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LPG자동차②-치킨으로 보는 한국 LPG자동차의 과거
90년대 한국 자동차 업계에는 거대한 세 가지의 변화가 있었다.
첫 번째 변화는 1995년 정부는 환경오염 등의 이유로 소형 경유차랑의 판매를 금지시키면서 일어난다.
경유의 오염물질 배출에 대한 문제점이 사회문제로 지적되면서
완성차 회사들은 디젤에서 LPG로 변화하는 움직임을 보이게 된다.
과거 대우의 '로얄 디젤'이나 기아의 '콩코드 디젤'처럼
종종 보이던 경유 승용차가 사라진 시기가 바로 이 시점이다.
두 번째 변화는 1997년 자동차 관리법이 바뀌면서, 자가용 승용차에 LPG를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때마침 당시 높은 휘발유 가격에 비해 30%밖에 되지 않는 저렴한 LPG는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순식간에 LPG 차량의 시장점유율이 폭발적으로 올라가게 된다.
세 번째 변화는 자동차 스타일의 변화에 있었다.
과거 자동차를 그저 이동수단이나 과시 수단으로 생각하던 7080년대와 달리
기아 봉고를 시작으로 점점 자동차를 이용하여 여가를 즐기는 '레저활동'이 유행하게 되고
이러한 레저활동이 곧 중산층을 상징하는 일종의 기호가 되면서
골프나 스키, 낚시 등의 여러 장비를 편하게 싣고 이동할 수 있는 RV 차량이 인기를 끌게 된다.
이로서 디젤의 약세와 LPG의 강세, 그리고 RV의 인기로 '대 LPG시대'가 시작된다.
LPG RV시장의 선두주자는 현대정공이었다.
미쯔비시 자동차의 '샤리오'를 베이스로 만들어진 현대정공의 '싼타모'는 초창기에는 휘발유 모델로 출시되었지만, 대부분의 오너들이 싼타모를 LPG로 개조하는 것을 보고 발 빠른 대처로 같은 해 싼타모 LPG를 출시한다.
싼타모 LPG는 멋지게 소비자들의 심리를 공략해내면서 성공한다.
특히 RV가 한참 인기 있던 90년대, 때마침 터진 외환위기로 과도한 소비가 부담스러웠던 소비자들에게
휘발유보다 30% 저렴한 LPG를 사용하는 RV인 싼타모의 성공은 당연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싼타모의 승승장구를 그저 보고만 있을 경쟁사는 없었다.
1999년 기아자동차는 세피아의 플랫폼을 이용한 미니밴 '카렌스'를 출시한다.
지금이야 소형 SUV의 인기로 2018년 10월에 '단 한대'라는 처참한 성적을 내고 단종된 자동차지만,
카렌스는 한국 자동차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중요한 자동차 중 하나였다.
갤로퍼처럼 일본에서 끝물이던 샤리오를 들여와 라이센스 생산한 싼타모와는 다르게
카렌스는 순수 국산기술로 만들어진 RV였으며, 카렌스 LPG의 경우 외환위기로 휘청거리던 기아를
그야말로 멱살 잡고 먹여 살려 '제2의 봉고'라고 불러도 될 정도인 '기아의 효자'였다
2000년에는 8만 4천대가 팔리며 당시 연간 판매량 3위를 기록했는데,
당시 연간 판매량 1위인 EF소나타가 11만 대의 판매량이었으니, 카렌스의 인기은 말하면 입 아플 정도였다.
이후 마지막 주자로 GM대우의 레조가 2000년에 출시하면서, 본격적으로 LPG의 시대가 시작된다.
아니, 시작되는 줄 알았다.
기껏 오랜 시간 번데기로 있다가 깨어난 나비가 곧바로 거미줄에 걸린 꼴이 되어버렸다.
LPG와 승합차의 증가로 세수가 감소하면서, 정부가 다시 한번 규제의 칼을 빼어 든 것이었다,
첫 번째 거미줄은 자동차세법의 변화로, 7인승 RV가 더 이상 승합차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었다.
2000년대까지 승용차는 6인승 이하로 규정하던 자동차세법이 10인승 이하로 바뀌게 되면서
승합차로 인정받기 위해 트렁크 공간까지 희생하며 좌석을 넣어서 7인승이 승합차 세금을 내던
메리트가 사라지면서 RV는 조금씩 인기가 시들기 시작한다.
9인승이 주력이던 스타렉스와 카니발의 경우는 억지로라도 11인승으로 좌석을 늘리며 자동차세법이라는 거미줄은 피할 수 있었지만, 에너지 세제개편이라는 거미줄은 피할 수 없었다.
휘발유보다 연비와 성능은 부족할지라도, 가격이라는 메리트 하나로 버티던 LPG에게 유류세 인상은 그야말로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던 것이었다.
제일 큰 적은 디젤 기술력의 발전이었다.
과거 오염물질 배출과 소음이 주요 문제였던 디젤이 승용차에서도 무리 없이 사용 가능할 정도로 발전하게 되면서, 폭스바겐을 중심으로 유럽산 디젤 자동차들이 한국시장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특히 LPG의 취약점인 겨울철 시동성과 출력, 그리고 과거보다 비싸진 LPG 가격에 지친 소비자들은, 눈에 띄게 달라진 디젤 자동차에 눈을 돌리게 되면서 LPG는 다시 시장에서 외면받게 된다.
더 이상 가격만으로는 승부를 걸 수 없었던 LPG, 하지만 지금껏 한국이 쌓아온 LPG노하우를 버릴 수는 없었다.
유럽산 디젤이 전 세계를 삼킬 것 같던 2000년대,
LPG외길만 걸어온 한국은 기술발전이라는 승부수를 둔다.
한국의 LPG자동차 기술만큼 세계적으로 유명한 한식이 무엇이 있을까?
외국인이라면 누구나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빨아먹게 만든다는 한국인의 소울푸드 양념치킨.
닭을 기름에 튀기는 것이 어떻게 한식일 수 있냐고 반박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음식을 배운 사람이라면 양념치킨은 당당히 한식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이 고로케와 돈카츠를 서양요리라 하고 카레라이스를 인도요리라고 하던가?
절대 아니다, 서양에서 들어온 요리지만 수백 년 동안 그들만의 역사와 조리법으로 로컬라이징 되면서
당당히 일식이라는 카테고리를 달고 세계로 알려지고 있다.
양념치킨, 간장치킨 등등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한국식 치킨'은 끊임없는 변화의 결과물이다.
50년대 미군을 통해 들어온 조리법으로 시작된 한국의 치킨은
이후 60년대 전기구이 통닭과 70년대 기름에 통째로 튀긴 통닭을 거치면서
80년대 양념치킨의 등장으로 한국만의 맛을 가지게 되었고
이후 끊임없는 변화와 새로운 메뉴 개발을 통해 '세계 최고의 치킨을 만드는 나라'가 되었다.
닭튀김에서 만족하고 변화하지 않았다면, 한국은 그저 '미국식 치킨을 잘하는 나라'였을 것이다.
한국의 LPG자동차 기술 역시 양념치킨의 등장처럼 극적인 변화가 생기는데,
바로 LPi(Liquid Phase LPG Injection-액상분사방식)의 등장이었다
1999년부터 한국기계원구원의 주도로 개발이 시작된 LPi 엔진의 궁극적 목표는 'LPG의 한계돌파''였다.
LPG를 액체상태로 분사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LPi 엔진은, 기존 LPG엔진의 겨울철 불안정한 시동성과 출력을 극복한 가장 진화한 LPG엔진이었다.
그리고 2003년, 현대자동차의 처음으로 LPi 엔진을 장착하 그랜저 XG를 출시한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기존 LPG엔진의 단점을 완벽하게 극복해낸 LPi 엔진은 엄청난 호평을 얻으면서
디젤에 밀려나던 LPG에 다시 한번 불을 붙이게 된다.
2008년, 경차와 하이브리드 자동차에 LPG 사용이 허가된다.
디젤 승용차의 증가로 인한 대기오염 대책으로 LPG에 대한 규제가 제한적으로 풀리면서
완성차업체는 드디어 물 만난 고기처럼 LPi 엔진을 장착한 자동차들을 공격적으로 시장에 마케팅하기 시작한다.
기아자동차는 에너지 절약 정책 중 하나인 경차 보급정책에 맞춰 LPi 엔진을 장착한 '모닝 LPi'를 출시하였고
현대자동차는 도요타의 대표 하이브리드 '프리우스'를 견제하기 위한 '아반떼 LPi 하이브리드'를 출시한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LPG자동차의 가장 궁극적인 단점으로 여전히 시장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인류의 기술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배터리 기술의 한계라는 장벽에 부딪혀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주지 못하는 것처럼, LPG의 한계는 트렁크를 차지한 거대한 가스탱크였다.
LPG기술력이 LPi까지 발전했다 하더라도 가스탱크로 인한 트렁크 공간 손실은 정말 어쩔 수 없는 단점이었다.
특히 LPG의 주요 구매자인 장애인과 택시, 국가유공자의 경우 가스탱크로 인한 트렁크 공간 손실로 어쩔 수 없이 휠체어나 짐을 제대로 실을 수 없는 불편함을 감수해야만 했다.
기술진은 다시 한번 이런 LPG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하는데,
그렇게 LPG업계와 르노삼성자동차의 노력으로 예비 타이어 공간을 이용한 '도넛 탱크'가 탄생하게 된다.
그리고 2015년 르노삼성자동차의 'SM5 도넛'이 출시된다.
수많은 규제와 악재 속에서도, 한국의 LPG자동차 기술은 꾸준히 발전해 나아갔고,
드디어 LPG의 궁극적인 단점까지 해결되는 순간이었다.
2015년, 디젤 왕국 폭스바겐의 역사상 최대 사기극이 세상에 밝혀졌다.
클린디젤을 추구하며 자사의 디젤 기술을 강조하던 폭스바겐이 배기가스를 조작하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폭스바겐그룹은 몰락하기 시작했고, 폭스바겐의 몰락은 곧 디젤의 몰락을 말하는 것이었다.
디젤 천국이던 유럽을 중심으로, 전 세계적으로 디젤 자동차는 점점 감소하고 있는 추세이다.
그리고 그동안 디젤 때문에 외면받던 LPG가 새로운 친환경 연료로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50년이라는 길고 긴 세월 동안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발전해온 한국의 LPG기술은
이제 세계 최고로 인정받는 자랑스러운 기술이 되었다.
2014년, 환경부 국책사업인 '친환경자동차 기술개발사업'으로 진행된 'LPDi 엔진'이 공개되었다.
기존에 액상 LPG를 자연 흡기시키던 방식에서, 액상 LPG를 연소실로 직접 분사하는 '직분사'시스템이 적용되어
그동안 기존 LPi 엔진의 단점이던 출력을 가솔린과 비슷한 수준까지 끌어올려내어
세계 최고의 LPG엔진 기술보유국의 위상을 다시 한번 드높여 주었다.
디젤 왕국의 몰락으로, 드디어 LPG왕국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약 40년간 대한민국 LPG를 옥죄던 규제가 사라진 지 어언 1년.
LPG규제 전면 완화로 LPG 가격 인상을 걱정하며 부정적인 시선도 나오고 있지만
필자는 오히려 LPG자동차가 늘어나는 전 세계의 자동차 시장 트렌드를 맞추기 위한 과정이라 생각한다.
휘발유나 디젤에 뒤처지지 않는 성능과 환경까지 생각하는 연료로 주목받는 LPG,
더 이상 LPG자동차는 가격만 보고 타는 자동차가 아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한식이 된 한국의 치킨처럼,
세계를 향해 나비처럼 날아 직분사로 쏘는 'LPDi 엔진'의 밝은 미래를 기대해본다.
-FIN-
글쓴이-쉐프로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