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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호 May 08. 2021

챙기지 못한 것을 두고 꼭 챙긴 것에 집중하는 일

[내가 사는 세상을 말해보자면] 11장

내 주변에는 이것저것 잘 해내는 사람들이 많다. 자신이 하는 일 외에도 하고 싶은 일이 투성이라, 이것저것 하다 보니 그냥 모든 일들에 특별하지는 않더라도 어느 하나 못하지도 않는, 여러 분야에 중간 이상으로 잘 해내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

대부분의 것들을 잘 해낸다는 것은 좋은 말로 들린다. 예를 들면 공부도, 아르바이트도, 대인관계도 그저 원만하게 해내어 가끔씩 조그마한 트러블이나 시련이 오는 것을 빼고는 그저 평탄하게 흘러간다는 말이다. 사실 이런 이들의 문제는, 결국 그 '잘 해내는 것들'을 그저 별 큰 문제없이 쥐고선 '멍하니 있기 쉽다'는 점, 그리고 그 쥔 것들 중에 '놓아버릴 것이 무엇일지 결정하는 일이 너무나도 힘들다'는 점이다.


내가 그랬었다. 한 5년 전쯤이었나. 학부 4학년이 된 시점에서 나는 그저 내가 해오고 있었던 것들 중에 어떤 것이 나와 가장 잘 어울릴지를 쉽사리 결정하지 못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예를 들어, 내 기준에서는 특별히 잘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못하지도 않았던 A라는 것이 있었다. 나와는 달리 A에 시련을 겪고 있는 내 주변의 타인들을 보아하니, 위로해주기 딱 좋은 위치에 있었고, 이에 나는 시련을 겪지 않는 A에 대한 나의 무난한 경험을 전달하기 딱 좋은 사람이었고, 그리고 그런 나 자신을 보니 '나는 그래도 A를 잘 해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말이다. 이런 A라는 것이 종류나 유형과 상관없이 나에게는 너무 많이 산재했었고, 특별함 없이 둥둥 떠 다니는 평범한 것들에 "모-두" 호기심을 가지면서도, "모-두" 관심을 가지면서도, "모-두" 그럭저럭 해내고 있는, "두루두루 인간"이었다는 말이다.


당시 내가 가장 두려웠던 질문은 이런 느낌의 질문이었다.

“그래서 전공 취업 준비는 잘하고 있어?”

“무슨 일을 하고 싶어?”

" 어떤 사람이야?"

“뭘 좋아해?”


그때의 나는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좋아했는가. 특별한 애정도, 그렇다고 특별한 비범함도 없던 시절이었으니, '두루두루 인간'이었던 나에게는 '선택'이라는 말이 가장 어렵고도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다. 그러다 결국, 나는 나 자신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고 - 부족함 없이 잘 살고 있다고 믿었던 나였기에 살피지 '않'았다는 편이 더 나으려나 - 내가 준거집단이라고 느꼈던 그들, 그들의 시선만을 살피고 집중하다 제 옷에 맞지도 않는 옷을 입고 첫 커리어를 시작했다.


20대 중반에서 후반으로 넘어가는 그 시절, 그저 정장 한 벌 입고 멋진 커리어를 시작한다면 뭐 좀 괜찮지 않은가 싶어서, 그저 사진이 박힌 사원증 하나로 설레발치며 SNS에 떳떳이 내보이는 일이 좀 멋있지 않은가 싶어서, 그저 술자리에서 내 명함 하나 내밀며 그 명함에 눈을 고정하는 지인 하나의 시선이면 내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그저 어디 가서 내가 다니는 회사의 이름이 마치 내 이름이 된 것 마냥 뿌듯하지 않은가 싶어서, 그저 내가 고작 그런 걸로도 충분한 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아 그러다 알았지. 이건 아니구나."


그저 몇 가지만을 잘 해내는 사람이 오히려 부러웠던 날들이 있었다. 그들은 그 '몇 가지'라는 가짓수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원동력이 있었다. ‘다른 것들은 아니어도 적어도 이것들은 내가 잘 해내는 것들이라는 마음’에서 오는 원동력 같은 것이 있을 것이다. - 나는 그저 어떤 것들, 어떤 몇 가지를 챙기고, 그 밖의 나머지의 것들을 놓아버려야 할지 결론짓는 일이 굉장히 힘들었는데 말이지.

시간이 어언 흘렀다. 이 흐른 시간 속에서 나는 어쩌다 모든 것을 챙기는 일을 챙기지 않게 되었는가. 내가 지금 이 글을 써 내려가는 동안 무엇을 챙기지 않고 있다면, 왜 그 무엇을 챙기지 않고 있는가. 다른 표현으로 하자면, 나는 왜 지금 그것들을 포기했는가 혹은 뒤로 미루고자 하는가.


무언가를 계속하겠노라 마음먹는 일, 다시 말해 지속적으로 챙기겠다는 마음은, 분명 2가지 때문일 것이다. 하나는 시작, 둘은 성공이다. 더 상세히 말하자면, 저 '하나'는 '시작'이라는 행동을 해내는 것, 그리고 저 '둘'은 각자가 생각하는 작은 성과이자 감정에서 오는 '성공'의 반복이다. 둘 중에서도 중요한 것을 찾자면, 시작보다는 성공에 초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내가 계속하겠노라는 원동력은 아마도 성과와 감정에서 오는 성공일 것이다.


다음의 '이런 것들'은 챙겨 놓고도 '지속적으로는 챙기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흥미롭고 관심 있지만 막상 시작할 자신은 없는 것

- 시작하겠다는 마음만 가지고서 시작하지 않는 것

- 시작은 해놓고 계속하지 않는 것

- 시작도 했고, 계속도 하지만, 그에 대한 원동력이 부족한 것

- 시작이고 계속이고 나발이고 생각 없이 사는 것

- 등등


많은 것들을 놓쳤다 한들, 적지만 건진 일은 꼭 있을 것이다. 내가 그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하는 일, 나와 같은 결을 가진 이들을 편안히 곁에 두는 일, 그리고 당신을 셀 수 없이 사랑하고 있는 일. 모든 것들을 챙기지 못했지만 강렬한 손가락 몇 개를 꼭 꼽은 채로, 그저 이번 해는 잘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1분기의 끝, 2분기의 시작이다. #글스타그램 #회고의밤 #lookback (20210403, 내가 쓴 글)


그렇기에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당신이 챙기고 있는 많은 것들에 관해 시작과 성공을 말할 수 있는가. 그저 시작만 해두고 작은 성공들을 이루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가. 무엇을 놓아버릴지를 결정하는 데 있어 그저 '시작'에만 뚜렷한 초점을 두고 '성공'에 흐릿한 초점을 두지는 않았는가. 별다른 성과도 없으면서 꾸역꾸역 욕심부리면서 챙겨야 할 이유만 잔뜩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 돈 잘 번다는 내 친구의 친구 이야기를 들으며 괜히 그 이야기를 쫓고 있지는 않은가. 그저 내 밥그릇도 아님에도 '시작'을 논하고 그 시작을 '작은 시작'이라며 합리화하고 포장하고 있지는 않은가. 누군가의 작은 인정과 누군가의 작은 말들과 누군가의 작은 동행을 원동력으로 삼지 않고, - 심지어 자신만이 느낄 수 있는 작은 성공들을 무시한 채 - 시작만을 외치고 있지는 않은가. 마치 주식을 사두고, 마치 비트코인을 사두고, 아무런 감정과 성과 없이 보이지 않는 실행력을 외치고 있지는 않는가.


그럴 바에는 난, 지금 와서야 챙기지 못한 것들을 가만히 내버려 둔 채로, 지금 챙겨둔 것들에 집중을 하겠다.

그럴 바에는 난, 지금의 내 손에 꼽힌 열 손가락의 것들을 하나하나 곱씹으며 놓치지 않겠다.

그럴 바에는 난, 지금 챙겨놓은 것들을 왜 챙기고 있는지 고민해 더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놓겠다.

그렇게, 나는 챙기지 못한 것을 두고 꼭 챙긴 것에 집중하는 일을 서슴지 않고 해내겠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사는 세상을 말해보자면] 11장 끝.


이민호 드림

Instagram @min_how_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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