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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호 Apr 05. 2021

내 출근길을 불편하게 하는 그 이를 궁금해 하는 일

[아침 8시 39분], 1장

<1>


  오늘도 그 요란한 소리에 눈을 떴다. 매일 듣는 알람 소리가 지겨워서 어제는 다른 느낌으로 다시 맞췄는데, 정작 그 알람을 켜 두지 않고 그냥 잔 것이다. 그래도 아침잠이 많아 게으른 나로서는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이것이라도 없었으면, 눈을 뜨지도 못했을 것이니 다행이었다. 깊은 잠을 흔들어 놓을 무언가가 있었다는 건 월급 받는 직장인의 아침으로서 철저한 준비를 해내지 않았다면, 흡사 '행운'에 가깝다.

  출근 시간이 겨우 30분밖에 되지 않는다는 건, 가족들이 모두 씻고 마지막에 출근 준비를 해도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머니가 씻고 발 끝 마지막 물방울을 털어버리는 그 순간까지 나는 그저 침대에 머물러 오늘 무슨 옷을 입을지 고민하면 된다. 그리고 오늘은 남들이 봐도 치마라고 느낄 만큼 펑퍼짐한 블랙 와이드 팬츠를 입기로 마음먹었다. 그에 맞는 상의, 그에 맞는 머리 스타일링, 그에 맞는 신발, 아 특히, 양말 컬러가 가장 중요하다. 우스워보이기 딱 좋은 것이 바지와 신발 사이의 그 작은 틈의 색상이 오늘의 옷과 어색하기 짝이 없을 때다.


  "이따 약속 없지? 저녁 맛있는 거 먹자. 이따 봐."


  어머니의 외출 소리 그리고 그 후 꼭 일어나는 일은, 내가 입으려는 그 옷이 꼭 빨래통에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늘 내 맘 같지 않은 출근 준비다. 나는 또다시 무슨 옷을 입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세수를 하면서도 면도를 하면서도 양치를 하면서도, 와이드 팬츠의 부재로 인한 계획의 차질이 또다시 머릿속으로 빠르게 다른 옷을 훑어야 하는 불편함을 초래한다. 그런데도 다행인 건, 별 기분이 나쁘지 않다는 것, 왠지 이것은 이러한 일이 수도 없이 많이 있어 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익숙하니까.

 

  바람이 차다. 대략 8분쯤을 열심히 걸어야 지하철역에 몸을 욱여넣을 수 있다. 매일 같이 타는 '8시 39분' 차를 타려면 30분 정도에는 집에서 나와야지 여유롭게 걸어갈 수 있다. 늦장을 부린 탓에 오늘은 그보다 조금 늦은 시간에 집을 나왔다. 찬 바람이 얼굴을 때리는 데도 나는 더 빠른 걸음으로 주어진 길을 나아가야 한다. 성큼성큼 하는 일에 귓불이 시린 느낌이 들면서도 눈동자가 건조해져 눈을 더욱 많이 깜빡인다.

  1분 전에 도착해 안전히 39분 차를 탈 수 있겠다며 플랫폼에 섰다.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진다는 생각은 오늘도 이 머저리 같은 성격이 유난을 떠는 모양이다. 괜히 오늘 입은 옷을 다시 한번 훑게 되고, 오늘 빠른 걸음으로 이곳에 도착하느라 만져 놓았던 머리가 마구 흐트러지지는 않았는지, 어두운 스크린도어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을 다시금 보게 된다. 그러다 누군가가 나를 힐끔 쳐다보는 느낌이 들 때쯤, 저 옆 칸즈음에 타기 위해 같은 전철을 기다리는 단발머리에 작은 얼굴과는 어울리지 않는 큰 안경을 쓴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뭐지?'


  방금 느낀 눈길의 마주침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마주침이 아니었다. 나는 당신을 모르는데 당신은 나를 알고 있는가. 누구지. 누구일까. 나를 알고 있는 사람일까. 이 직감이 진실이고, 또한 허상이 아니고, 또한 과거의 교류의 흔적일까.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했지만 괜한 느낌이라고 단정했던 30초 전의 나는, 정말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었던 그 시선을 느끼고 있었구나. 한편으로는 흐트러진 머리를 만진 일도, 옷매무새를 다시 만진 일도, 결과적으로는 잘했던 일이겠구나 하는 안도감도 잠시 지나간다. 아직도 나를 보고 있을까.


  '습, 흣, 흠, 힐끔'


  나도 그녀를 보고 있다는 느낌은 주고 싶지 않다. 그저 나를 아직도 보고 있는지 궁금하다. 아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아는 척을 하고 싶지 않다. 그저 내가 아는 사람인지 언제 알게 된 사람인지 궁금하다. 그래서 힐끔 봤다. 그리고 내 기억 속에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신경 썼네, 라는 찰나에 전철이 들어온다. 평소처럼 나는 이 전철이 들어오면 4개의 정거장이 지난 다음 함께 내리는 수많은 사람들에 밀려 이 칸에서 휩쓸려 나오면 된다. 이 익숙한 출근길이 너무 좋다.


  "안녕하세요."


  더도 덜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아침 출근 인사는 딱 이 정도가 마음 편하다. 늘 해오던 만큼 '안.녕.하.세.요.', 5글자에 담긴 많은 이야기들을 더이상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딱 이 정도의 인사가 좋다. 선배든, 후배든, 동기들이든, 굳이 더 나눌 일도 서운할 일도 만들고 싶지 않다.

  일터는 일하는 곳을 의미한다. 그러니 딱 할 일을 하고, 할 도리를 해내고, 할 책임을 지면 그만이다. 그게 나에게는 이곳, 일터에서 지켜야 하는 '선' 같은 것이다. 이 선을 지키는 대가로 월급을 받는다. 다음 주면 벌써 월급날이 돌아온다. '안녕하세요'라는 말로 지켜온 많은 선들, 그리고 이제는 익숙한 선들, 그리고 더 이상 그 선에 불만을 가지지 않는 직장 동료들,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아무 불만 없이 집과 일터를 오가는 내 팔과 다리의 역할, 그리고 감정의 고요함. 이것이 내가 추구하는 현재다.

  그런 측면에서 내 일은 나와 찹쌀떡 같은 사이다. 무기계약직의 사무직이라니. 그저 적은 책임감으로 욕심 없이 이미 익숙한 일에 꿋꿋이 내 할 일만 해내면 되는 그런 일이다. 아침에 메일을 확인하고, 회의에 들어가 내 일을 확인받고, 그 일을 평소 하는 만큼의 능력을 발휘해 실수 없이 마무리한다. 그리고 칼퇴. 아마 내가 결혼이라는 것을 하게 된다면, 일등 신랑감으로 내 아내와 내 아이들에게 많은 시간을 쓸 수 있겠지. 사무직 좋다는 게 이런 것일 테지.


  보통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게 된다면, 휴대폰을 하거나, 그렇지 않는다면 아무 생각이나 스쳐 지나갈 것이다. 나 또한 그런 편이다. 휴대폰이 없으니 불안하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도 아침에 그 여자가 스쳐 지나간다. 아니 지나가지 않고 맴돌았다.


  '대체 당신 뭐야'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사람이, 그렇지만 내 기억 속에는 없는 단발머리에 그 큼지막한 안경을 쓴 그 사람이, 대체 화장실 볼 일을 해내는 이 순간에도 그 사람이 왜 내 머릿속을 맴도는 일인지 알 수가 없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아 편안했던 그 출근길에 상당한 불편함을 가지게 했던 그 여자가, 결국은 회사까지 쫓아와 이렇게 스윽스윽 나타날 일인가. 대체 당신 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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