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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쉐프로듀서 Jan 16. 2020

사라지는 장인들

유명해져도 폐업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최고의 맛이 사라지다

기타큐슈에 위치한 '무호마츠 라멘'

10년이 지나면 강산이 바뀐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요즘은 이 말이 무색할 정도로, 1년만 지나도 바뀌여 버리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10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하게 한자리에서 같은 맛을 고집하며 기타큐슈를 지켜온 한 라멘집이 있었다.

10년동안 변함없는 묘기를 선보이며 면의 물기를 털어내는 사장님(좌)과 하루 100그릇 한정 "무호마츠 라멘"

고쿠라 역에서 나와 택시를 타고 '무호마츠 라멘'이라는 한마디만 하면 갈 수 있는

기타큐슈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라멘집 '무호마츠 라멘'

벽에 걸려있는 수많은 상패

진한 육수의 하카타 스타일과 연한 육수의 나가하마 스타일의 중간쯤에서 외줄 타기를 하며

한 차원 높은 수준의 새로운 돈코츠 라멘을 경험시켜주는 이곳의 라멘은 왜 이곳이 오랜 시간 동안 변하지 않고 기타큐슈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는지 알게 해 준다.


2009년부터 꾸준히 '일본 최고의 라멘 50선'에 빠지지 않고 등재되었고, 2019년에는 '미슐랭 가이드 후쿠오카, 사가, 나가사키'에 등재되면서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기타큐슈 최고의 라멘집으로 인정받았던 이곳의 라멘은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무호마츠 라멘'의 폐업 안내문

사실 일본에서 자영업자의 폐업은 꽤나 흔하다.


자영업자의 무덤이라 불리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 역시 1년 안에 폐업하는 점포가 70%, 10년 안에 폐업하는 점포가 99% 일 정도다.


300개의 가게가 있으면, 10년을 넘어가는 가게가 1개도 안된다는 말이다.


치명적인 인건비로 폐점하는 한국과 정반대로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하여 폐점하는 일본이지만,

월세와 대출금 이자를 버티지 못하고 망하는 것은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데, 10년간 '일본 최고의 라멘 50선'에 등재되며 미슐랭 가이드에까지 등재된 무호마츠 라멘은 어째서 폐업을 선택한 것일까.


건강의 문제일까? 인력을 확보하지 못한 것일까?

가게의 속사정을 알 방도가 없으니 답답할 따름이지만, 확실한 것은 최근 미슐랭이라는 간판을 달고도

폐업을 할 수밖에 없는 장인들의 가게가 꽤나 많이 보인다는 점이다.


이어받을 젊은 사람이 없다.

사장님의 타계로 2016년 3월 31일 폐업한 가사오카의 미야마

요즘 일본은 실업률이 0%에 가까운 완전고용 국가가 되어가고 있다.


젊은이들이 마음만 먹으면 취업할 수 있는 기업이 많으니, 

굳이 힘들에 외식업계에 발을 들여놓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오죽하면 이민에 대해 부정적이던 일본 정부가 수십만 명의 외국인 노동자를 수용하는 이민국가가 되었겠는가. 


이러다 보니 수십, 수백 년에 걸쳐 역사와 명성을 쌓아 온 가게를 물려받을 젊은이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폐업을 결정하는 장인들이 점점 늘어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고용난 속에서도 외식업의 길을 선택한 젊은이들을 인정하지 않는 장인들이다.

도쿄 스시 아카데미

물론 예술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 장인들이 쏟은 노력을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일본의 저가 회전초밥 프랜차이즈조차 직원을 구하지 못하는 마당에, 단 몇 개월의 교육만 수료하면 되는 스시 아카데미 대신 10년이라는 긴 수습기간을 지나야 만 초밥을 만들 수 있는 박봉의 일을 누가 하겠는가.


하지만 이런 고용난보다 더욱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오히려 고용난의 경우 일본 정부의 이민정책으로 외국인 노동자가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어느 정도 해소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장인들이 지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유명세에 지쳐가는 장인들

외식업계의 양날의 검이 되어버린 유튜브

처음부터 유명한 가게는 없다.


한 자리에서 꾸준히 노력하며 단골들을 끌어모으면서,

여러 사람들의 입을 오르내리며 지역의 로컬 맛집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책과 신문, TV가 이런 정보전달의 역할을 수행했지만

인터넷의 발전으로 한때 블로그가 엄청난 유행을 가져왔었고,

최근에는 유튜브가 굉장한 위력을 보여주며 새로운 정보전달매체로서 인정받고 있다.


문제는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위력을 가진 유튜브가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오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일본음식 칼럼을 쓰면서 돌아다니다 보면, 유명해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장님들이 많다.


오랜 시간 동안 단골 장사를 하던 가게가 갑자기 유명해지고 타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오면서

정작 마을의 단골들은 자신들의 맛집을 잃게 되고

정이 넘치던 가게 역시 타지인밖에 보이지 않는 가게로 변하게 된다.


게다가 무례하기 짝이 없는 일부 유튜버들의 몰상식한 행동은 또 어떠한가,

음식을 전공한 필자도 평가는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식사를 마치고 가게를 나와서 생각하는데, 

정성으로 만든 음식을 실시간으로 카메라 앞에서 맛을 평가하는 철없는 유튜버들을 보면 참으로 딱하다.

오죽하면 NO유튜버 존이 생기고 가게에서 핸드폰이나 사진을 금지하는 식당이 점점 많아지겠는가.


유튜브와 인터넷의 발전으로, 우린 수많은 맛집의 정보를 과거보다 더욱 쉽고 빠르게 얻을 수 있게 되었지만.

아이러니하게 음식점들은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다.


박수 칠 때 떠나는 선택을 하는 장인들

2018년 3월31일 폐업한 사세보라멘의 선구자 '오사카야'

2018년 4월, 필자는 나가사키현 사세보시를 방문했다.

사세보 버거가 목적인 여행이었지만, 나가사키 짬뽕과 비슷한 스타일을 가진 

독특한 '사세보 라멘'을 먹어보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사세보 라멘의 독특한 스타일로 사랑을 받았던 가게인 '오사카야'는

방문하기 2일 전에 폐업하여 문이 굳게 닫혀있었다.


그 당시에는 그저 일종의 해프닝이라고 생각했지만, 요즘따라 급속도로 폐업하는 가게가 늘어난 느낌이다.

대학교 때부터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직접 찾아다니며 구글 지도에 표시해온 보석 같은 집들이 

하나둘씩 빨간색의 "폐업"이라는 글씨가 박히는 것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밀려드는 주문을 혼자서 소화하시는 무호마츠의 사장님

무호마츠의 사장님도 지칠 대로 지쳤을 것이다.


창업한 지 10년.

고쿠라에서 자리를 잡고 라멘을 시작했고

고쿠라 최고의 라멘으로 인정을 받게 되었지만


밀려드는 손님으로 쉴 수 없는 하루가 몇 년에 걸쳐 이어지다 보니,

최고라는 이름에 먹칠을 하지 않으려면, 어설픈 마음으로는 가게를 운영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에

"확실하지 않으면 하지 않는다"라는 마음으로 폐업을 결정한 것일지도 모른다.


미슐랭 가이드에 선정되고, 최고에 자리에 오른 지금이, 사장님은 "박수 칠 때 떠날 타이밍"이라고 생각한 것일까.

더 이상 무호마츠 라멘을 맛볼 수 없다는 현실이 슬프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고 하지만, 영영다시 만날 수 없는 맛을 알고 있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것은 없을 것이다.

차라리 먹어보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아쉽지는 않을 텐데 말이다.


싸고 푸짐한 음식을 그저 양껏 먹는 것이 전부인 먹방이 과연 장인들의 음식을 대하는 올바른 자세일까,

우리에겐 장인들의 노력과 역사의 맛을 이해하고 알리는 칼럼니스트의 자세가 필요하다.

때문에 필자는 글쟁이인 음식 칼럼니스트가 먹방 유튜버와 AI에 의해 없어질 것이라는 예상을 믿지 않는다.


우리는 과거보다 더욱 다양한 정보를 편하게 찾아볼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지만,

정작 장인들의 음식을 그저 잠깐의 SNS 자랑거리로 생각하며,

그 속에 담긴 깊은 세월의 가치를 놓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동안 고생하신 무호마츠의 사장님을 그리워하며 글을 마친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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