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
끝날 줄 모르던 나의 브런치 잠수가 뜻밖의 코로나 19로 끝을 맺었다.
그렇다면 우선 밝혀야 할 것은 왜 브런치를 끊었는지와 어쩌다 다시 돌아왔는지로 사료된다.(논문체가 벌써...)
2019년 9월부터 브런치를 시작하고 하루에 한 편씩 글을 올릴 만큼 잠시 미쳐있었다.
글을 쓰면서 글이 늘어가는 느낌도 받았고, 문장이 맛스러워진다는 착각도 들었다.
나의 글에 달리는 주된 댓글은 글이 잘 읽힌다는 것이었다.
잘 읽히는 글, 구어체의 글을 잘 쓰는 게 나의 자부심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글이 뻑뻑하게 써지기 시작했다.
문장의 문제도 아니었고, 단어의 문제도 아니었다.
알맹이의 문제였다.
뭔가 멋들어진 표현, 도입부터 해서 중반부까지 서서히 피치를 올리다가 마지막 결론에 빵! 하고 임팩트를 터트리는 그런 글을 쓰고 싶었다.
그런 글을 쓰려면 소양과 관찰력이 필요했다.
감동은 "와 문장이 개쩌는데?"가 아니라 "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지?"에 달려있었다.
즉, 나에게는 잔기술만 있었을 뿐 진짜 기술이 없었다.
대충 이런 나의 빈약함을 깨달은 이후부터 글을 쓰기가 꺼려졌다.
그리고 나의 브런치 잠수가 시작됐다.
[속보] 교육부 3월 23일로 전국 초중고교 개학 연기
이 소식으로 나의 브런치 잠수가 끝났다.
한참 개학을 준비하던 중이었다.
3월을 코앞에 두고는 마치 그라운드 진입을 앞에 둔 축구선수처럼 긴장감을 끌어올리던 중이었다.
그런데 코로나 19로 인해 개학이 한차례 연기되고, 또다시 2주가 연기되자 긴장감이 '팩'하곤 풀려버렸다.
계획된 방학이었다면 스케줄에 맞춰 몸을 부지런히 움직였을 테다.
계획에 없었던 뜻밖의 공허의 시간은 나에게 '거리'를 요구했다.
할 거리, 놀거리, 먹거리.
"아 집에서 뭐하지"
"여행도 가면 안되는데"
....
"브런치?"
생각할 거리, 할 거리, 쓸 거리, 볼거리
가까운 거리에 이 모든 '거리'가 가능한 브런치가 있었다.
다시 한번 브런치를 시작해보자는 생각이 들자 글감이 고민됐다.
사실 나에게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논문 일기'
쓰기에도 간편할 것 같고, 내가 현재 논문을 쓰면서 느끼는 감정을 담아내기에도 편리한 것 같았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언제나 나의 글은 완결된 과거를 회상하며 쓴 회고록이었다.
그런 식으로 글을 쓰다 보면 누가 시킨 것은 아니지만 자연스레 '플랫'에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마치 아이언맨의 일대기를 담은 영화처럼 나름 평이한 일상-고난-극복-성장 이런 식의 흐름 말이다.
그런 글을 쓰기 어려웠다.
때때로 명대사도 넣어야 했고, 교훈도 생각해내야 했으며, 억지로 기억을 쥐어짜 내야만 했다.
일기는 그럴 필요가 없다.
일기란 어차피 누군가에게 보여주자고 쓰는 것이 아니니깐.
그래서 '논문 일기'를 주제로 잡았다.
그냥 나의 하루를 긁적이면서, 느낀 점도 써보고, 고난도 써보고, 환희도 써보고, 가끔 어렵다고 어리광도 부려보고, 운이 좋다면 어떤 깨달음도 써보려고.
이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왔지만
내 브런치 계정은 전보단 조금 무거워졌다.
아직도 인간이 pick 해서 끌어올리는 건지, 인공지능의 알고리즘이 pick 해서 끌어올리는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브런치 메인에 몇 번 노출이 됐고, 조회수가 몇 번 들썩거리면서 구독자가 어느덧 세 자릿수가 되었다. 딱 세 자릿수의 출발인 100명.
이 귀하시고 감사한 분들은 생각하면 내가 좀 더 열심히 해야 한다.
아무튼(역시 일기의 플랫인가) 돌아왔고, 써보려고 한다.
아직 결말이 맺어지지 않은 현재 나의 이야기이기에 새드 앤딩 일지, 해피앤딩 일지는 모르지만.
똑똑 구독자 선생님 여러분 오랜만입니다! 구독 취소하지 않고 내버려 두어주어셔 감사합니다 :D
맛있는 글 대접하겠습니다.
코로나 19로 바깥활동이 꺼려지는 요즘, 제 글이 여러분에게 조금이나마 심심풀이 땅콩이 되면 좋겠네요.
건강하십시오.
그럼 이만 총총.