하시는 말이, "민지가 귀가 안 들리는 것 같다. 최근 몇 주 동안 수업 도중에 이름을 불러도 반응이 없는 게, 청각에 이상이 있는 것 같다.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보셔라." 이렇게 말을 했다는 거다.


엄마랑 아빠는 너무 걱정이 되셔서 나를 둘러싸시고 질문세례를 하셨다.  "민지야 귀가 잘 안 들려? 귀가 먹먹해? 아님 아파? 괜찮아? 지금 이렇게 말하는 건 들려?"


나는 그때 덜컥 당황했다. 사실은 선생님이 이름을 부르는 걸 들어도, 그 후의 질문을 이해 못 하는 게 너무 부끄러워서 선생님이 부르는 걸 못 듣는 척하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모님이 날 영어를 잘하고 학교에 잘 적응하는 지로만 알았기 때문에, 그걸 시인하는 게 너무 무서웠다.


그래서 난 말했다. "응, 요즘 잘 안 들리는 것 같아."



그 후로 부모님께서는 한참 동안 대화를 하셨다.


아빠는 내 비염 때문에 중이염을 걱정하셨다. 혹시 비행기를 탈 때 "기압 차이 때문에 공기방울이 귀에 남아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코를 잡고 "민지야 흥! 해봐." 하며 직접 시범을 보이셨다. 귀와 코의 기압을 equalise 한다는 느낌으로.


그 와중 난 태연한 체하고 있었지만 엄청 무서웠다. 학교에서 연락이 오고, 병원을 가야 할 수도 있다고 하니까 괜히

문제가 커졌다 싶었다. 그래서 아빠가 공기방울 얘기를 할 때 옳다구나! 하고 아빠  따라서 코를 흥흥하고,  "어! 뚫린 거 같아!" 하고 연기했다. 우리 집은 내 청력을 고쳐서 정말 축제 분위기였다. 그 사이에 난 부끄러운 표정을 열심히 숨겼다.


 어렸을 때  내가 귀 안 들린 척한 것을 말하는 건 영어를 못한다는 얘기니까 부끄럽기도 하고, 인정하기에 자존심 상하고, 혼날 거 같아서 걱정되기도 하고.  그래서 마음 속에 꼭 꼭 숨겨두었다.




아이가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의 시작은 엄청난 외로움이다.  첫날, 전학생에게 관심을 가지는 아이들이 둘러싸고 수다를 떨어도, 한 마디 할 수 없다. 그러다 아이들이 하나둘씩 관심을 끊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고, 전학생은 그저 가만히 앉아있을 뿐이다. 그리규 언젠가 따돌림을 당한다고 해도, 그 존재를 알지조차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외국은 언어를 습득하기 좋은 환경이지만, 그 과정은 생각만큼 쉬운 여정이 아닐 수도 있다. 조개가 모래알을 품고 진주를 만드는 것처럼.

매거진의 이전글 호주 시드니 한복판에서 인종차별 폭행을 겪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