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을 썼다 지웠다.
오늘 같은 날엔 쓰고 싶은 글이 가득한데, 글빨이 영 올라오지 않아서 속상하다.
'노력 없이 쓰인 글은 감흥 없이 읽힌다. <사무엘 존슨>'
글이 써지지 않을 때마다 떠올리는 구절을 다시 한번 새기며 마지막 시도를 해본다.
어제 있었던 일이다.
어제의 하루는 월요일이지만 월요일 같지 않은 최초의 월요일이었다.
행복은 의외성에서 온다더니, 기대하지 않던 월요일에 아이들이 나를 즐겁게 해 주니 긍정성이 마구 샘솟았다.
내 감정의 주기가 오름세를 탄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자랑하고픈 하루를 보내고 연구실에 들어갔으나 연구실 분위기는 침울했다.
나와는 정 반대의 하루를 보낸 듯한 후배 선생님이 보였다.
후배 선생님의 겉모습은 오늘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를 표현해주고 있었다.
눈에는 곧 쏟아질 듯한 눈물이 가득했고, 목 주변에는 붉은 기운이 얼룩얼룩했다.
정신 스트레스가 육체를 집어삼킨듯 했다.
위로가 필요해 보였다.
이야기를 가만히 들었다.
후배 선생님의 하루를 망친 것은 3번의 먹칠이었다.
첫 번째 먹칠은 남자애 3명의 학교 탈출이었다.
핸드폰 게임 '포켓몬 고'를 한다고 점심시간에 담장을 넘고, 6차선 도로를 무단 횡단했다고 한다.
혹시 사고라도 났으면 어땠을까 싶은 아득한 일이다.
두 번째 먹칠 역시 그 사건으로부터 비롯했다.
사건과 관련해 4,5,6교시를 통으로 날린 채 상담을 했는데, 상담이 끝나자마자 6학년과 싸웠다고 한다.
선생님들이 흔히 멕이 빠지는 순간이 이런 경우다.
세 번째는 아이들의 조롱이었다.
미술시간에 시각 기호를 만드는데, 주어를 뺀 채 "남녀 차별하지 마세요"라고 했다고 한다.
내가 짐작컨대 후배 선생님은 남녀차별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말썽이 잦은 몇몇 남자아이들에 대한 지도를 '남녀차별'이라는 그릇된 프레임을 씌우지 않았을까 하고 추측한다.
힘들었을 테다.
그러나 어제의 나는 따뜻한 위로의 말도, 현명한 조언도 건네지 못했다.
나도 아직 행복한 선생님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답을 찾고 있기에.
선생님들은 자주 뚜껑이 열린다.
뚜껑이 열릴 수밖에 없는 게 선생님들의 운명일지도 모른다.
부모님들이 아이들의 개성이라고 부르는 것들이 뚜껑 개봉의 원인이 되기도 하니.
중요한 것은 뚜껑이 날아가지 않게 하는 일이다.
뚜껑이 날아가지 않아야 열린 뚜껑을 다시 닫을 수 있는 법이다.
후배 선생님에게 다시 조언을 한다면 이렇게 하고 싶다.
가끔은 자기 자신을 제일 우선순위로 하라고.
스트레스에 위태롭다 싶으면 수업도 잔잔히.
잦은 말썽에 상담이 지친다면 그냥 반성문 숙제를 내주기도.
수업시간에 늦게 들어가기도.
선생님이 지금은 좀 힘드니까 너희들이 도와달라고 솔직히 말하기도.
수업 준비가 미처 덜 돼도 조퇴하기도.
그래야 버틸 수 있다고.
오늘은 나도 스트레스를 꽤나 받아서 그런지 글쓰기가 쉽지 않다.
뚜껑이 조마조마하다.
미처 전하지 못한 말은 육성으로 전하려고 한다.
글의 마무리는 물음으로 끝낸다.
어떻게 하면 교실이 매일 즐거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