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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돈을 내는 순간 매우 성실해지는 인간이다. 주 3회만큼은 꼭 지켜가며 태권도장에 갔다. 예약할 필요도 없고 요일이나 시간을 별도로 지정하지 않아도 되니 갑작스러운 야근에도 대처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성실하게 도장에 출석도장을 찍었지만 태권도 실력은 그대로였다. 관장님은 내게 매일같이 다른 근력운동 루틴을 짜주셨고 그 루틴을 다 하고 나면 귀신같이 한 시간이 지나있었다. PT보다 훨씬 싼 가격이었으니 이래저래 나쁠 건 없었지만 태권도 없는 태권도수업에 슬슬 질려가고 있었다.
한 달이 거의 다 되어갈 무렵, 결국 나는 참고 있던 말을 꺼냈다.
“관장님 저는 근력운동이 아니라 태권도를 배우고 싶습니다!”
관장님의 기세에 눌리지 않기 위해서였는지 회사에서도 쓰지 않는 다나까 말투가 절로 튀어나왔다. 내 갑작스러운 돌격에 관장님은 잠시 멈칫하시더니 난처하다는 듯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잠깐의 침묵이 지나가는 동안 침조차 삼킬 수 없었다.
관장님은 나한테 팔을 잠시 들어보라고 했다. 반팔을 입고 있었기에 팔이 있는 그대로 보였다. 운동이라곤 안 해 본 것이 분명한 앙상한 팔이었다. 관장님은 조심스럽게 내 손목을 잡고는 여전히 미간을 찌푸린 채 말했다.
“지하 씨 팔로는 그 어떤 것도 공격할 수 없습니다. 의미가 없어요.”
백발의 무림고수가 갓 입성한 신입을 대하는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살면서 종이짝 같다는 소리를 자주 듣기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진중한 반응은 처음이었다. 타격이 엄청났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조차 모르겠더라.
결국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남은 근력운동을 마저 끝냈다.
*
주말 내내 주변사람들 앞에서 관장님 성대모사를 하고 다녔다.
“이 팔로는.... 그 어떤 것도 공격할 수 없습니다.”
끼리끼리 모인다고 했던가. 내 주변사람들은 대부분 운동과는 담을 쌓고 살아온 것이 분명한 팔의 소유자들이었다. 다들 이 무림고수 같은 관장님의 명대사를 전해 듣고는 감탄해 마지않았다.
관장님의 명대사를 단순히 개그로만 소비했던 것은 아니다. 저 한 마디로 인해 관장님에 대한 신뢰도는 수직 상승했고, 나는 앞으로 군말 없이 근력운동을 지속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다음 달에도, 그다음 달에도 학원비를 결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