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문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두 녀석에 대한 이야기
자동차와 음식이라... 정말 제목만 봐도 엄청난 불협화음이 보인다.
차 안에서 먹는 음식은 먹기도 불편하고 흘리면 청소도 힘드니 차주에게는 그야말로 지옥이다.
거기에 차에 음식 냄새라도 밴다면 냄새 빠지는데 한세월이니...
두 단어는 정말이지 만나려야 만나기 힘든 두 녀석이다.
심지어 음식에 주류까지 포함되어있으니, 이젠 만나면 간통죄... 아니 도로교통법 위반이다.
하지만 이 두 녀석은 국가의 문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지표가 되기도 한다.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가 싶겠지만, 이야기를 한번 들어본다면
기름과 물에 세제를 넣은 것처럼 잘 섞여 들어가는 재미있는 스토리를 알게 될 것이다.
빅토리아 시대, 영국에겐 번영과 발전의 시대였고
식문화 역시 말 그대로 환상적인 시대였다.
이 당시 영국에는 정말 다양한 음식이 등장했다.
자타공인 유럽에서 소고기를 가장 탐하는 민족이었던 영국인들에게 식민지의 향신료는 금상첨화였는데,
인도의 혼합 향신료인 '마살라'덕분에 인도 카레, 뱅골 카레, 치킨 필라프 등등 수많은 음식이 탄생할 수 있었고
영국 상류증의 식문화는 당대 최고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자동차는 어떠했으랴.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이라는 멋진 발명품의 바통을 이어받은 조지 스티븐슨은
최초의 증기기관차를 상용화했고
존 스콧 러셀이 만든 증기 버스의 상업적 성공은 영국을 자동차 문화의 선두주자로 이끌게 된다.
빅토리아 시대의 화려한 음식처럼, 영국의 자동차산업은 멋진 출발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저 화려했던 시절은 옛날 옛적 전래동화인 것처럼
지금의 영국 음식은 세계에서 가장 맛없는 음식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으며
제대로 된 자국 소유의 자동차 기업 하나 없는 영국은
'세계 최대 자동차 수입국'이라는 참으로 슬픈 농담을 듣는 신세가 되었다.
이런 나라가 한때는 당대 최고의 음식과 자동차를 가진 국가였다니, 이게 무슨 귀신 콩 까먹는 소리일까.
이 세상에 모든 기상천외한 것은 모두 영국이 만든다더니,
영국 자동차와 식문화의 몰락은 영국인들의 기행에서 시작된다.
자동차의 경우 당시 증기기관의 등장과 함께 마부들은 자신의 밥줄이 끊어지기 시작하자
증기기관 자동차를 규제해달라는 항소를 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영국 정부도 참으로 답답한 것이, 조금 더 멀리 보고 기술의 발전을 중요시해야 하는데
빅토리아 여왕은 마부들에게 성은을 내리시겠다고 황당한 법을 만들게 된다.
적기 조례
세계 최초의 교통법이지만 듣고 보면 참으로 답답한 악법이었다.
쉽게 말하자면 증기 자동차에게 말보다 느리게 다니라는 거였다.
이러니 기술자들은 환장할 노릇이었다. 무엇보다 규제가 이렇게 걸려버리니
더 빠르고 실용적인 운송수단을 만들 필요가 없었고 영국의 자동차산업은 뒤쳐지게 된다.
이 황당한 법은 자그마치 1896년, 유럽에 웬만한 나라들은 모두 내연기관을 만들던 시절에 없어졌다.
게임의 스타트는 빨리 끊었는데, 중간에 게임을 아예 포기해버린 것.
그럼 음식은 왜 뒤처진 걸까?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수많은 노동자들은 도시로 이주하게 되었고, 이들에게 먹는 것에 맛을 따지는 것은 사치나 다름없었다.
거기에 금욕주의적이었던 당시 교육 스타일은
이후 세대의 입맛을 아예 시궁창으로 던져버렸는데,
아주 어릴 때부터 맛없는 음식으로 입맛을 길들임으로써 식탁에서의 반찬투정을 없애버린다는
그야말로 기상천외, 아니 참 영국스러운 발상으로
수많은 영국인들의 입맛은 점점 나락으로 떨어졌다.
이 황당한 교육법은 당대 베스트셀러는데 요즘으로 치면 육아방법에 대한 책에서
"애가 밥을 안 먹으면 굶기세요"라는 참으로 아동학대적인 발언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아직 기회는 있었다. 20세기라는 새로운 시대가 있으니까!
그런데 영국은 이 새로운 기회도 시원하게 날려드셨다.
20세기가 영국 자동차와 영국 음식의 새로운 시작이 될 것....이라 생각했으면 크나큰 오산이다
20세기는 영국 자동차와 영국 음식의 종말이였다, 그나마 유지하던 근본까지 깡그리 무너져버린다.
적기 조례가 끝난 이후,
영국 자동차는 굉장한 노력의 시간을 거쳤다.
2차 대전 시기에는 롤스로이스의 엔진이 영국을 구원했고, 1960년대 미니는 새로운 문화의 아이콘이었다.
나름 선방해낸 것 같지만, 이런 영국 자동차에게 장밋빛 미래는 오지 않았다.
기행의 제국 영국 아니던가, 정부는 또다시 기행을 저질러주신다.
'브리티시 레일랜드'는 지금도 영국 자동차 업계의 흑역사로 남아있다.
어려운 설명을 걷어내고 쉽게 요약하자면, 영국 내 자동차 업체들의 과도한 경쟁을 막기 위해서
영국의 모든 자동차 업체를 정부가 하나로 만들어버리고 국유화해버렸다.
한국도 제5공화국 시절 '자동차공업 통합조치'라는 흑역사가 있었다.
그래도 한국은 기업마다 생산하는 자동차를 구분 지어줌으로써
기아의 '봉고'처럼 돌파구를 찾을 수 있기라고 했지만,
브리티시 레일랜드는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만약 현대, 기아, 쉐보레, 쌍용, 르노삼성의 디자이너를 모아 두고 하나의 결과를 만들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
서로의 스타일이 다르니 당연히 분쟁이 일어날 것이고, 결과물 보기는 불가능일 것이다.
브리티시 레일랜드가 그랬다. 각 기업을 대표하던 유명 디자이너들은 분쟁에 지쳐 뿔뿔이 흩어졌고
노동자들은 서로 다른 기업이라고 편을 가르고 매번 싸워대니 노사갈등은 끊이지 않았다.
그렇게 인재 유출과 노사갈등에 박 터지게 얻어맞던 영국 자동차산업은
세계 이곳저곳 뿔뿔이 흩어지고 인수 합병되면서 끝나버리게 된다.
영국 음식의 종말은 더더욱 처참했다.
1939년 독일의 유보트 공격으로 유럽으로부터의 물자 보급의 길이 막혀버리자, 영국은 배급제도를 실시한다.
1인당 하루 구매물품이 제한되다 보니 제대로 된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은 불가능하였고
영국 음식은 다른 의미로 새로운 전설을 쓰고 있었는데...
무려 1954년, 승전국인 미국은 큼지막한 차를 타고 미국스러움을 보여주며 전후 경제 호황을 누릴 때 영국은 아직도 배급제였다.
당시 전쟁 중이었던 한반도와 비교될 정도로 빈곤한 식탁이었는데 당시 영국의 식탁을 보면 "이게 정말 승전국의 식탁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빈곤하니 영국 음식은 참으로 딱한 상황이었다.
재료가 없어서 요리를 할 수 없으니, 음식문화는 자연스럽게 하향 평준화되는 것이었다.
그래도 아직 희망은 있다.
완전히 바닥에서 시작하지만 과거의 영국의 영광을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앤슬리 해리엇, 고든 램지, 제이미 올리버 등등 영국은 최악의 요리라는 네이밍이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수많은 유명 요리사들이 존재하는 나라이다.
특히나 제이미 올리버의 영국 음식을 살리기 위한 노력을 보면 눈물이 앞을 가릴 정도다.
완전히 망가져버린 영국인들의 식단을 바꾸기 위해
제이미 올리버는 가장 먼저 산업혁명과 2차 대전을 거치며 빠르고 간단하게 섭취할 수 있는 패스트푸드와 정크푸드에 물들어버린 아이들의 입맛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치킨너겟에 대한 이야기인데. 필자도 학창 시절에 본 적이 있을 정도로
꽤나 유명한 이야기이다.
제이미 올리버는 치킨너겟에 빠져서 그의 정성스러운 닭가슴살 요리를 쳐다보지도 않는 학생들에게 일종의 '충격요법'을 시전 한다.
닭의 부산물과 찌꺼기 등을 갈아 밀가루 옷을 입히고 튀겨낸다음 "이것이 그동안 너네가 먹던 치킨너겟이다"라고 직접 보여주는 충격요법이었는데, 학생들은 정말 황당한 이유로 울음을 터트린다
그동안 자신들이 먹던 치킨너겟이 저런 쓰레기로 만든 정크푸드라는 것에 충격을 먹은 것이 아니라
너겟을 만들고 튀기는 과정이 지나치게 손이 많이 간다는 이유로 울고 있던 것이다.
이러한 이유는 영국 청교도는 특유의 금욕주의로 요리 자체의 열정을 비하하고 비웃는 문화 때문이다.
아직 영국인들에게 음식은 '소비한다'라는 개념이 강하기 때문에 마치 북미권에서 지나치게 패션에 관심을 가지는 남성들을 '동성애자'라고 비하하는 것처럼 영국에서 요리사들은 동성애자로 여기는 현상까지 있다고 한다.
오죽하면 제이미 올리버는 늘 바이크를 타면서 섹시한 마누라를 강조하며 자신이 이성애자라 어필하겠는가.
이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영국은 유명한 요리사를 수 없이 배출한 나라지만 아직까지 '조리과정'에 대해
수많은 불만을 제기하는 어이없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조리과정'의 비위생적인 모습이 아니라 '조리과정'자체에 혐오를 가지고 있으니
요리사 입장에서는 속 터질 노릇이다.
하지만 이런 요리사들의 노력이 있기 때문에, 언젠간 영국도 다시 미식의 나라라는
과거의 명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동차는 어떨까.
수많은 영국의 자랑스러운 기업들은 세계 곳곳으로 팔려나가 버렸고, 이제 영국은 애스턴 마틴이 지키고 있다.
애스턴 마틴도 한때 다른 회사에 인수되었던 시절이 있었다.
대당 수억이 넘는 애스턴 마틴에 싸구려 포드 부품이 호환되는 등 모진 수모를 겪었지만
2007년 다시 영국의 사업가에게 인수되며 당당히 영국 자동차의 상징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다시 돌아온 애스턴 마틴은 요즘 초고가 브랜드인 라곤다를 부활시키면서 화려한 재기를 노리고 있다.
자동차와 음식
정말 안 어울리는 둘이지만, 둘의 역사는 참으로 비슷하다.
이러한 역사는 영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도 전 세계 수많은 나라에서 자동차와 음식은 새로운 역사를 쓰며 사이좋게 나아가고 있다.
그런 김에 오늘은 영국 최고의 맛있는 음식이라는 맥도널드 드라이브 쓰루에서 한 끼 어떨까.
죽기 전에 이런 유머가 옛날이야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FIN-
글쓴이-쉐프로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