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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rore오로르 Sep 03. 2024

이야기의 시작

그녀는 종종 나에게 글을 써보라고 했다. 


누군가는 출근하기 바쁠 금요일 오전 8시. 서둘러 작고 매끄러운 의자에 앉아 노트북을 펼쳤다. 그날은 자신을 표현하는 키워드 100개를 써보고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기로 한 날이었다. 지인 중 가장 부지런하고 책임감 있는 그녀는 흐트러지기 좋은 요일임에도 이제 막 씻고 나온 깨끗한 모습으로 화면 너머에 마주 앉아있었다. 그리고는 내 키워드에 대한 긴 이야기를 특유의 깊은 표정으로 들었다.


100개의 키워드





'클래식 음악에 대한 마음을 글로 써보는 건 어때요? 

영상에는 그 마음이 다 담기지 않는 것 같아요. 이 장르를 이렇게나 사랑하는데. 그리고 못난 마음들이 정작 못나게 느껴지지 않는 것도 주연님만의 매력이에요. 이 키워드를 봐요. 인정욕, 성공, 욕심, 열등감... 그런데 이 단어들이 주연님이 이야기할 때는 못난 단어처럼 느껴지지 않아요.'




그녀는 어떤 시선으로 날 보고 있었던 걸까? 



간혹 그녀가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있으면 전혀 몰랐던, 혹은 잊고 있던 나를 발견한다. 그녀가 날 마케터로 키워냈지만 방식은 달랐다. 아니 정확하게는 그녀의 방식을 따라갈 수 없었다. 화제가 되는 소재를 기존의 주제와 결합해 반응을 이끌어내는 나와 달리, 그녀는 화자의 아름다운 모습을 끌어내 카메라에 담았다. 그녀의 눈은 빛을 담는 유리 같았다. 그 유리 안으로 어떤 것이 들어가든 유리를 통해 비친 것들은 깨끗하고 순수해졌다.

그녀처럼 '타인'이라는 불쾌감을 뚫고 들어가 깊이 자리한 결정을 찾아내기란 나에게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런 그녀가 간혹 그 유리에 나를 담아 보여주었다.

비친 모습은 생소하면서도 흥미로웠다. 소녀가 처음으로 드레스를 입고 거울 앞에 서서 낯선 이를 보듯 자신을 이리저리 살펴보는 순간과 같았다.



'내가 클래식을 그렇게 좋아했던가?'

서른이 넘은 아직까지도 이 질문을 한다. 으레 음악을 전공한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을까? 애(愛)보다는 증(憎)이 마음속에 강하게 섞여 들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장르는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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