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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걍귤 Aug 06. 2021

그놈의 빨대가 뭐길래

유리 빨대 리뷰


아침 출근길인데도 정수리에 꽂히는 햇빛이 따갑다. 길거리에 플라스틱 컵과 빨대들이 무지막지하게 나뒹구는 계절이라는 뜻! 심지어 하루에 두세 번을 가기도 하지만 매번 일회용 잔과 함께인 모습들이 흔하게 보인다. 이유는 안 물어봐도 뻔하다. 귀찮아서지 뭐.


나는 웬만하면 쓰레기를 만들지 않으려고 하는 동시에 꽤 게으르다. ‘게으른 제로 웨이스터’라니 마치 공부 못하는 서울대생처럼 앞뒤가 안 맞는 말이다.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다는 건 무언가를 들고 다니다가 쓰고 씻고 말리고 또 들고 다닌다는 말이니까. 이미 편의성의 달콤한 맛을 알아버렸지만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은 제로 웨이스터에게 ‘빨대’란 무엇일까?






당장 마시고 싶은 걸 참고 가져와 수저로 퍼먹은 음료


일행들이 놀랄 정도로 빠르게 음료를 흡입하는 나는 성질 급한 얼죽아다. 10분 안에 얼음만 남기기 때문에 딱히 빨대를 쓸 일이 없다. 하지만 작년 무렵,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아버렸다. 왜 지금까지 아무도 나에게 아이스 바닐라 라떼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료라는 걸 알려주지 않았을까? 한 가지 안타까운 건 가라앉은 파우더를 휘휘 저어 마셔야 한다는 거다. 그래서 가끔은 찌질하게 옆사람에게 양해를 구하고 빨대를 빌려 한 번 휘젓고 돌려주는 짓거리를 하거나, 텀블러를 대충 동서남북으로 흔들어 먹곤 했다. 일회용 빨대를 써서 쓰레기를 만들긴 싫고, 실리콘이나 유리 빨대를 전용 솔로 슥삭슥삭 닦는 것도 귀찮아서 아예 안 쓰는 쪽을 선택해버린 것이었다.


게다가 지금 쓰는 텀블러는 약 4년 된 콜드컵으로, 빨대를 무는 버릇이 있는 건지 전용 빨대에 잇자국이 잔뜩 나서 쓰지 않은지 오래다. 그래서 회사에서 물을 마실 때마다 뚜껑을 열고 닫아야 했다. 그렇다. 빨대 없는 삶이 약간은 불편했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 불편함을 온몸으로 인내하며 게으르게 살던 내가 갑작스럽게 유리 빨대를 쓰게 되었다.



나의 빨대들 (낙엽 같이 생긴 건 마 수세미다)


유리 빨대는 최근에 제로 웨이스트 동료가 된 선배님에게 선물 받았다. 일회용품을 쓰고 싶지 않아 하는 나에게 써보니 괜찮아서 추천한다며 깜짝 선물로 세척솔이 포함된 유리 빨대 3종 세트를 주셨다. 솔직하게 말해서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게 된 후로는 쓸모없는 것을 받게 되면 곤란한데, 세심한 선물이라 기뻤다. 끝이 살짝 구부러진 모양의 빨대는 일하면서 무의식의 흐름대로 물 마실 때 좋을 거 같아 콜드컵에, 나머지 2개는 집에서 사용하기로 했다. 가장 두꺼운 빨대는 투썸 로얄 밀크티 쉐이크를 먹을 때 쓸 거다. (아이스크림이 올라간 꾸덕한 음료로 당 떨어질 때 한 번씩 생각남)


전에는 ‘텀블러도 씻기 귀찮은데 빨대 구멍을 솔로 문질러? 안 써!’ 했지만 막상 사용해보니 세척이 생각보다 불편하지 않다. 그저 텀블러 씻을 때 아무 생각 없이 20초 정도만 더 쓰면 된다. 20초의 행복, 생각보다 크다. 맛과 촉감에 민감하다면 유리 빨대가, 들고 다닐 거라면 실리콘 빨대가 좋을 것 같다. 스테인리스 빨대는 사용 중에 넘어지기라도 하면 매우 위험하다고 해서 비추천이다. 관리 못하면 왠지 쇠맛도 날 거 같다. 나처럼 들고 다니지 않고 어디에 두고 사용한다면 유리 빨대를 강력 추천한다.


그놈의 플라스틱 쪼가리, 빨대가 뭐라고. 살아보니까 빨대 없는 삶은 좀 불편하다. 하지만 이제 재활용도 안 되는 얇고 길쭉한 쓰레기를 만들지 않고도 평생 동안 마음 놓고 쓸 수 있는 빨대가 생겼다. (물론 떨어트리지만 않는다면) 그리고 주말 오후에 그 빨대가 얼음을 저을 때 내는 소리가 얼마나 좋은 지도 알게 됐다. 우리 사이가 오래오래 깨지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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