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의 긍정에 대하여], 96일 차
걱정으로 꽉찬 내 머릿 속이 불쌍할 때가 있다. 사실 결국은 일어나지도 않을 일들을 되려 걱정하는 것이 태반이다. 괜한 걱정을 한다는 말이다.
인생 2회차라면 좀 낫겠다. 이렇게 살아봤자 똑같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알고 나서라면 꽉 채운 괜한 일들을 좀 덜어낼 수 있지 않을까 말이다. 불확실성에서 멀어지는 일이 좀처럼 쉽지 않다.
어제 나는 꽤나 큰 시험을 치뤘다. 객관적인 시선으로는 꽤 큰 일이었다. 나에게는 도전과 같은 일이었기에, (전공과 관련한 일도 아니었고, 공부를 그리 오랫동안 해오지도 않았고, 최근 일이 바빠져 몰두하기 쉽지 않았기에) 잡은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며 신경을 꽤나 곤두세우고 일상을 보냈던 듯하다. 혹시라도 결과가 좋지 않다면, 그것이야 그저 내가 부족한 공부량을 소화해냈기 때문이겠지만, 그래도 마음은 곱지 못하리라, 괜한 걱정이 합리화될 일이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나는 잘 해냈다. 가채점을 해보니 꽤나 높은 점수로 합격을 거머쥘 수 있겠다. 이번에도 내가 해댔던 걱정들이 괜한 걱정으로 읽히게 된 것이다. 으이구 엄살은.
괜한 걱정이 어쩌면 좋은 소재일 수 있겠다. 내가 열심히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는 데에 좋은 소재가 될 수 있겠다. 괜한 걱정이래도 걱정의 모양은 결국 내가 잘 해내고 싶은 마음에서 만들어지기에, 그 마음이 있다면 괜한 걱정이 내 삶을 역동적으로 만드는 하나의 좋은 소재가 될 수 있겠다.
96일 차의 어제는 마구 걱정한 일에 대해 좋은 결론이 났고, 96일 차의 오늘은 그런 결론이 결국 괜한 걱정에서 온다는 것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