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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 Nov 03. 2019

글쓰기가 이렇게 사람을 바꿔놓습니다.

관찰, 듣기, 수집, 공간, 전달, 성찰

어렸을 때부터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쓰레기를 주워 좀 더 그럴싸한 쓰레기를 만들었고, 별별 소재로 나만의 궁전을 지었다.

부모님께는 매년 끼거나 붙이거나 조립이 가능한 생일선물을 요구했다.


만들기는 고등학교쯤 가서 내 곁을 떠났다.

만들기와 입시는 동시에 존재할 수가 없었다.

대학에 입학한 이후에도 만들기는 소란스러운 내 삶에 끼어들지 못했다.


그랬던 만들기는 한 달 전쯤 '글'이라는 새로운 소재를 가지고 나에게 다시 돌아왔다.

다시금 내 원래의 취미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글을 만드는 것은 이전의 만들기와는 조금 다른 기능을 요구했다.

관찰하고, 생각과 감정을 수집하고, 수집한 것들을 활자로 다듬어야 했다.


그러한 과정에서 글쓰기는 내 삶에 변화를 몰고 왔다.

조금씩이지만 색다르고 과감한 변화였다.



1. 관찰

나의 하루는 지극히 평범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출근하고, 낮에는 일을 하며, 밤에는 퇴근하여 집으로 돌아오는 순환의 연속이다.

이러한 내 하루는 도처에 널려있다.

관심을 가질 필요도 없었고, 들여다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나의 하루는 평범하지 않다.

누구의 하루도 평범하지 않다.

언뜻 평범해 보이는 하루가 어느 누군가에겐 옅은 미소를, 어느 누군가에겐 생각할 거리를 준다는 것을 안다.

멀리서 바라보면 그저 자갈밭인 것이 가까이서 관찰하며 각자의 무늬를 띄고 있는 것처럼.

그래서 이제 나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눈을 부릅뜬다.

관찰한다.

오늘 나의 하루에 묻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2. 듣기

나의 귀는 잘 닫힌다.

듣기보다 말하기를 좋아하는 까닭 때문이다.

듣기의 중요성은 글쓰기에 앞서 여자 친구에게 배웠다.

그러나 배움과 실천이 속도를 달리하듯 나의 듣기는 가끔 말을 듣지 않았다.

이때에 도움을 준 것이 글쓰기였다.

글을 쓰면서 듣지 않는 나의 세계가 얼마나 편협했는지를 깨달았고, 나의 문장이 얼마나 단출한지를 봤다.

타인이 내뱉는 한 마디 한 마디가 시선이었고, 단어책이었다.

배움이었다.

이제 나는 듣는다.

들음으로써 글쓰기에 필요한 여러 색깔의 물감을 얻는다.

그리고 존중한다.

타인의 언어를 존중해야 나의 언어 또한 존중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3. 수집

메모 앱의 위치를 손가락과 가장 가까운 곳으로 옮겼다.

이제 나는 생각, 감정, 표현, 통찰을 수집한다.

글쓰기를 위해서는 수집이 필수다.

수집할 뿐만 아니라 세공한다.

오늘 하루는 메모로 수집되고, '나'라는 필터를 거쳐, 글쓰기를 통해 재탄생한다.

완성된 글은 브런치를 통해 사람들에게 판다.

내가 받는 비용은 격려와 관심, 소통이다.

그뿐이지만 더할 나위 없이 값지다.

사람들이 계속해서 나를 찾아오게 하는 방법은 지속적인 글쓰기를 하는 것뿐이다.

이를 위해선 수집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

생각과 감정은 마치 번개 같아서 일순간 번뜩이고 사라져 버린다.

수집을 집요하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4. 공간

나는 더 이상 샤워나 운전을 할 때 음악을 듣지 않는다.

생각에 방해가 된다.

샤워부스나 운전석의 공간은 공통점이 있다.

그곳에서는 제한된 움직임의 행위가 이루어진다.

그러한 상태일 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확장되며, 문단으로 구성된다.

내가 할 일은 잠시 행위를 멈추고 급히 메모 앱에 적는 것뿐이다.

마치 내가 글을 쓰는 게 아니라 내 안의 누군가 글을 토해내는 느낌이다.

대부분의 글은 이런 모습으로 샤워부스와 운전석에서 탄생한다.

덕분에 샤워부스와 운전석은 이제 특별한 공간이 되었다.

아쉬운 점은 그 공간에 머무르는 시간이 20분 안팎이라는 점이다.

어쩌면 제한된 시간으로 그 공간이 더 특별해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5. 전달

말과 글은 다르지 않다.

글로써 잘 전달하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이 있다.

우선 쓰기 전에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적절한 문단으로 구성해야 한다.

구성이 끝난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글을 써야 하는데 이때에 필요한 것들이 많다.

문장을 잘 쪼개야 하며, 리듬감이 살아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쓴 문장을 계속해서 읊조려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단문을 복문으로 바꾸던지, 문장을 싹둑 잘라야 한다.

또한 별다른 꾸밈을 필요로 하지 않는 단어를 찾아야 하며, 그 단어를 적절한 위치에 배치시켜야 한다.

어느 정도 글을 쓴 이후에는 없어도 되는 요소들을 골라내야 한다.

더 좋은 글로 제련하려면 머릿속에 그려지듯 읽히는지 확인하고, 비유가 식상하지는 않는지 의심해보아야 한다.

더 나아가 수동태를 능동태로 바꿀 수 있는지, 부정어를 긍정어로 바꿀 수 있는지, 호응이 적절한지, 묘사와 서술의 균형이 조화로운지 등등 들이대야 할 잣대를 최대한 들이대야 한다.

이렇게 했을 때 글은 쉽게 전달이 된다.

아쉽게도 난 이 모든 과정을 글쓰기에 투입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말은 이전보다 수월하게 전달된다.

"선생님 말이 쉬워졌어요."

변화를 확인시켜준 우리 반 아이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6. 성찰

글에는 글쓴이가 드러난다.

나의 글에도 내가 드러났고, 나는 나의 민낯을 봤다.

내 글의 온도는 내가 그리 따뜻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주었고,

내 글의 주제는 내가 썩 긍정적이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었고,

내 글의 방향은 내가 진짜로 관심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리켜주었다.

누군가 나에게 '너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했다면 의심했을 것이다.

그러나 글은 나를 정직하게 보여준다.

성찰은 때때로 쓰라림을 동반한다.

쓰라림은 반성과 방향을 제시한다.

나는 글을 통해 나를 보고, 더 나은 내가 되려 노력한다.

글은 나의 거울이다.

 




이제 만들기는 일방적이지 않다.

내가 글을 만들면 글이 나를 만든다.


나는 글쓰기에 의해 변화되고 있다.

글쓰기는 누구라도 변화시킬 수 있다.


글쓰기를 해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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