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에 마주한 선택. 집에서 3758km이나 떨어진 곳으로
부끄럽지만 어렸을 때 내 꿈은 세계평화였다.
그리고 의대생이 된 지금도 내 꿈은 궤를 달리하지 않는다.
난 공중보건에 관심이 많다. 특히 사람들이 터부시 하는 지방의료 (rural health)나 원주민 의료 (Indigenous health), 그리고 장애인들을 위한 의료 등등.
그런 분야를 더 배우고 힘써서 더 많은 사람이 좋은 의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이 되었으면 좋겠다(?)라는 꿈을 꾼다.
그래서 내년 다윈과 앨리스 스프링스에 각 6개월씩 의료 연수를 하려고 신청을 해 놓은 상태다.
다윈은 원주민 의료나 지방 의료, 열대의학 (Tropical Health) 등등에 관해 집중적으로 가르쳐주고, 열악한 환경에서 지내는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더 치료를 잘할 수 있는지 배울 수 있다.
앨리스 스프링스도 마찬가지다. 호주는 지역마다 날씨가 참 달라서 그 지역마다 다른 병을 배울 수 있고, 또 낙후된 환경, 특히 앨리스 스프링스의 고립된 사막이란 지형에 관해서 더 새로운 의료방식을 배울 수 있다.
에들레이드와 멜버른의 도시의학과는 결이 다른 의학. 의대를 졸업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가는 것보다, 학생으로 경험을 쌓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또 미래에 해보고 싶은 해외 의료봉사에 어떻게 뜻깊이 참여할 수 있을지, 또 더 많은 지식과 경험을 들고 갈 수 있는지 배울 수 있는 기회일 것이다.
하지만 요즘 계속 다른 생각이 든다. 새로운 에들레이드에 이제 곧 적응하기 시작했는데, 또 새로운 곳에 간다고? 가족 없이, 친구 없이 맨몸으로 간다는 게 참 무섭다. 특히 의대 공부를 계속해나가야 하는 시점에 이사를 하고 적응기간을 거치다 보면 성적도 흔들리지 않을까 고민이고, 또 건기 우기 아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는 게 무섭다. 가족과는 엄청 멀리 지내야 한다는 것도.
내가 살고 있는 에들레이드 자체도 멜버른에 비해선 살짝 시골인 편이다. 도심도 좀 작고, 사람도 별로 없다. 하지만 멜버른과 비슷한 삶을 유지 가능하고 (예: 커피를 마시러 주위 카페에 간다든지, 나름 크고 쾌적한 도서관이라든지 아님 맛있는 레스토랑이 연이어 있다) 우리 가족이 있는 멜버른과 정말 가깝다. 비행기로는 40분에서 한 시간, 운전해서 8-9시간 (쉬는 시간, 먹는 시간은 빼고). 원한다면 기차로 13시간을 타도 된다.
그에 반해 다윈은 멀다. 매우 멀다. 멜버른에서부터 비행기로는 4시간 반에서 5시간 정도. 멜버른에서 운전을 하겠다면 힘들겠지만 구글맵에 따르면 39시간 40분 정도.
들은 바로는 호주 하면 생각나는 이미지 (야생, 독거미, 악어, 상어 등등)를 진짜로 경험할 수 있는 것 같다. 한국의 소도시보다도 부족한 편의시설과, 엄청나게 넓은 땅.
거기다가 생활양식도 참 다르다. 에들레이드는 한국과 비슷하게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다. 물론 한국처럼 겨울과 여름이 뚜렷하진 않지만. 하지만 다윈은 열대야라서 건기와 우기가 있다.
이 글을 적으면서 드는 생각은... 워킹 홀리데이와 유학을 가는 사람들은 정말 참 외롭겠구나. 언어도 부족하고 완전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것을 진취적으로 쟁취해나가는 나날일 테니까. 매일이 전쟁이라는 게 그런 걸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아퍼도 아프다고 하지 못하고, 힘들어도 누군가에게 토로할 수 없는 그런 슬픈 나날들. 엄마와 아빠도 처음 이민 오셨을 때 참 고생하셨겠구나 싶다. 언어 하나 모르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끝맺음:
일주일 동안 아팠다. 아픈 동안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의대를 위해 타지에 와서 자취하는 삶이라든지, 끊임없이 공부하는 삶이라든지, 이 모든 것들이 덧없다고 느껴졌다. 외로웠다.
더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어서 매일 치열하게 공부하고 관심 있는 분야에 끊임없이 도전해 왔는데, 이 과정 속에 내 행복이 있는 건가 생각도 다시금 했다. 가족과 함께 하는 게 진정한 행복 아닐까 싶기도 하고.
내 삶의 의미는 목표 성취에 있을까? 아니면 가족과 친구와 더 행복하게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사는 것에 있을까? 의사로서 열심히 일 하고, 환자들이 낫는 것을 보고 뿌듯함을 느끼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엄마랑 꺄르르 데이트를 하고, 한국에 가서 친지들을 뵈어 삼겹살을 구워먹으며 웃는 그런 나날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