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세상을 말해보자면], 10장
우리는 퇴근을 원한다. 매일 매시간 퇴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나의 경우는, 오늘 퇴근한 후에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것이 내일의 퇴근일 것이다. 하지도 않은 출근에 퇴근을 바라는 일을 왜 이렇게 반복하는 것인가. 다양한 업무 환경에서 일해본 내 경험상으로 말하자면, '그냥 내 일이 아니라 남 일 같은 일에 에너지를 소비하는 나 자신을 1초라도 빨리 꺼내 주고 싶다는 본능적인 욕구'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오늘 한없이 귀여운 여자 친구를 만나는 것도 아니고, 상상만 해도 침이 고이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가는 것도 아니지만, 그저 집에 가면 아무것도 딱히 특별한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퇴근은 하고 싶다는 말이다. 내가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할 시간이야 비어있더라도 어떻게는 채워보겠지만, 글쎄 그런 시간도 아닌데 이곳을 버틸 이유는 '금전'이라는 하찮으면서도 필수 가결한 2글자 때문이 아닐까 한다.
직업관. 나에게 재작년쯤까지 굉장히 중요한 요소였다. 과거형으로 문장을 기술하는 이유는 그것이 지금의 나에게 그리 중요한 부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루 24시간 가운데 무려 8시간, 점심시간에 야근까지 포함하면 10시간 내외쯤을 내가 가진 직업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꽤나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이러한 흐름에서 나는 일을 해나가는 것이 나에게 고문이 되지 않기를 바랐었다. 그래도 꽤나 성취감은 있어야지, 꽤나 재미는 있어야지, 꽤나 인정은 받을 정도로 잘 해내야지, 그래야 괴롭지 않게 오래 일하겠지 하는 마음이, '그렇다면 어떤 직업을 선택해야 나에게 바람직할까'라는 내용의 직업관으로 이어진 듯하다.
그 일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해서는 직업관과 연결된다. 일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주관. 나는 그 일이 좋은가. 나는 그 일을 잘하는가. 정말 잘하는가. 남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가. 돈은 많이 주는가. 지속 가능한 일인가. 어머니의 꿈인가 나의 꿈인가. 한 친구는(나름 3년 차가 된 나에게 소중한) 이 일을 할지 말지 고민하는 이유가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국내 굴기의 기업에서 나름 필요한 프리랜서로 인정받으며 일하면서도 계속할지 말 지를 고민하는 이유가 '잘할 수 있을지'라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주변의 눈길도 봤다. 상대평가에 익숙한 밀레니얼 세대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무언갈 경험하는 일 자체가 그들에게는 리스크다. 잘하는지 못 하는지 확신이 서야 그제야 선택을 하겠다는 마음을 품으면서도, 그런 일이 확신이 서려면 그 일을 해보는 리스크를 감당해야 할 수밖에 없다는 부담감을 저울질하면서. - 일과의 관계와 의미를 찾는 사람들 #job #work_ethic (20191102, 내가 쓴 글)
나만의 고민은 아닌 듯했다. 직업을 가지기 전, 또는 직업을 가지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흔히 지긋이 오랜 시간 끝에 이 직업을 계속하겠노라 마음먹은 진짜 으른(어른의 짙은 표현)들이 말하는, 햇병아리들은 이런 고민을 늘 옆에 달고 사는 것 같다.
'아 이게 정말 맞는 것일까'
하지만 서른이 된 나에게 이런 고민들이 무의미해진 듯하다. 직업관. 그것은 품고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다 보니 품게 되는 것이었다. 주어진 자리에서 주어진 책임감만큼을 3년 5년 10년 해나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품게 되는 그런 것들이었다. 맞고 틀림의 문제가 아닌, 익숙함과 덜 익숙함의 문제였던 것이다.
"직업관, 그것이 어떻든 퇴근은 하고 싶어."
"내가 꿈꾸는 직업에는 매일 같은 출근과 서러운 야근이 포함되지 않았어."
어차피 우리는 삶의 많은 것들을 놓아버리지 않는 한, 비자발적인 압력이 가해지지 않는 한, 상해나 질병이 문득 찾아와 병환을 겪지 않는 한, 그저 아침 일찍 출근해 저녁까지 묶여있는 그 시간을 기분 좋게 쓸 수도, 그저 버릴 수도 없다. 돈 때문이겠지. 어떤 날은 좋을 수도 있겠지만, 늘 그렇지는 못하겠다. 성과를 내야 하는 시간에, 나를 위한 성과도 아닌, 그저 남을 위한 성과를 급급하며 그저 그 시간을 보내는 일을, 그만둘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니 우리는 '이렇게나 특별함이 없는 09시부터 18시까지의 시간을 어떻게 특별하게 만들까'에 대한 고민이 아니라, '하고 싶은 퇴근을 어떻게 더 기대하게 만들 수 있을까'에 더 많은 고민을 하는 것이 낫겠다. 마치 6시에 퇴근을 한 뒤 친구를 만나 조개구이에 소주를 한 잔 하기로 한 그날의 오후 시간처럼 말이다.
- 그토록 하고 싶은 퇴근을 '기다리는' 일에서 '기다려지는' 일로 바꾸는 일이다.
- 오늘 야식은 무엇을 먹을지, 오늘 그대는 얼마나 예쁠지, 오늘 어떤 활동을 하며 즐길지 기대하는 일이다.
- 그런 생각을 하며, 그 기대감으로, 남은 오후를 버티는 일. 그게 내가 지향하는 바이다.
"어차피 특별한 일이 없어도 퇴근은 늘 하고 싶을 텐데, 퇴근 자체를 그 이전이든 이후든 특별하게 만들면 더 행복하지 않을까 하는데"
"그게 어려우니까 그렇지 인마"
"그러게. 그래도 이 편이 낫잖아"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사는 세상을 말해보자면] 10장 끝.
이민호 드림
Instagram @min_how_ri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