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어쩔수가없다”
사람을 체념시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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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뇌 혹은 자기 최면과 같은 속삭임의 반복으로 영화는 흘러간다.
(스포일러 포함)
경력 내내 제지업에 몸 바쳐온 남자주인공 만수는 어느 날 구조조정을 당한다.
사유, 어쩔 수 없음.
어쩔 수 없다는 말 뒤 구구절절한 사유가 무에 필요한가. 그 이유가 무엇이건 ‘어쩔 수 없다’는 말로 입 다물게 하는 것을. 그러니 '어쩔 수 없다'는 말은 잔인하다. 깔끔히 설명만으로도 납득할 상대라면 애초에 꺼내지 않았을 표현일 테니까.
즉,
상황을 이해하고 있으면서도 기어이 억지 부려 매달릴 정도로 어려운 사정의 사람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납득 자체를 못하는 사람
에게 꺼내는 표현이란 게다.
만수는 전자에 해당된다.
혹자는 ‘만수라는 평범한 회사원이, 고작 구조조정을 당했다해서 취직을 위한 살인을 계획한다는 설정이 과하다’고 하지만, 이 부분은 캐릭터의 설정과 이병헌의 연기력이 커버를 해주니 개연성이 충분히 부여된 부분이라 생각한다.
맞다. 고작 구조조정이다. 하지만 만수는 가족을 충만히 부양하는 스스로의 모습으로부터 행복을 느끼는 인물이다. 부양대상자들을 사랑해서이기도 하겠지만… 본질적으로는 그것이 본인의 이상적 모습이라 생각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행복이며, 공허하지만 집착하는 눈빛을 연기하는 이병헌으로 인해 만수라는 캐릭터가 스스로의 모습에 취해있음이 설명된다. 소위 돌아있는 눈이랄까.
스스로에게 취한 자들은 어딘가 뒤틀려있다. 겉으로는 타인을 위하는 듯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보이는 본인’에게 집착한다. 일반적이지 않은 사고방식으로 행동하곤 한다. 어쩌면 만수의 취미, 철사로 수형을 잡아내는 분재가 이러한 성격을 드러내는지도 모른다. 대상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기어이 본인의 뜻대로 구부려야만 만족하는 성향말이다.
생각해 보면 아이러니하다.
아내가 꼽은 단점이 바로 ‘식물을 너무 사랑한다는 것’이라 묘사되는 사람이 제지산업 종사자라니. 살해계획을 세우기 위해 방문한 집에서 벌레 먹은 배나무에 마음 아파할 만큼 식물을 꽤 아끼는 모습을 보이는 만수다. 물론 원예와 자연에 대한 사랑은 분명 결이 다르지. 하지만 제지산업은 산업의 본질상 생명을 해쳐야만 나의 이익이 얻어지는 산업이다.
극 중에서 면접을 준비하며 만수가 보는 영상에는 이런 맥락의 표현이 등장한다.
제지산업이 숲을 파괴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오해다. 제지용 나무는 별도로 심어지며, 제지산업은 그러한 목적으로 조성된 숲만을 파괴한다
하지만, 이 문장에 오류가 없을까?
목적성을 띄고 조성된 숲은 마땅히 사라져도 되는 숲인가?
제지산업이 자연을 해친다고 우려하는 사람들이 과연 ‘아무 숲이나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설명에 납득할 수 있을까?
그들은 생명이 스러지는 그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인데?
이리 보자면 만수의 극 중 행동과 제지산업은 닿아있다. 둘의 공통점은 ‘다른 생명을 희생시켜야만 본인이 이득을 얻을 수 있는 것’. 이미 종사업종으로 영화의 핵심을 이미 담아내고 있는 셈이다.
그럼 아내 ‘미리’의 직업인 치위생사는. 뭘 나타낼까.
치위생사 또한 꽤 생뚱맞다. 미디어에서 주인공의 직업으로 흔히 주어지는 직업은 아니니. 치위생사는 치통을 치료하는 치과의사의 진료를 보조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치위생사는 치아를 면밀히 살피기도 하나, 진료 자체는 의사의 역할이기에 치과 방문의 목적인 진료를 수행할 수는 없다.
충치로 인한 치통을 해결하는 데는 여러 방법이 있다. 발치, 기타 충치 치료.
누군가는 만수의 치통, 치통의 원인인 충치를 양심의 가책으로 해석한다.
이러한 해석을 바탕으로 하자면,
미리는 만수의 양심을 면밀히 살피나, 양심의 가책의 해결은 수행할 수 없다. 그러니 만수의 살인을 발견하는 것이 미리인 것은 또한 흐름상 자연스러운 일이다.
범죄행위로 인한 양심의 가책을 해결하는 데는 여러 방법이 있다. 양심이 존재하기에 아픈 것이니, 양심을 버리는 것, 기타 방법.
다른 인물들의 직업 또한 같은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잇다.
* 만수의 경쟁자 '구범모'의 아내, '이아라'
- 연극배우
- 연기해 내는 사람.
과감하게 말하자면, 거짓으로 행동하는 사람. 기어이 거짓 진술을 해낸다.
* 만수의 경쟁자, '구범보' 및 '고시조'
- 제지맨
- 다른 이를 희생시킬 수밖에 없는 존재들.
특히, 구범모가 본인은 제지산업에 오랜 시간 종사해 왔으며, 앞으로도 그리 살 것이라 하는 말은 필자에게는 꼭 '사회 내 이익의 총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내가 살기 위해 다른 생명, 즉 다른 이의 이익을 뺏아 살아왔으며, 앞으로도 그리 살 수밖에 없다'라는 사회에 대한 비판으로 들렸다.
박찬욱 감독의 인터뷰 기사를 보면 이런 대목이 있다.
마지막으로 박찬욱 감독은 “디테일에 모든 게 있다”는 것을 믿는다는 영화관을 내보였다.
그는 “모든 창조적인 대화, 실질적인 업무에서 사용하는 모든 단어는 데이터에서 출발해야 해요. 이를테면 내가 정서경 작가나 류성희 미술감독과 앉아서 영화에 대해 말할 때 ‘이 영화의 주제는 뭐지?’라고 하기보단 ‘이 커피잔은 무슨 색이지?’라고 하는 게 괜찮은 시작이죠. 배우들과 이야기할 때도 ‘이 사람은 굉장히 종교적인 사람이에요’라고 대화를 시작할 것이 아니라 ‘이 사람은 넥타이를 매는 타입이에요’라고 하는 식으로 출발해야 합니다. 저는 그런 디테일을 믿습니다”라고 말했다.
https://www.mk.co.kr/news/hot-issues/10357296
디테일에서 시작하는 사람이기에 흔치 않은 산업과 직업에 대한 설정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해 적어보았다. 이어지는 글에서는 또 다른 생각을 풀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