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eomzi Aug 01. 2023

나 자신을 나의 딸로 생각하기

남자친구의 행동을 얼마큼 어디까지 받아주고 용납해줘야 하는가?

얼마 전 연애를 처음 해보는 동생이 이렇게 말하였다. 마음에 들지 않는, 혹은 상처받게 되는 남자친구의 행동을 얼마큼 어디까지 받아주고 용납해줘야 하냐고, 선을 모르겠다고. 


나는 예전에 어디선가 이런 말을 보았다. "나의 딸이 그것을 받아주게 둘 건가?". 즉, 내 딸이 남자친구던 친구던 어느 행동을 하는데 내 딸이 그것을 받아주고 앉아있다면 과연 두 눈 뜨고 볼 수 있을 것이냐는 것. 나는 이 말을 일상에 적용해 보고 유용하다는 것을 깨달아 나의 생각 프로세스에 넣어보며 체득하였다. 이 말을 그 동생에게 알려주니 조금 생각해 보더니 "아, 그렇네~" 하며 깨달았다는 듯이 감탄사를 지었다.


이런 인간관계 속의 선을 어렸을 때부터 체득한 친구들도 많이 봐왔지만, 나는 약 21살까지 제대로 몰랐던 것 같다. 즉각 대응하지 못해 후회하거나, 이런 걸 갖고 싸워야 하는지 고민하며 많은 밤을 지새운 기억이 있다. 그래서 나는 인간관계를 편하게 하고 싶어 이 "딸로 생각하기" 방식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 후, 선 넘는 친구들은 확실히 거리를 두게 되고 대응할 수 있게 되었다. 한마디로 나의 선이 무엇인지 더욱 명확해지니 생각도 깔끔하게 하게 되었다. 


지금 남자친구의 머릿속에 나의 선을 명확히 그려주니 남자친구도 그 선을 넘지 않으려 한다. 연애 초반엔 서로 맞춰가는 과정이니 이런 걸로 많이 싸웠는데, 이제는 담백하게 기분 나쁠 거엔 기분 나쁘고 괜찮은 것엔 괜찮으며, 기분 나쁘면 감정 빼고 논리적으로 말하는 힘도 어느 정도 키웠다. 


남자친구는 어렸을 때부터 인간관계속에 선을 알았던 느낌이 드는데... 남자친구와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을 보았을 때 일부러 선을 넘는 것을 받아주고 이득을 취할 때가 종종 있다. 그러면서 더 두터운 신뢰관계도 쌓는 걸 보니 내가 생각하는 선의 응용 버전이라고 느꼈다. 이를 실행할 때는 한 가지 사건만 보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쌓아온 사건들을 모두 훑어보는 것이 중요한 듯하다(근데 그래서 혼자 끙끙거릴 때도 있긴 하다...). 이렇게 선의 개념에 익숙한 사람이다 보니 나도 함부로 그의 선을 넘지 않고 내 머릿속에 그의 선이 무엇인지 대충 그려진다. 이러니 시간을 함께 많이 보내도 싸울 일이 훨씬 줄어들고, 손쉽게 상대방에게 존중을 보여줄 수 있다. 


친한 동생을 보면 최대한 많은 것을 용납하고 받아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연애 초반에 남자친구가 자신의 집을 더럽히면(그것도 아주 많이) 자신이 모두 청소하고, 돈도 많이 내고, 눈치도 매우 많이 봤다. 이상적으로 본다면 그 남자친구가 매우 고마워해야 하지만 현실에선 당연한 것이 되어버린다. 


결국 현실과 이상은 다르기에 장기적으로 본다면 이 사랑을 지키고 상대방을 순수하게 사랑하려면 선을 명확히 그려주는 것이 좋다. 나 자신이 많은 것을 용납해 주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면 머릿속에 있는 이상적인 사람의 형태가 완성될 확률이 생기겠지만, 현실에선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혹여나 이를 해낸 분이 있다면 그분의 지혜를 들어보고 싶다). 모든 것을 용납하다 보면 배신감과 실망감을 마주하게 되는데 연애도 친구 관계도 이로 인해 결국은 환멸을 느끼게 되기에. 

작가의 이전글 요구와 쟁취를 위해. 나 자신 돌아보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